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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현충일에 읽어 보는 '지리산 소년병'이야기

세계의 역사는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였다. 우리 민족은 동족 상잔이란 비극적 전쟁을 몸소 체험하였다. 수많은 동포가 이 전쟁으로 죽고 아픔속에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처럼 전쟁은 악이다. 어떤 경우든 좋은 전쟁이란 없다. 힘 있는 나라들은 걸핏하면 ‘전쟁 불사’를 외친다. 자기 나라만이 옳고 상대 나라는 나쁘기에 전쟁을 통해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쟁을 좋아하는 이들. 이름하여 그들을 호전주의자라 부른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들의 선동에 넘어간다. 히틀러, 뭇솔리니가 대표적이라면 이해가 더 쉬울 것이다. 하루하루가 살기 어려운데 전쟁이 대수랴 싶다. 하지만 전쟁은 전쟁 불사를 외친 호전주의자들이 하는 게 아니다. 힘없는 민중들이 한다. 전쟁터에 힘 있는 이들은 핑계를 대면서 가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들은 입으로 전쟁을 하고, 언제나 희생을 하는 이들은 전쟁 당사국의 힘 없는 민중들이다. 그러나 이제 앞으로의 전쟁은 민중들이 하는 시대도 아닐 것 같다. 가만히 앉아서 서로를 죽이는 전쟁이 될 것이다.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라 일상이라는 말이 있다. 평화는 일상을 누리는 것이다. 우리는 직접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이 70을 넘어섰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전쟁은 일상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비상 상황이다. 예사롭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지금도 서해 5도민은 대포 쏘는 소리만 나도 전쟁이 일어나는가 불안해 할 정도이다.

나라 간의 전쟁도 끔찍하고 원통스러운 일인데 우리 민족은 같은 땅덩이에서 1950년 동포끼리 총질을 하며 목숨을 빼앗는 ‘전쟁질’을 한 적이 있다. 어떤 말을 붙이든 정당화될 수 없는 전쟁‘질’이었다. '지리산 소년병'은 같은 동포끼리 전쟁질을 한, 이른바 한국전쟁이 벌어진 1950년대 초반 무렵을 다룬 한 편의 소설이다. 형을 따라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이른바 빨치산이 된 기주의 이야기이다. 기주는 부모를 일찍 잃었다. 그가 의지해야 할 사람은 머슴살이를 하다가 산으로 간 형뿐이었다. 형이 생각하기에도 동생은 너무 어렸다. 그래서 어린 동생을 유일한 피붙이인 고모 집으로 가 있으라 했지만, 기주는 고모집의 눈칫밥을 견딜 수 없어 결국 형을 따라 지리산으로 가는 신세가 된다.

지리산에서 인민유격대, 즉 빨치산으로 지낸 이들의 삶은 이미 소설 '태백산맥' 등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이 소설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휴전협정을 할 때 남북한의 태도다. 휴전협정 때 지리산에 있는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부분에 대해선 남북 모두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남쪽 시각으로 보면 ‘빨갱이’들이라 받고 싶지 않아서 그랬고, 북쪽 시각으로 보면 자본주의에 물든 사람들이고 전쟁에서도 그다지 혁혁한 공을 세운 게 없어 모르쇠한 것이리라. 결국 이들은 지리산에서 죽어야 하는 운명에 빠지고 만다.

1980년대 이후 소설에서나마 그들을 부르며 신원해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죽어서까지 영원히 지리산에 갇혀 있어야 할 운명에 처해 있었다. 빨치산의 처지는 현실 구조에서 살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현실과 전쟁에서 모두 쫓겨 간 사람들이다. 힘 없고 가난한 이들이 갈 곳이 어디겠는가? 그러나 남북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거나 마찬가지였던 사람들. 그들의 이름은 인민유격대, 즉 빨치산이었다…. 오래전 신동엽 시인은 그의 시 ‘진달래 산천’에서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라고 노래한 바 있다. 사람들이 기다린 건 무얼까?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평등 세상’도 하나의 답이 될 것이다.

오늘은 현충일이다. 국가 단위 기관 단위 행사는 있지만 학생들은 거의 참여가 어렵다. 우리가 이렇게 오늘을 사는 것도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선열들의 피의 댓가가 아닌가! 이 세상은 아무렇게나 평화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평등하지 못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지만 그래도 이만큼 누리면서 사는 것은 조국을 위해 산화한 그들이 자기 책임을 다하면서 이 나라를 지켰기 때문이라 믿는다.

전쟁의 참혹함을 모르는 세대가 많아 아무 생각없이 가족과 함께 유원지에 갈 수도 있지만 한 번쯤은 선대들의 나라를 지킨 역사를 몸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지리산 소년병'을 읽어 보면 어떨까? 이런 기회를 갖는다면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이란 무엇이며, 전쟁이란 무엇이고, 우리가 오늘 기리는 59주년 현충일도 의미있게 다가올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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