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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박 대통령 교과서 출제 언급은 교육과정으로 이해해야

“선행학습 부분도 시험에 안 내야 사교육 질서 잡혀”“교과서 외에는 절대로 (시험에) 출제하지 않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위원 전원이 참석한 회의를 주재하면서 한 말이다. 이 자리에서 교육·문화·경제 여러 가지 분야를 세세하게 당부하면서 중·고교 시험에서 교과서 출제 원칙을 강조하는 발언을 했다.

박 대통령은 “시험에서 선행학습 부분에 대해서는 내지 않겠다고 하면 실제로 나오지 않아야 된다.”라며 “그래야 사교육 문제에 대해서 질서가 잡히기 때문에 충실하게 지켜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또 “친절한 교과서”를 강조하면서, 전과를 보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충실한 교과서를 만들기를 기대한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미 대선 과정에서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수능과 논술 시험을 교과서 중심으로 출제해 학교 공부만으로 대학 진학이 가능한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공약을 강조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140개 국정 과제를 만들 때도 ‘교과과정을 넘는 시험·입시 출제 금지’와 ‘충실한 교과서 제작’ 목록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이번 언급은 그 본격적인 공약 실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번 언급은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사교육 문제다. 사교육은 가계 부담뿐만 아니라 우리 교육계의 문제점이라는 시각이 깊다. 그리고 입시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두 문제의 뿌리는 공교육을 살리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공교육을 살리면 교육이 정상으로 회귀한다는 철학적 배경이 깔려 있다.

그런데 대통령의 발언에는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우선 선행학습 금지만으로 사교육을 잠재울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선행학습을 법으로 금지할 수 있다는 것도 성숙한 사고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교과서 출제 문제는 더 복잡하다. 최근 1종 교과서가 거의 없어지고 2종 교과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어느 교과서에서 출제한단 말인가. 심지어 2009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 보급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 교과서를 바꾸라는 것이냐면 볼멘소리다. 게다가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교육방송(ebs) 교재 연계율이 70%인 현실은 어떻게 하나며 이의 제기를 하고 있다.

이런 반문은 교과서의 개념을 단순한 학습 교재로만 본 탓이다. 교과서는 협의의 개념으로는 학생 교육을 위해 사용하는 주된 교재다. 그러나 광의의 개념으로는 교육과정 안에 제시된 교육목표를 구현하기 위해 내용을 영역별로 세분화한 것이다. 즉 교과서는 국가의 교육과정을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실천하는 학습 도구이다. 교육과정은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선택된 교육내용과 학습활동을 체계적으로 편성·조직한 계획이다. 교육과정은 교육을 통하여 전수되는 계획된 교육내용을 뜻하는 것으로, 교육의 핵심을 이룬다. 이러한 교육과정에 근거해 만든 자료가 교과서다. 교사와 학생이 효과적인 교육활동을 하기 위한 매체다. 교과서는 학습 내용을 제시하고 이를 학생이 탐구해 나가도록 하며, 학생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동기를 유발하는 기능이 있다. 우리가 교육의 실현을 교육과정에 두지 않고 교과서에 두면 지식 위주의 교육을 하게 된다.

교육목표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교육 매체인 교과서를 출제하고 평가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교과서는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교과서 출제는 목적을 도외시한 실천적 수단을 강화하는 것이다. 선행학습도 마찬가지다. 교과서 내 출제만 강조한다면 사교육은 한정된 교과서 문제만 흉내 내는 족집게 시험대비에 더욱 극성을 부리게 된다. 교육과정이 배제된 교과서 내용 중심의 교육은 주관적인 의지와 만족감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교육적 행위가 아니다. 개인적 욕구이고 주관적인 만족이라는 가치만 있다. 그러한 가치는 교육의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선행학습의 문제점도 교육과정과 연계해서 언급한다면 답을 찾기 쉽다.

학교 교육의 핵심은 교육과정에 근거한다. 아울러 시험 문제 출제의 핵심은 교육과정이다. 교육과정에 근거한 출제를 하고, 수업 목표를 확인하는 것이다. 교육과정에 근거한 출제를 하고 평가하는 평가 정신을 구현해야 한다. 교과서 내 출제라는 언급은 평가 정신의 대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교과서 외의 것은 절대 출제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도 곧 교육과정 출제 방침일 것이다. 다만 아쉬움이 남는다. 오해가 없게 교과서란 표현 대신에 교육과정이라 언급했으면 어땠을까. 박 대통령의 언급은 대통령 본인의 의지가 담겨 있지만, 분명히 여기에는 교육 분야의 전문 비서관 검증을 거쳤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렇다면 교육 전문가들이 이렇게 섬세한 언어 표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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