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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한줄세우기 교육과 학벌풍조 타파 방안

수능 총점에 의한 선발 방식이 있는 한, 학생은 과중한 수험부담을 지게되고 대학간 서열화는 더욱 고착될 것이다.



남명호(한국교육과정평가원 평가조정위원)



교육부는 지난 1998년에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 총점을 폐지하고 1∼9등급으로 나누어 등급을 제공하며, 5개 영역별로는 점수와 그에 따른 백분위점수와 등급을 함께 주기로 하였다. 교육학자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한 세미나와 각계각층의 인사를 대상으로 수차례의 공청회를 거쳐 마련한 개선안의 내용 가운데, 총점과 총점에 의한 백분위점수(석차)를 폐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학생들은 누구나 다양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잠재력은 모든 교과에 걸쳐 나타나기보다는 개별 교과 또는 특정 교과에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수능 총점에 의한 선발 방식은 학생들의 특기와 적성을 계발시키려는 교육과정 운영을 무력화할 뿐더러 학생에게 이것저것 고루 잘하는 만능인이 되도록 요구함으로써 학생의 수험부담이 과중되고 결과적으로 인적자원의 양성에도 고비용 저효율을 가져오게 된다.
지난 12월 4일 발표된 OECD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연구(PISA) 결과는 이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OECD 32개 국가 중 우리 나라 학생의 성취 수준은 과학 1위, 수학 2위, 읽기 6위 등 세계 최상위에 속하지만, 상위 5% 학생들의 점수는 수학 6위, 과학 5위, 읽기 20위로 떨어진다. 특히, 읽기는 OECD 전체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앞으로 충분히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하지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나라의 교육이 학생에게 모든 과목을 두루 다 잘 하도록 하여 결과적으로 어느 한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기르는 데는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같은 병폐를 고치기 위해 총점이 아닌 영역별 점수로 학생이 가지고 있는 적성과 특기를 고려하자는 것이 새 입시제도의 취지였던 것이다. 학생들의 과중한 수험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관심이 있고 적성에 맞는 과목을 깊이 있게 공부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모든 분야를 두루 잘하는 학생도 필요하지만, 어느 한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학생에게도 관련 전공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총점주의는 대학간에 상존해 있는 서열을 더욱 고착화하여 대학의 다양화와 특성화를 통한 대학간의 선의의 경쟁을 사라지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의 타파는 더욱 요원하게 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총점 석차에 의한 학생 선발이 어려워지면서, 대학에서도 교육 이념과 설립 목적에 따라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전형자료를 활용한 전형방식의 특성화·다양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즉, 학교생활기록부의 교과 기록, 비교과 기록, 수능 성적, 수능 등급, 면접, 논술, 실기고사 등 전형자료가 다양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 자료의 반영 여부와 그 방법이 대학별 모집단위에 따라 독특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3년 전부터 폐지하기로 발표한 총점 석차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교육 정책의 공신력을 떨어뜨림은 물론, 모처럼 확대되고 있는 다양한 전형자료를 통한 학생 선발이라는 바람직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된다.
물론, 절반이 넘는 대학이 금학년도 입시에서 5개 영역 전체 성적을 반영하고 있는 현실에서 총점 석차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진학지도 교사와 학생, 학부모에게 불편을 줄 것이다. 하지만, 진학지도를 맡은 선생님들은 조금 힘이 들더라도 총점 석차에 의해 진학 지도를 하기보다는 학생이 수능의 어떤 영역에 강점이 있는지, 그리고 평소 학교 생활에서 나타난 학생의 적성과 소질, 내신 성적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진학지도를 해야 할 것이다. 총점 석차에 의해 점수대별로 일렬로 줄세운 대학이나 학부(과)에 학생을 끼워맞추는 방식은 이미 진학지도라고 할 수 없다. 다행히, 일선의 많은 교사들은 금학년도에 총점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에 대한 대비를 해 온 것으로 안다.
총점 석차 정보에 의한 진학지도가 사라져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2003학년도 고등학교 신입생들은 7차 교육과정에 따라 수업을 받게 되므로 이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2005학년도에는 새 교육과정의 특성을 반영하여 개편한 수능시험을 보게 된다. 지난 12월 28일 발표된 개편안에 따르면, 학생들은 6개 영역 중 선택에 따라 일부 영역만 응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특히, 사회탐구영역은 11과목 중 4과목, 과학탐구영역은 8과목 중 4과목을 각각 선택하게 되므로 학생마다 각기 다른 과목의 시험 준비를 하게 된다. 대학에서 요구하는 시험 영역과 과목 또한 모집단위별로 다양할 것이므로 총점의 개념은 사실상 무의미하게 된다.
고등학교는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무시한 채 사설 입시 기관이 작성한 대학 및 학과 배치기준표에 의해 학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비교육적인 진학지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할 것이며, 여전히 총점에 의해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들은 영역별 점수를 고려하는 선발 방식으로 전환해야 2005학년도에 큰 혼란없이 입시를 치를 수 있을 것이다.
인적자원 이외에 가진 게 별로 없는 우리 나라가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소질과 적성이 다양한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양성하여 각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를 많이 길러내는 것이다. 대학 입시에서 총점 석차제 폐지는 그 점에서 효율적 인적자원 양성을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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