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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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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유구무언

기가 막히면 말도 안 나옵니다.
너무나 뼈 아픈 현실이라 그저 눈물만 흐릅니다.
유명을 달리한 꽃다운 학생들의 희생 앞에 우린 죄 많은 어른입니다.
그 가족은 평생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세월의 더께로 덮을 수 있는 아픔이 아닙니다.
피를 토하고 애가 끊어지는 아픔이며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처절한 상처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가족이 아님에도
내 자식이 아님에도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동병상련의 아픔으로
온 국민이 집단적 우울감과 좌절감으로 슬픕니다.
텔레비전 보기가 무섭고, 인생의 허무함으로
인간의 한계와 무기력 앞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좌절감으로
그냥 숨만 쉬고 사는 듯 합니다.

다시 처음부터

슬픔의 나락에서도 다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살 수 있습니다.
잘못된 관행과 어설픈 정책들을 고치고 다듬으며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야 합니다.
패배의식을 딛고 일어서서 다시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아픈 이들을 위로하고 도울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상상할 수도 없는 처절한 불행 앞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희망을

쉽게 살고자 한 사람과 오래 기억되는 사람의 모습이 극명하게 갈린,
죽음의 순간도 삶의 연장선이었음을 보여준 진정한 영웅들을 보며
가슴 일렁이는 뜨거운 눈물을 안겨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행진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슬픈 현실
을 목도한 석가모니의 절망이 실감나게 다가섭니다.
삶이 빛이라면 죽음은 그 그림자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붉은 철쭉도 진한 향기로 다가서는 등나무 꽃타래도
아픔으로 다가서는 잔인한 4월.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희망의 등불을 켜고 일어섭니다.
온 국민이 하나 된 마음으로 그 슬픔의 계곡을 손잡고 건넜으면 합니다.
우리는 너와 내가 아닌 하나의 연결고리입니다.
그대의 슬픔이 내 슬픔일 수 있는,
당신의 피눈물이 내 눈물일 수 있는 사람만이
높은 자존감을 지닌 거라고 합니다.

내 목숨을 내놓고 구조에 나선 아름다운 분들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소중한 재물로 위로하는 이들에게서 아름다운 정신을 봅니다.
어느 민족보다 강인한 정신력과 동포애를 지닌 모습들이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 촛불을 켜고 비는 마음, 눈물로 기도하는 손길,
생업을 미루고 밤을 새워 파도와 싸우며 불을 밝힌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더는 만질 수도 함께 웃을 수도 없는
가여운 학생들과 선생님, 희생자 분들의 영면을 빕니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어른 된 잘못을 빌며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다시 거듭날 것을 다짐합니다.
소중한 아이들을 더 사랑하고 보듬겠습니다.
원칙이 지켜지는 나라, 정의로운 나라,
부끄럽지 않은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진도세월호 참사에 바치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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