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와 매화 보려고 전날 직접 운전을 하며 섬진강을 다녀왔는데 산악회에서도 2주 연속 전라남도의 바닷가를 간다. 3월 22일, 청주행복산악회원들이 강진군 도암면에 위치한 만덕산으로 산행을 다녀왔다. 바닷가에 우뚝 솟은 만덕산은 기암괴석과 절벽으로 이뤄졌고 아래편에 동백나무가 많은데다 산줄기에 유서 깊은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품고 있는 명산이다.
아침 7시 용암동 집 옆에서 출발한 관광버스가 중간에 몇 번 정차하며 회원들을 태우고 남쪽으로 향한다. 이른 아침부터 해가 힘차게 떠오른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호남고속도로 이서휴게소에 들렀을 때 배가 살살 아팠지만 갈 길이 멀어 화장실을 편하게 사용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부지런히 달리는 차안에서 개인사로 불참한 달콤 회장님을 대신해 짱구 부회장님이 감사인사를 하고 석진 산대장님이 산행안내와 처음 참여한 회원을 소개했다.
장성IC를 빠져나온 후 신북휴게소에 들렀던 관광버스가 영암읍을 지나자 오른쪽으로 월출산이 나타난다. 산에 그림으로 만든 청자 조형물이 나타나 강진에 왔음을 안다. 11시 5분경 앞에 부도비가 있는 옥련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북쪽의 옥련사에서 남쪽의 백련사로 동쪽의 강진만을 바라보며 산행을 한다. 산행 준비를 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주차장 바로 위에 있는 작은 사찰 옥련사를 둘러본다. 초입에서 활짝 꽃피운 진달래를 만나자 여자회원들이 좋아한다. 작년에도 꽃을 피웠고 내년에도 그 자리에 꽃이 피겠지만 인생살이는 한치 앞도 모르기에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만덕산 산행의 첫 관문은 필봉(옥녀봉)이다. 편안한 산길은 잠간뿐이고 초입부터 필봉까지 급경사 오르막이 이어져 힘이 든다. 그래서 200여m의 낮은 봉우리에도 이름이 있나보다. 산행을 하다 뒤돌아보면 뾰족하게 생긴 필봉 뒤편으로는 강진읍, 오른쪽으로는 강진만이 눈에 들어온다. 길옆을 벗어나면 북쪽 절벽 아래로 자연을 많이 훼손한 폐광(강진광업)과 제법 규모가 큰 임천저수지, 먼발치로 월출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의 봉우리를 지났는가하면 뒤편에서 다른 봉우리가 기다린다. 능선에서 오르내림을 반복할 수밖에 없어 결코 쉬운 산행이 아니다. 발아래로 보리들이 파릇파릇 돋아난 간척지와 강처럼 보이는 강진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행을 하며 지나온 봉우리와 앞으로 가야할 봉우리를 다 볼 수 있는 쉼터가 많아 좋다. 듬북쟁이봉과 깃대봉 사이에서 멋진 바위를 많이 만나는데 가까운 곳에 사격장이 있는지 산행하는 내내 총소리가 들려와 신경이 쓰인다.
만덕산 정상인 깃대봉(높이 409m)은 조망이 좋아 사방을 둘러볼 수 있다. 바닷바람이 차갑지만 남녘의 봄은 덥다. 깃대봉 너머 그늘에서 점심을 먹었다. 깃대봉에서 백련사 방향으로 능선을 내려서면 백련사와 동백숲, 양쪽에 다리를 놓아 육지와 연결한 수우도가 눈에 들어온다. 백련사가 가까워지면 산길도 부드럽다.
도암면 만덕리에 위치한 백련사(白蓮寺)는 만덕산에 있어 만덕사로 불리던 고찰이다. 또한 왕위를 세종에게 양보하고 전국을 유람하던 효령대군이 8년 동안 기거했던 사찰이기도 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로 맨 앞에 있는 만경루를 지나면 삼성각, 대웅보전, 명부전, 칠성각, 응진당을 차례로 만난다. 백련사사적비(보물 제1396호)는 아래편 빈터에 서있다.
백련사를 에워싸고 있는 동백숲(천연기념물 제151호)은 고창의 선운사와 함께 국내 최고를 자랑한다. 동백숲을 둘러보고 백련사의 혜장선사와 다산초당의 정약용이 오갔을 오솔길로 등성이를 넘는다. 등성이에서 조망이 좋은 해월루와 천일각을 차례로 만나는데 천일각은 다산이 함께 천주교 신자로 몰려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형님(정약전)을 그리며 눈물을 흘렸던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강진은 다산 정약용을 기억하게 만드는 곳이다. 책을 집필했던 동암은 솔바람 부는 산방을 뜻하는 송풍암으로 다산의 친필인 다산동암(茶山東菴),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모각한 보정산방(寶丁山房) 현판이 걸려있다.
다산초당(茶山草堂)은 사적 제107호인 조선 후기의 주택으로 다산이 유배지인 이곳에서 10년간 머무르며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 수많은 저서를 집필한 실학의 성지다. ‘茶山艸堂’ 현판은 다산을 평소 스승으로 존경하던 김정희의 글씨로 유명하다.
바위에 친필로 새긴 정석(丁石), 뒤뜰의 석간수 약천(藥泉), 아담한 연못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 차를 달이던 다조(茶竈) 등 다산의 유적들이 많다. 왼쪽의 서암(다성각)은 18명의 제자들이 숙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다산(茶山)이 차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차의 언덕을 뜻하는 호에서 알 수 있다. 베트남의 호찌민이 자신의 관 속에 목민심서를 넣어달라고 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나무뿌리가 계단을 만든 뿌리의 길을 지나면 윤종진의 묘를 만난다. 윤종진은 다산의 제자로 초가로 지은 서당인 다산초당의 주인이었던 윤단의 손자다. 묘 앞에 서있는 동자석이 귀엽고 앙증맞아 발걸음을 붙잡는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미소 짓는 표정이 너무나도 천연덕스러워 현대적 예술 감각마저 느껴진다.
2시 40분경 출발한 관광버스가 장성IC로 호남고속도로에 들어선다. 백양사휴게소의 그늘에서 순두부찌개로 뒤풀이를 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산악회원들이라 뒷정리까지 깨끗이 한다. 사람 꽃만큼 아름다운 꽃이 어디 있겠는가. 차안에서 손녀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행복 찾기를 했다. 관광버스도 먼 곳에 다녀오는 산행은 늘 시간에 쫓긴다는 것을 알아서 벌곡휴게소에 잠깐 들르고 부지런히 청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