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 어린 시절 학교 돌아오는 길에 엄청난 빗속을 달리면서 느꼈던 것 가운데 하나가 벼락치는 것 이었다. 그 때는 벼락의 원리도 몰랐고 어딘가에 불빛이 퍼지면서 뭔가 무너지는 소리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벼락도 같은 곳을 두 번 치지 않는다는데 어찌하여 한민족은 한 세기 안에 두 번이나 날벼락을 맞을 수 있었을까. 그 첫째가 1910년 나라를 일본에 강탈당한 벼락이다. 둘째는 1950년 6·25사변으로 삼천리 강산이 송두리째 파괴되고 수백만의 사상자와 수천만의 피란민을 남긴 전쟁이란 벼락이었다.
6.25 한국전쟁이 올해로 66주년을 맞았다. 끔찍했던 전쟁의 포연 속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겠다고 그토록 다짐했건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우리는 또다시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53년 맺은 휴전체제는 63년이 지난 지금껏 지속돼 오면서 오늘의 한반도 상공엔 여전히 전쟁의 먹구름이 걷히지 않고 있다. 최근의 상황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지난 반세기를 되돌아보면 눈물겨운 시절도 많았다. 어려운 고난을 길을 지나오면서 세상의 중요한 가치들이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가치 중 하나가 '대한민국, 국가라는 존재'이다.
6월은 나에게 가장 바쁜 달이었다. 때로는 오전에도, 오후에도 나라사랑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달려 다녔다. 그런데 이런 교육활동을 하면서 학교현장을 많이 방문하게 되었다. 학교의 모습이 눈 안에 들어온다. 4여년 이상을 학교를 중심으로 살았던 필자는 경험 많은 의사가 환자의 눈빛만으로 질병을 파악하듯이 학교의 문화, 향기가 베어나오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다. 그저 형식적으로 외부 강사를 맞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금도 그런 나라사랑 교육이 필요하냐" 고 묻는 참으로 한심스런 사람도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자신은 국가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인인가 의심이 간다.
교사란 이땅의 정신적 지주로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하여 일하고 그 댓가로 급여를 받아 자신들의 가족과 삶을 영위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지위가 무엇인가, 어떤 구조로 만들어져 오늘을 살고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시대의 발전에 따라, 그리고 외국의 영향을 받아가면서 우리의 교육은 발전을 거듭하였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영미식의 교육전문직에 의한 학교교육 체제가 전 세계에 보급되었다. 교직은 우리나라에서도 전문직으로 분류되어 그 지위가 법률로 규정되어 자격과 권능이 나온다. 즉, 법률에 의하여 교사의 자격과 전문직의 내용은 대학이 양성과정을 통하여 공급한 것이다. 이 전문직 단체가 국가 및 대학과 협력하여 전문직 서비스의 이념과 직무윤리를 확립한 것이다.
이를 좀 더 생각하여 보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우면 우리가 누리는 행복도, 지위도, 권한도 모두 사라지게 된다. 이 순간이 된다면 우리는 짐승과 같은 세계 속에서 사는 거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교사와 국가는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통하여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은 결과 빈 수레가 되어 학생들 앞에 서는 모습은 교사의 본질은 아니라 생각된다.
오늘의 한반도가 처한 위기를 직시하여야 한다.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으로 시작된 핵무기 시대의 공포와 저주가 북한의 핵강국화 정책으로 우리 민족의 생존과 직결돼 버렸다. 이러한 북한의 선택은 한반도와 나아가 동아시아를 완전한 핵무장 지역으로 만들어버리는 파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놓게 된 것이다. 그러한 공멸의 수렁으로 우리 민족과 아시아의 이웃이 함께 추락할 미증유의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는 미·중·러·일 등 강대국 간의 이해 관계, 남북한의 대결, 그리고 우리 국민의 일치된 국민적 의지란 3차원을 연계하는 평화구조 건설의 고차원적 외교가 성공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역사적 도전에 의연히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오늘 맡고 있는 교육을 통하여 국가관이 투철한 군인, 국민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하는 올바른 정치인,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외교관은 물론, 경제, 교육 등 각 분야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할 인간을 기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자각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