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는 역사적으로 전쟁의 참화가 빈번했다. 이런 경험때문에 전쟁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섬뜩해지는 감정을 금할 수 없다. 한마디로 식민지, 한국전쟁, 군사독재 같은 폭력의 역사를 거치고 고도성장과 성공신화에 휘달리는 거친 한국인, 억압적 사회에서 판타지를 펼칠 자유로운 여유가 없었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느 누구도 전쟁이 종식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또한 잘 알고 있다. 헤르만 헷세의 말처럼 "전쟁이 근절될 것이라는 생각은 평화가 순간적으로 지속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착각"이다.
광야를 살아온 거친 우리 현실을 잘 묘사하여 보여주는 것이 한국 영화다. 칸 영화제에 초청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 상영회 도중 잔혹한 장면에서 관객이 소리 지르며 나갔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특별한 일은 아니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잔혹함을 아는 데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 관객이 실신해 실려 나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 영화는 유난히 잔혹하고 폭력적이다. 세계에서 인정받은 한국 영화에는 종종 이런 수식어들이 붙어왔다.
'잔혹하지만 아름답다. 기괴하지만 매혹적이다. 공포스럽지만 신비롭다.'고 평가한 한국 영화는 왜 이리 잔혹할까?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는 자극을 원하고 강한 자극이 예술과 돈이 되는 시대이니 우리라고 예외일 순 없지만 한국 영화의 폭력성에는 한국의 역사, 삶이 투영돼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폭력성을 지적하면 현실이 더 폭력적이지 않으냐는 답이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이번 문학 분야에서는 이를 극복하여 한국문학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선사하였다. 한강이 쓴 '채식주의자'이다. 이번에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도 흥미롭게 공포와 아름다움이라는 비슷한 심사평을 받았다고 전했다. 심사위원장은 '채식주의자'에 대해 “잊어지지 않는 강력하고 근원적인 소설. 정교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라고 했다. 많은 영미권 비평가와 언론의 평에도 충격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았다.
'채식주의자'는 육식으로 상징되는 폭력의 세계를 거부하며 식물이 되려는 한 여성의 극단적인 저항을 그린 작품이다. 인류 문명과 폭력에 대한 보편적 서사지만 어린 시절 개에게 물리자 아버지가 그 개를 오토바이에 매달고 달려 잡은 그 고기를 먹은 끔찍한 기억 같은 것들이 한국인의 기억이고 현실인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평가를 받은 한국문학이 맨부커상 수상으로 세계에 닿고, 문학 한류가 시작됐다는 기쁨은 충분히 만끽해도 좋을 시점이다. 하지만 소설이 이야기한 폭력적 우리 삶에 대해 성찰하는 것도 맨부커상 수상의 중요한 성과가 됐으면 한다. 수상 후 작가 한강은 “인간 존엄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고 싶었다. 인간에 대해 생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리 영화는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한국 작가는 세계적 문학상을 받는 시대이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전쟁보다 더 참혹한 살인극이 끊임없이 인간에 의하여 저질러지고 있다. 이런 참혹한 뉴스를 보면서 우리 어른들과 함께 아이들이 보면서 자라고 있다. 왜 이런 일들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제 우리 삶을 진짜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때가 왔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