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국가보훈의 달이다. 국가보훈처는 ‘보훈은 살아 있는 사람의 책임, 호국은 우리 모두의 의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적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호국보훈 행사를 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2016년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 땅, 우리 재산을 지켜온 240만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 195만 유엔군 참전용사, 1000만 제대군인, 300만 주한미군 근무 장병의 희생과 공헌을 명예롭게 하고 대한민국을 튼튼히 지키고 평화통일 기반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안보가 무너지면 국가도 국민도 없기 때문이다.
가장 큰 전쟁인 6.25전쟁의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시작돼 1953년 7월 27일 휴전까지 장장 1129일 동안 한반도 곳곳에서는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다. 국군과 유엔군은 나라와 평화 수호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전투에 임하며 많은 피를 흘렸다. 적군을 물리쳐 승전보를 올리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들에 의해 격퇴당하기도 하였다.
수많은 전투가 있었지만 전 국민의 힘으로 지켜낸 방어선은 낙동강 방어선 전투일 것이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는 국군, 경찰, 유엔군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전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승리를 이끌어낸 전투다. 우선 ‘낙동강 방어선’이 군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지역이었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
마산, 왜관, 포항 일대로 이어지는 낙동강 방어선은 유엔군의 보급기지인 부산에서 마산, 대구, 영천, 포항 등 전방지역에 이르는 방사형의 병참선이 구축돼 전쟁물자 보급과 병력 이동에 유리한 지역이었다. 또한 기동 예비대를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 자유자재로 투입해 효과적인 역습이 가능한 지역이었다. 이렇듯 중요한 지역이었으니, 국군과 유엔군은 이 방어선을 반드시 지켜내야 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 1개월이 지난 7월 말 북한군은 영덕, 안동, 상주, 진주를 잇는 선까지 진출했고, 국군과 유엔군은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키기 8월 초 낙동강까지 물러서서 ‘부산 교두보’라고 불리는 동남부 일원으로 방어선을 축소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8월 3일까지 왜관의 낙동강 철교와 인도교를 비롯한 낙동강의 모든 교량을 폭파한 뒤 8월 4일 새벽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를 완료했다. 국군은 왜관으로부터 동해안에 이르는 낙동강 방어선 북쪽을 맡고, 미군은 왜관으로부터 진해만에 이르는 서쪽을 맡아 긴밀한 공조와 협조체제를 유지했다.
전투는 매우 치열했다. 북한군은 8월 초까지 1개 전차사단과 9개 보병사단을 낙동강 전선에 투입했다. 또 다른 3개의 보병사단을 뒤따라 낙동강 전선에 투입했다. 이에 군국과 경찰, 유엔군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전투에 동참해 이 지역을 지켜냈다. 학생들은 학도병이나 학도의용군으로, 여건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전쟁 노무자로 전투에 참여했다고 한다. 8월 16일 미 공군의 B-29 폭격기에 의한 대규모 폭탄 투하로 왜관 전면에 포진해 있던 북한군 주둔지역을 완전히 초토화했고, 영천 지역 전투에서는 국군이 북한군 15사단을 전멸시키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러한 전투를 통하여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음을 보여줌으로 북한국의 공세는 힘을 잃게 되었다.
이같은 역사를 후세에게 가르치지 않으면 이 나라가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는지 알 수가 없다. 나라 사랑 교육을 통하여 이 나라의 소중함을 가슴에 심어야 한다. 내가 속한 나라가 어떤 공동체이고, 어떤 나라인지, 어떤 역사로 살아왔고,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교육이다. 내가 속한 나라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자각과 감성을 키우는 교육이다. 모든 국민에게 “나라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켜 주는 교육이다. 국가안보에는 물리력도 중요하지만, 정신력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육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