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한국인들이 전쟁의 영향을 받았다. 직접적으로 재산이 없어지고 사랑스런 가족을 잃은 것이다. 이산가족도 많았다. KBS가 방영한 이산가족 찾기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또, 전쟁으로 죽고 상처받고 정신적으로 피해받은 군인들에게는 부모와 아내, 자식, 조카, 삼촌 등 많은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친구들까지 포함한다면 전쟁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의 친구들도 6,25 때 아버지를 잃었다. 그런가 하면 외국인들도 남의 나라 전쟁터에 와서 전사함으로 부모를 잃었고 형제를 모른 채 살기도 했다. 이런 전쟁의 아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부산 대연동에 위치한 유엔기념공원에는 6·25전쟁 중 전사한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이다.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장병들이 잠들어 있다. 6·25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해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했고, 그해 4월 묘지가 완공됨에 따라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지에 가매장 돼 있던 유엔군 전몰 장병들의 유해가 차례로 이송돼 안장됐다. 이후 일부 유해는 그들의 조국으로 이장됐고, 현재는 유엔군 부대에 파견 중 전사한 한국군 36명을 포함해 11개국 2300구의 유해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유엔은 1950년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거쳐 국제연합군을 파병했다. 이는 유엔군의 이름으로 세계 분쟁지역에 파병한 유일한 사례다. 1955년 11월 한국은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1959년 11월 유엔과 한국 간에 ‘유엔기념묘지 설치 및 관리·유지를 위한 대한민국과 유엔 간의 협정’이 체결됐고 지금의 재한유엔기념공원(UNMCK :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레오 드메이씨는 캐나다인 전몰장병 앙드레 레짐발드(Andre A. Regimbald)의 아들이다. 2007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태어나자마자 입양된 그는 2006년 친모를 만나 전몰장병인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이듬해 아버지가 안장된 부산으로 건너와 아버지 곁에서 남은 삶을 보내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뒤에야 임신한 사실을 알게되었다. 이후 레오 드메이씨는 입양되어 자랐고, 수십 년 뒤 어머니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한 전몰장병이란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고, 다행히도 아버지를 알고 계신 생존해 있는 참전 군인들을 만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의 존재, 한국전 참전용사로서의 희생은 그로 하여금 어떤 자부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있게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전우들은 그들이 해야 마땅한 일들을 하셨어요. 그들은 침략당한 한 나라를 구했고, 한국이 자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왔죠. 그들 모두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라고.. 2007년 드메이 씨는 뒤늦게 찾은 아버지의 묘 앞에서 오랫동안 전하지 못한 가족들의 안부를 전했다.
그런데 그는 몇 년 전 서울에서 6·25 참전국이 어딘지 묻는 길거리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그때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마음 속으로 얼마나 섭섭했을까 짐작이 간다. 심지어 그 국가들은 지금까지도 한국과 동맹국으로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그는 한국인들이 자신들을 위해 싸운 참전국과 전사자들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고 있다. 6·25 전쟁은 대한민국이 국제사회로부터 막대한 빚을 진 채 막을 내렸다. 전쟁이 끝났다고 모든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역사를 가르친다.
16개국에서 총 34만1000여명이 참전해 절반 가까이가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거나, 부상을 당했다. 부산에 있는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는 그 상징이다. 영국(885명), 터키(462명), 캐나다(378명), 호주(281명), 네덜란드(117명), 프랑스(44명), 미국(36명), 뉴질랜드(34명), 남아프리카공화국(11명), 노르웨이(1명)의 전몰장병들이 이역만리 타향 땅에 묻혀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하지만 ‘원조를 주는 나라’라는 표현보다도 ‘국제사회에 크게 진 빚을 갚기 시작한 나라’임을 고백하는 게 어떨까. 겸손함을 넘어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한국 현대사를 온전하게 살피도록 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