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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선생님, 제 이름 아세요?”

개학하자마자 아이들이 네게 준 숙제, “저희 이름 다 외우세요!”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개학(8.22)을 하고도 이 지겨운 무더위가 꺾일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개학이 아이들에겐 그다지 달갑지만 않은 듯 보였다.

개학 첫날. 2학년 ○반 1교시. 교실 문을 열자,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그들만의 방학이야기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몇 주 만에 만난 아이들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방학 동안,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은 듯 모든 아이가 대체로 건강해 보였다.

아이 중, 유독 얼굴을 까맣게 태운 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방학 중 그 아이가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여 물었다. 

“○○아, 방학 동안 무엇을 했기에 얼굴을 그렇게 태웠니?”
“……”


내 질문에 그 아이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옆 짝과 계속해서 수다를 떨었다. 내심 교실이 너무 시끄러워 내 말을 듣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정숙 시킨 뒤 재차 물었다.

“○○아, 방학 동안 무얼 했니?”
“……”


이번에도 녀석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녀석의 행동에 조금씩 화나기 시작했다. 참다못해 녀석의 자리로 다가가 대답을 직접 듣기로 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녀석은 마치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태연한 척했다. 그 태도가 나를 더 화나게 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요∼녀석, 선생님 말에 대답도 안 하고 딴 짓을 해?”

그러자 녀석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선생님, 제 이름은 ○○이가 아니라 ○○이인데요. 그리고 저희 반에 그런 아이가 없는데요. 선생님, 혹시 제 이름 모르시는 거 아녜요?”

녀석의 말에 순간 교실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잠시 뒤,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아이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제 이름 아세요?”
“네 이름 ○○○이잖아.”


그 아이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 다행이었으나 행여 그 아이 이름마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더라면 하마터면 아이들 면전에서 봉변을 당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때문일까? 녀석은 수업시간 내내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녀석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업(UP)시켜 주기 위해 수업 종료종이 나자마자 녀석의 이름을 크게 불러주며 파이팅을 외쳤다.

“○○○, 파이팅!”

내 파이팅에 녀석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표정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가 않았다.

학기 초, 아이들의 이름을 제대로 외워두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한편 아이들이 교과담임인 내 이름을 모르고 있다거나 잘못 알고 있으면 내 기분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름지기 아이들 또한 나와 똑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무시당하는 기분.

언제부턴가 인권 운운하며 교복에 명찰을 달지 않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이름이 쉽게 외워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가르치는 아이들의 이름과 심지어 번호까지 모두 외워 아이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행여 실수라도 할까 이름 대신 번호를 부를 때가 많다. 아마도 그건, 이름을 못 외워서가 아니라 외우려고 하지 않는 관심의 문제인 듯싶다.

수업시간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든지 학급에서 다른 아이보다 톡톡 튀는 아이의 이름보다 내성적인 성격에 얌전히 공부만 하며 학급에서 존재감이 별로 없는 아이의 이름이 쉽게 잘 외워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선생님은 학년이 다 끝나가도 그 아이들의 이름을 모른 체 지나가는 경우도 더러 있다.

문득, 막내 녀석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 기억난다. 평소 학교에서 돌아오면 말을 잘 하지 않았던 녀석이 모르는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것에 좋아하며 학교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녀석은 생각지도 않은 선생님이 자기 이름을 불러준 것에 감동한 모양이었다.

그날 퇴근 전, 내가 가르치는 학급의 출석부에 나온 아이들의 사진과 명렬표를 복사하여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고 또 외웠다. 번호 대신 이름을 꼭 불러줌으로써 아이들의 자존감을 살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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