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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학교폭력수기-은행나무에 바람이 불다(1)

2011년 7월 15일, 하늘이 무너지다

그 아이가 죽었다. 천안 D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기도삽관을 한 채 15일을 버티다 끝내 사망했다. 방년(芳年) 17세. 머릿속이 하얗게 경색되는 느낌이다. 이제 이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그냥 노랗다. 그 날 하필이면 왜 내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 그저 하늘이 원망스럽고 두려울 뿐이다.

대전 국과수의 부검결과는 가슴에 심한 충격으로 인한 심장 정지 및 뇌사로 인한 폐질환으로 나왔다.

가해 학생은 같은 반 친구였다. 단 한 번의 발차기가 한 사람의 인생을 이승과 저승으로 나누었고, 또 한 사람의 전도유망한 인생을 살인자로 만들었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신성한 교단에서 일어났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만 보고 읽었던 일들이 실제로 내 눈앞에서 벌어지다니……. 아, 아무 것도 생각하기가 싫다. 도대체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냐. 오만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럽다.

불길한 전조 증상들

2011년 7월 1일 금요일.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온한 저녁이었다. 아이들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4시20분에 실시되는 마지막 8교시 보충수업을 마치고 학교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6시20분부터 시작되는 야간자율학습을 준비 중이었다. 날씨는 약간 무더웠지만 그렇다고 불쾌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학교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날과 약간 다른 점이 있었다면 사건이 일어난 1학년 2반 교실이 좀 어수선하고 들뜬 느낌이 들었다는 것 외엔…….

1교시 야자는 늘 그렇듯이 아이들의 심신을 안정시키는 게 주된 목적이다. 1교시에 아이들의 심신을 안정시켜야만 내처 2, 3교시까지 순탄하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1교시에 분위기를 잡지 못하면 2, 3교시는 마냥 떠들다가 유야무야 허송세월로 끝나고 만다. 말이 자율이지 사실 일반계 고등학교 야자는 거의가 반강제적이다. 때문에 이걸 못 견뎌하는 아이들이 많아 야자 감독은 늘 전쟁 아닌 전쟁이 된다. 오죽이나 시간 때우기가 지루하면 그 긴 수정테이프를 모두 풀었다가 다시 되감는 일을 반복하는 학생들이 나오겠는가. 이것은 그만큼 사건사고가 일어날 개연성이 많아진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이런 엄청난 사고가 터질 줄은 정말이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사소한 말다툼은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르고

1교시 60분간의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끝내고 교무실의 빈자리로 돌아왔다. 60분간 한 번도 앉지 못하고 1층과 2층 복도를 순찰했더니 종아리에서 쥐가 날 듯 뻐근한 통증이 느껴졌다. 매번 일주일에 두어 번 씩 겪는 일이지만 야자 감독은 정말 교사로서도 하기 싫은 업무 중의 하나다. 퇴근시간이 되어도 집에 가지도 못하고 추운 복도에서 떠드는 아이들과 무려 200분간 신경전을 벌인다는 것은 심신에 큰 무리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랴. 교육여건이 열악한 시골 학교에서는 믿을 것은 오직 개인의 노력밖에 없으니 대부분의 시골 학교가 야자에 목숨 걸고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 것을.

뻐근한 다리도 쉴 겸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10분간의 달콤한 휴식에 빠져들 찰나였다. 그때 책상 위 모니터의 시계는 19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우스를 잡고 인터넷 검색창을 클릭 했을 때 갑자기 한 아이가 얼굴이 사색이 된 채 교무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외쳤다.

"선생님, 수성이가 쓰러졌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1교무실에 계시던 대여섯 분의 선생님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또 개구진 아이들이 사소한 싸움질을 하다가 장난으로 쓰러졌나보다 가볍게 생각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아무래도 이상해서 그 아이에게 물었다.

"어떻게 쓰러졌는데?"

그 아이가 다급하게 말했다.

"수성이가 숨을 쉬지 못해요."

"뭐라고? 숨을 쉬지 못 해?"

그때서야 아차 하며 불현듯 어떤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체육선생님과 함께 1학년 2반 교실로 황급히 달려갔다.

