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의 최고의 예술가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다비드> <천지창조> 등 불후의 명작을 남긴 화가이자 조각가이자 건축가였던 사람. 미켈란젤로를 모르는 후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이 명작을 남긴 명성 답지 않게 비열하고 씁쓸했다는 점, 명예롭지 못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신원동 작가의 <메디치가의 천재들> 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발굴하여 대성할 수 있도록 만든 메디치 가문에 대해 자세한 역사적 스토리와 함께 풀어내고 있다. 자, 그러면 르네상스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피렌체의 실질적인 군주 메디치 가문과 메디치 가문이 키워낸 천재들을 살펴볼까요?
메디치가의 4대 군주로 '위대한 로렌초 대왕'으로 불리는 '로렌초 일 마니피코'는 우리가 알고 있는 르네상스의 꽃을 피웠던 주인공이다. 문학과 과학, 그리고 예술을 최고로 사랑한 군주였다.
그러나 동생 줄리아노의 죽음으로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해 더욱더 예술과 문학을 가까이하며 일생을 보내게 된다.
군주 로렌초는 우연히 열다섯소년 미켈란젤로를 만나게 되며 그를 전적으로 배려하며 후원하게 된다.
미켈란젤로의 스승이었던 기를란다요로부터 그는 최고의 드로잉 기법을 훈련받게 된다. 그러나 돈만 밝히는 예술가는 싫다며 기를란다요는 미켈란젤로를 쫓아낸다.
미켈란젤로가 로렌초 군주의 비호 속에 승승장구하는 듯 했으나 결국 그의 죽음 후 그의 아들 5대 군주 피에로 국왕의 핍박 가운데 산토스피리토 성당으로 잠시 피신해 간다.
산토스피리토 성당 지하실에서 미켈란젤로는 시신들 몇몇을 훼손하여 장기를 끌어내 스케치를 해 본다. 해부학의 의미가 깃든 조각 <다비드>가 탄생하는 밑거름이 된다.
프랑스 샤를 8세는 20만 대군을 이끌어 이탈리아를 침략하며 결국 피렌체를 점령한다. 프랑스 대군의 길을 열어주는 조건으로 희생을 줄이자는 묘수의 수도사 사보나롤라의 변절과 계략으로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피렌체 군대는 무장해제를 당하며 메디치가의 피렌체는 유린된다.
신혁명정부 기간에도 돈 벌기에 탄력 받은 미켈란젤로는 유통 구조에 눈을 뜨고 모든 프로젝트를 직접 거래하게되며, 심지어 돌을 사러 마차를 몰아 직접 간다.
미켈란젤로가 가장 싫어한 일 중 하나가 유통마진을 주는 것이었다.
미켈란젤로와 동시대에 살았던 천재화가 라파엘로는 피렌체와 그리 멀지 않은 도시국가 우르비노 왕국에서 태어났다.
라파엘로는 최고를 꿈꾸는 미켈란젤로와의 경쟁 아닌 마찰도 종종 있지만, 되도록 미켈란젤로 작품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라파엘로는 메디치가의 로렌초 일 마니피코 국왕의 둘째 아들인 레오 10세 교황 시절 수석 예술가의 직책을 맡아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바티칸 수석 예술가로써 너무 많은 중책과 교황 레오네 10세의 후원과 쇄도하는 작품 요청에, 작품 <아테나 학당>, <교황 레오네의 초상화> 등 명작들의 계속된 작업과 휴식시간을 할애해 진행한 무료강좌 등으로 누적된 피로와 과로로 쓰러진 천재 라파엘로는 보름을 앓다가 다른 세상의 별빛으로 사라지게 된다. 1520년 4월 6일이다.
메디치가가 배출한 또 한 명의 천재는 바초 반디넬리이다. 그는 미켈란젤로와 여덟 살 차이로 라파엘로와 같은 나이이며 피렌체가 배출한 또 다른 천재이다.
후기 르네상스를 장식하는 예술가이자 건축가였던 조르조바사리는 1511년 7월 30일에 태어나 굴리엘모 공방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조르조바사리는 코지모 1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롤모델이었던 미켈란젤로의 주검을 피렌체로 모셔 온다.
메디치가문을 중심으로 펼쳐진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치밀한 역사구조를 바탕으로 전개한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개신교를 지향했던 프랑스와 메디치가문의 교황청 사이의 줄다리기 싸움을 손에 땀을 쥐며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