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학생들은 세계에서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장 높다고 한다. 그 가운데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가 들어있다. 영어를 함하여 외국어를 잘 해야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다. 개인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TOEIC 800점 이상 못 받으면 취직은 생각조차 못한다. 영어를 못 하더라도 일본어나 중국어를 어느 정도로 할 줄 아는 것은 기본이다. 세계화 시대에는 외국어를 하나라도 못 하면 바보가 되는 것이다."
외국어는 연애다. 일단 관심이 생기면 접근한다. 관심이 없어도 상관없다. 접근해서 차이면 다른 관심사를 찾거나 사귀게 되면 열정을 쏟아 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 정이 들어 같이 살 수도 있고 권태를 느껴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도 있다. 외국어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 그 언어와의 관계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보통 학교에서 의무적인 관계로 영어를 시작하겠지만 정이 안 생길 수도 있다. 그러한 의무적인 관계는 피할 수 없지만 대신에 가볍게 만나도 된다. 의욕도 없는데 왜 자꾸 억지로 만나려고 하는가? 집에서는 부모님의 억압, 학교에서는 학생끼리의 경쟁, 사회에서는 취직 준비의 스트레스, 등등 마지못해 외국어를 공부하게 되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의욕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된다. 억지로 연애하는 것과 다름 없다. 애정이 없는데도 억지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선물하는 것은 돈이 아깝다. 시간을 내서 보고 싶지 않은 영화도 봐야 할 것이다.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니 재미가 없게 된다. 어쨌거나 의욕이 없어도 관계는 맺을 수 있지만 유지하는 것은 문제다.
유럽 북부의 벨기에 면적은 대한민국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인데도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네덜란드어를 하는 북쪽과 프랑스어를 하는 남쪽으로 나누지만 세분하면 북쪽에는 네덜란드어:총 인구의 57.6%, 남쪽과 브뤼셀에는 프랑스어: 41.7%, 동쪽에 작은 지역에는 독일어: 0.7% 이렇게 세 가지 공용어가 쓰인다. 각 지역의 사람들은 자기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면서 다른 지역의 언어를 익히려고 애쓴다.
이곳에서 태어난 학생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네덜란드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학교에서는 영어도 네덜란드어 못지않게 필수과목이었다. 그렇다고 3개 국어를 할 수 있겠다고 감탄할 바가 아니다. 대학교 졸업까지 네덜란드어는 15년, 영어는 10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어는 고사하고 영어도 여전히 못 한다. 몇 년 동안 노력했지만 막상 외국인을 만나면 말을 더듬거리면서 엉터리 영어밖에 못한 것이다. 머릿속에는 어휘와 문법 규칙으로 꽉 찼는데, 입에서는 이상한 영어밖에 안 나온 것이다.
이같은 문제를 처음에는 그냥 교육제도의 문제라고 비판하면서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 게으른 선생님들이 쓸데없는 어휘나 문법을 가르치는 대신 실용적인 대화를 재미있게 가르쳤으면 외국인을 만날 때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학시절 22살 때 교환학생으로 스페인에 가면서 이 문제에 대해 돌이켜 생각했다. 스페인어는 정식 언어수업으로 듣지 않았지만 6개월 만에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 문제없이 충분히 잘 할 수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외국어 교육제도의 문제니 뭐니 해도 제일 큰 변수는 언어 환경과 학생 자신의 의욕이라는 깨달음이다.
이 학생은 졸업 후 2년 동안 경영학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지루한 일상생활에서 도망가고 싶어 중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6개월 동안 중국에서 배낭여행을 하다 보니 벨기에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비로소 진정한 자유의 맛을 보고 중독돼버렸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 하루 종일 자기 동네를 안내해 주는 학생, 기차에서 과일을 나눠주는 할머니, 자기 마을을 지나간다는 이유만으로 집으로 초대해 주는 농부, 광활한 고원에서 마주쳐 자신을 따라오라고 권하는 순례자, 심한 변비에 걸린 나를 전통 요법으로 풀어주는 소림사 스님, 정글에서 길을 잃어버려서 헤매는 나를 다음 마을까지 인솔해주는 나무꾼, 외딴 산골에 버스가 없어서 수레에 태워주는 할아버지, 등등 6개월 동안 그런 식으로 지내다 보니 중국인과 그들의 언어에 반할 수 밖에 없었다.
중국어를 배우는 것은 내 새로운 목적이 되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당분간 중국에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2년 동안 난징에서 머물렀다. 수 천 가지의 한자를 외우기는 골치가 아픈 일이었고 성조 때문에 발음이 난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어는 비교적 빨리 배우게 됐다. 그 이유는 의욕과 환경이었음에 틀림없다.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네덜란드어나 영어는 그냥 시험 때문에 해야 하는 의무적인 고역이다. 지금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우리 아이들에게 물어 보자. 정말 영어공부를 해야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고? 그리고 지금처럼 어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좋은데 이를 잘 활용하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