교실에 막 도착해 보니 수성이는 이미 알루미늄으로 되어있는 앞 출입문에 머리를 박은 채 큰 대자로 누워있었다. 아이들 말로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체육선생님께서 제일 먼저 수성이의 동공 상태를 확인해보고 심장에 귀를 갖다 댔다. 그리곤 급히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몇 분간 정신없이 심장마사지를 실시해도 아이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체육선생님께서 즉시 휴대폰을 꺼내어 119에 신고했다. 소방서 구급차가 우리 학교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대략 10분 정도일 것이다. 아, 그때처럼 시간이 길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아이가 깨어나기만을 빌고 또 빌며 우리는 열심히 팔다리를 주물렀다. 하지만 아이는 사지가 축 늘어진 채 깨어날 줄을 몰랐다. 충격을 받은 반 아이들도 우왕좌왕하며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사건의 전말

야자시간에 수성이가 뒷자리의 친구에게 학습문제로 몇 가지를 질문한 모양이었다. 이때 교실 앞자리쯤에서 조용히 공부를 하던 가해 학생이 수성이에게 "야, 조용히 좀 해!"라고 소리쳤다. 물론 쥐 죽은 듯 조용한 야자시간에 뒷자리 친구에게 시끄럽게 질문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여러 학생들 앞에서 그렇게 무안을 당한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야자 중 티격태격 몇 번의 언쟁이 오고갔다. 하지만 감독선생님이 순찰 중이었기에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두 아이의 말다툼의 불꽃이 그렇게 사그라지는 듯싶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사그라지던 악마의 불꽃이 맹렬한 바람을 만나고 말았으니……. 그 맹렬한 불꽃은 쉬는 시간에 다시 되살아나고 말았다.

드디어 1교시 야자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가해 학생이 수성이의 자리를 찾았다. "야, 안경 벗어!"라고 외쳤고 수성이가 안경을 벗으며 자리에서 비스듬히 일어서자 갑자기 가해 학생이 수성이의 가슴팍을 발로 1차 가격하였다. 이에 화가 난 수성이가 가해 학생의 얼굴을 두어 대 때렸고, 이에 다시 가해 학생이 수성이의 허벅지를 2차 가격하자 수성이가 그만 뒤로 넘어지면서 앞 출입문에 쿵하고 뒤통수를 부딪혔다.

그 '쿵' 소리는 바로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르는 소리였다. 이후 학교는 온통 혼돈 그 자체에 휩싸이게 되었다.

술렁이는 아이들, 허둥대는 학교

19시 20분경에 드디어 S소방서 119 구급차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도착했다. 구급차는 우선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S국립의료원 응급실로 환자를 후송했다. 10분 후 19시 30분 경 응급실에 도착. 당직 의사선생님들이 급히 30여 분간에 걸쳐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자 멈춰있던 수성이의 심장이 희미하게나마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새로운 희망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의료원에서도 아직 늦지 않았으니 최신식 의료기기가 구비된 천안의 대학병원으로의 이송을 권유했다. 수성이의 부모님께서도 이를 받아들여 구급차는 다시 요란한 경광등을 번쩍이며 천안으로 향했다. 평소 자가용으로 1시간 40분 정도 걸리던 길을 구급차는 한 시간 만에 달려 D대학병원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했다.

그날부터 2반 담임선생님과 학년부장 선생님께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와 천안을 오가며 수성이의 용태를 살폈다. 새벽에 출발해 천안 D대학병원을 들렀다 다시 학교로 출근하기를 2주일 동안 반복했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교직원들도 삼삼오오 조를 짜서 병문안을 다녔다. 학급 아이들도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자 친구를 살리기 위해 헌혈증을 걷고 위로금을 걷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제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기를 우리 모두는 빌고 또 빌었다.

우리의 바람은 끝내 물거품이 되고

염원이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된다던가. 하늘은 우리의 간절한 염원을 저버리고 끝내 수성이를 데려가 버렸다. 사건이 일어난 지 꼭 보름 만이었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들은 학생과 교직원들은 땅이 꺼지는 슬픔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저간의 사정이야 어떻든 사랑하는 제자를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한 것은 법적인 책임공방을 떠나서 우리의 잘못이었다. 어떤 친구는 이미 고인이 된 수성이의 이름을 부르며 흐느껴 주변을 비통에 젖게 했다.

수성이가 앉았던 빈 책상 위에는 흰 국화꽃 한 다발만이 덩그렇게 놓였다. 엊그저께만 해도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공부하던 녀석이었는데……. 녀석의 해맑은 웃음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대성통곡하는 부모님의 모습도 어른거렸다. 당신들의 뼈와 살을 빌어 열 달 만삭 고이 채워 낳은 생떼 같은 귀한 아들을 한순간에 잃었으니 그 비통함이 오죽하랴.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아마도 이 세상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것이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리라.

하지만 수성이의 죽음은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또 다른 사건의 시작이었음을 그 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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