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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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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다가섬과 물러남

칠팔월의 태양은 뜨겁다. 춘분을 지나 자꾸만 높아지는 태양의 고도는 계절과 시간의 흐름이란 공전주기를 타고 따끔따금한 열선으로 사정없이 지표면을 찌르고 있다. 이제 온 지상은 짙은 초록 물결의 여름에 잠겨있다. 하지만 이 성하의 계절도 잦아지는 매미 소리와 여치, 베짱이 노랫소리가 들리면 저만큼 물러날 것이다. 다가섬과 물러남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다가설 줄만 알았지 물러설 줄을 모르는 형태를 추구하는 대부분의 부류가 사람이 아닌가 한다.

열흘 전 사소한 부주의로 발목을 다쳤다. 병원으로 가면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큰일이다를 연발하며 의사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의사선생님이 묻기도 전에 심한가요? 낫는데 얼마나 걸려요? 깁스 안 하면 안돼요? 목발 짚지 않아도 되지요? 하며 무수한 질문을 쏟아내었다. 의사 선생님은 물끄러미 쳐다보며 환자가 보기에도 괜찮은 것 같아요. 입원하여 다리를 매달고 누워있어야 한다고 진단을 하였다. 하지만 할 일이 많고 바빠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자 의사 선생님은 망연자실한다. 하는 수 없이 반 깁스만 하고 절뚝거리며 병원문을 나서는 순간 장대 같은 장맛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에이 날씨도 내 편이 아니군. 왜 이리 일이 잘 풀리지 않지 하며 어둑한 하늘을 보며 원망의 눈빛을 쏘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진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 재차 의사선생님께 빨리 나을 방안이 없느냐고 채근을 하였다. 의사선생님은 지금 발을 보세요 이렇게 멍이 들어 있는데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평생 사용할 발인데 지금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고질병 됩니다. 임시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지금 편해지려다 낭패 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앞만 보고 달릴 줄만 알았지 주변이나 뒤를 돌아보는 일에 소홀했던 지난 일상들이 부챗살처럼 펴지기 시작했다.

달리면서 보는 것과 걷다 잠시 멈추고 보는 것은 다르다. 바빠서 하는 일은 언제나 놓치는 것이 많은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목발을 짚고 걸으면서 느낀다. 평소에는 발밑의 보도블록도, 길이 패이고 턱이 있는 곳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 다녔다. 하지만 서투르게 목발을 짚고 한발 한발 거두며 가는 길의 발밑에는 너무나 많은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스치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만 쳐다보는 것 같아 쑥스럽기도 하고 계단을 만나면 한숨부터 나온다. 어쩜 멀쩡하게 생활했던 지난날에 대한 자신의 반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불편한 것은 잠시 잠깐 이지만 평생을 목발에 의지하며 사는 사람은 어떨까 하는 생각과 함께 영문학자로서 교수로서 생을 마감함 고 장영희 교수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 그것이 삶과 생활에 장애로 다가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목발에 의지해서 지내는 동안 시간은 시간대로 가고 짜증 섞인 푸념이 여름과 같이 묻어나며 자신과 가족을 힘들게 하는 일도 있었다. 밖을 나가는 일도 삼가하고 모든 일을 자신이 가진 자와 렌즈로 재고 보며 물러설 줄 모르는 욕심에 가득 찬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욕심의 중심부를 강타한 말씀이 바로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이야기 중에서 나온 구절이다.“세상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쉬면 세상도 쉽니다. 진정 쉬고 싶다고요? 그렇다면 내 마음을 현재의 시간에 온전히 가져다 놓으세요.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하는 바쁜 마음은 미래와 과거를 넘나드는 상념일 뿐입니다.”

이 말씀을 되새기며 갖가지 상념에 젖은 모습으로 걷는 자신을 보게 되어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이 쉬면 세상도 쉬고 내 마음이 행복하면 세상도 행복하다는 혜민 스님의 말처럼 마음 따로 세상 따로 존재한다고 보기 전에 내 마음의 렌즈를 먼저 아름답게 닦으라고 주는 과제가 지금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달리는 것보다 걷는 것. 다가서는 것 보다 물러설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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