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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획일화 교육 조장 우려…변칙적 등급제 왜 방치

고교 등급제가 저착될 경우 고등학교는 물론 초등학교까지 점수위주의 획일화된 교육의 멍에를 벗어날 수 없다.

이성(경기 군포초 교사)




2002학년도 대입 2학기 수시모집 전형에서 연세대, 고려대 등 명문사학을 중심으로 외국어고교 등 특정 고교 출신에게 가중치를 적용하는 사실상의 ‘고교등급제’를 실시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은 “대학이 신입생 선발에서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고교간 학력 차이에 대한 인정이 허용돼야 한다”며 고교등급제 실시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모 사립대 입학관계자는 “이들 특목고생들은 정시모집에서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우수한 학생들”이라며 “고교에 따라 성적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특목고생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학교의 방침”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교등급제는 우리 나라 초·중등 교육의 방향을 좌우하는 중대한 결정이다. 모든 정책에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면 긍정적 측면과 함께 부정적 측면도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 교육계는 대학입시에서 서열 매기기식의 평가를 벗어나지 못함에 따라 나타나는 교육적 병폐를 수없이 지적하여 왔다. 여기에 고교등급제까지 시행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중·고등학교의 파행적 교육과정 운영이 더 심각해질 것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상위권 대학의 입시제도는 초·중등의 모든 교육 활동을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교 등급제가 정착될 경우 고등학교는 물론 초등학교까지 점수위주의 획일화된 교육의 멍에를 벗어날 수 없다.
실제로 고교등급제 시행 발표가 있은 직후 실시된 2002년 고교입시에서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 특목고 및 비평준화 지역 서열이 높은 학교의 지원율이 급상승하였다. 물론 지원 학생의 성적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중학교에서 특목고 진학을 위한 과열 경쟁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고교등급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원했던 결과는 결코 아닐 것이다.
우리 나라 중·고등학생의 학습량이 적어서  교육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서열화된 점수에 의존하는 평가제도는 다른 어떤 창의적 활동도 불가능하게 한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스스로 선택하여 조직, 통합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창의적 능력과 능동성이 계발될 수 있다. 그러나 경쟁입시 체제는 학생들에게 시행착오를 허락하지 않는다.
현재 고등학교는 평준화 체제와 비평준화 체제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평준화 체제에 대한 찬반 양론이 있기는 하지만 평준화를 지지하는 국민 여론이 더 높다. 경기도 신도시, 울산광역시, 익산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교평준화 체제가 확대되는 추세이다. 평준화 지역 중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선택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컴퓨터 추첨에 의해 학교를 배정받을 뿐이다. 소속 학교가 어디냐에 따라 입시전형에서 차별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교육기회 균등의 원칙에 위배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특히 수험생의 소질이나 발전 가능성보다는 선배나 학교 이름에 따라 능력이 결정되는 위헌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과학고, 외국어고와 같은 특수목적고, 조리고, 애니메이션고와 같은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은 동일 계열로 진학할 때 그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할 대학의 자율성이 존재한다. 굳이 고교를 서열화할 필요는 없다.  
고교등급제는 대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오직 수능점수를 통해서 대학과 학과를 평가하는 현재의 입시제도는 일부 명문대에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를 고집하는 한, 대학의 발전은 없다. 각 대학은 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목고와 지방명문고 졸업생들을 받으면 우수대학, 우수학과를 유지할 수 있다는 손쉬운 운영 방침을 버려야 한다. 이제 대학은 입학 성적 우수자에게 대학의 위상을 맡겨서는 안된다. 우리 나라 교육경쟁력이 떨어지는 주요한 이유는 대학교육과정의 문제에 있다. 대학이 신입생 선발에 쏟는 노력을 대학교육과정의 질 개선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각 대학 고유의 특성화된 교육과정 개발과 적절한 투자, 그리고 대학교육의 결과를 가지고 평가받을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98년 이해찬 교육부장관은 대학 무시험전형을 골자로 하는 ‘2002년도 입시안’을 밝혔다. 당시 이장관은 “시험성적위주로 나타나던 고교간의 학력차는 앞으로의 진학방식에서는 통용될 수 없다”며 “과학고, 외국어고, 농업고 등 학교운영이 특성화된 학교 출신들의 동일계 진학 시에만 이를 고려할 것”이라고 분명히 했었다.
이 말을 믿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이 처음으로 진학하는 올해 대학입시에서 교육부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입시제도를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비밀리에 변칙으로 고교등급제를 시행하는 대학들이 있다. 그런데 교육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누가 교육부의 정책을 신뢰하겠는가?  
교육부는 ’98년, 무시험 전형을 골자로 한 “2002년도 입시안”을 발표할 때와 지금의 고교 등급제를 묵인하는 입장의 차이를 밝혀야 한다. 말로만 아무리 고교 등급제가 잘못된 것이라고 해봐야 학부형과 학생들은 믿지 않는다.    
고교등급제와 관련한 교육인적자원부의 정책방향은 앞으로 교육인적자원부의 신뢰지수와 관련한 중요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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