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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내가 가르쳤던 민주정치의 뿌리는 어디에

 한 국가의 권력구조는 그 나라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민주국가의 권력 틀을 이루는 정치로 영국을 표본으로 하는 의원내각제와 미국의 대통령제로 크게 구분을 한다. 우리 나라는 여러 차례 정치적 변화를 겪어오면서도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1776년 영국에서 독립을 쟁취한 뒤 ‘대통령제’란 새로운 제도를 택하였다. 이는 군주제의 폐해를 직접 경험하면서 권력 집중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군주가 모든 권력을 갖는 제도와 달리, 의회와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 그리고 사법부가 서로 견제하며 권력을 균점하길 바랐다. 특히 의회가 너무 거대해질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의회를 상·하원으로 나누고, 대통령이 의회를 적절하게 견제해주길 원했다. 미국 헌법 1조에 의회의 권한을, 2조에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한을 명시한 건 이런 현실적 역관계를 반영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남북전쟁과 국가의 팽창을 거치며 행정부를 이끄는 대통령 권한이 계속 커졌다. 결정적 계기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이었다. 1933년 집권해 4선을 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공황 극복을 위해 경제 분야로 대통령 권한을 확장했다. 또 2차 세계대전은 외교·국방까지 대통령이 틀어쥐게 했다. 전쟁과 공황 같은 ‘비상시국’에 대통령의 권한 확대는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로 루스벨트는 ‘제왕적 대통령’의 효시였다.

그래도 삼권분립은 여전히 미국 대통령제의 기본 토대다. 의회는 차관보급 이상 행정부 관리의 임명을 청문회 제도를 통해 제어한다. 상원의원 한명이라도 반대하면 고위공무원 인준은 여러 달씩 지연되기 일쑤다. 복수의 상원의원이 반대한다면 대통령이 장차관을 임명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대통령은 법안 통과를 위해 여당뿐 아니라 야당 의원들을 수시로 백악관과 에어포스원(대통령 전용기)으로 불러 설득한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건국 초기의 고민은 제거된 채로 우리는 해방 이후 대통령제를 받아들였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제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이대통령은 권력을 사유화했고 장기집권을 위해 편법으로 헌법을 바꿨다. 그 결과가 1960년 4월 혁명이 일어나 피를 흘려야 했다. 


매우 불합리한 것 같은 미국 대통령제를 안정시킨 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었다. 워싱턴은 온건하고 초당적이며 국민 권리를 지키는 데 적극적이되 권력 행사를 스스로 조심함으로써 ‘왕’과는 다른 ‘대통령’의 전형을 만들어낸 것이다. 미국민들이 조지 워싱턴을 국부로 칭송하는 건, 초대 대통령이라서가 아니라 바람직한 대통령상을 정립해 대통령제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3공화국 들어서 박정희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국적 형태를 완성했다. 고도성장을 이끈 관료자본주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여기에 중앙정보부·검찰·경찰을 사유화해 권력을 대통령 1인에게 집중시켰다. 아마도 대통령이 보고 느끼면서 자란 건 바로 이런 대통령제의 개념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은 너무 권력이 분산되고 국회와 언론은 말을 듣지 않아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인간의 시야는 보고 배운 것에 구속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세계 정치사의 권력 구조 변화 속에서 수백년간 대통령제가 살아남은 데엔 ‘권력 분산’과 ‘견제와 균형’이란 원리의 힘이 컸다. 이에 비추어 대통령이 국회의 장관 해임 건의를 거부한 건 이 원리를 뿌리째 흔드는 거나 다름없다. 국회 견제를 거부하고 여론을 무시하면 제왕과 다를 게 없다. 신하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무조건 보호하는 것도 제왕적 속성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정치사 숱한 위기 속에서 대통령제가 국민 지지를 잃지 않은 건, 그래도 과거 독재자들 역시 야당 요구에 최소한의 응답은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야당의 견제를 묵살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사회를 가르친 제자들이 60대가 되었다. 대통령제가 갖는 특성을 현실적으로 보지 못한 제자들이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국가 맞아요 하고 묻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도록 정치가 돌아가길 기대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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