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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땅, 방학은 땅의 생산력 높이는 휴경기

가르치면서 아쉬움을 느껴 직접 공부하고, 자신이 배운 것을 또 다른 교사에게 가르쳐 주면서 스스로의 배움도 한 단계 높아짐을 느낀다는 서울 미성초 박태훈 교사. 그 배움과 가르침을 실천하며 보내는 방학은 박 교사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간으로 보인다. 방학이면 어김없이 교원직무연수 강의로 바쁜 그이기에 잠시 짬을 내 인터뷰했다.

권지은(자유기고가)


오후 2시. 아이들이 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시간, 박태훈 선생님(32)을 만나기 위해 서울 미성초등학교를 찾았다. 며칠 있으면 시작되는 겨울방학을 앞두고 방학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설레임이 하교길 재잘대는 목소리 속에서 느껴졌다.
아마도 방학은 아이들뿐 아니라 교사에게도 기다려지는 시간일 것이다. 한 달이나 되는 휴가가 일 년에 두 번이나 있다는 사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일 중독으로 아둥바둥 살아가기 바쁘다고 하지 않나. 그런 일반인들이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는 방학이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교사라는 직업이 더 없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3학년 8반 교실에서 만난 박태훈 선생님도 사실 그 점이 교직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물론 어릴 때처럼 방학이 마냥 설레기만한 건 아니다. 박태훈 선생님이 처음 교사로 발령을 받은 게 1993년 가을이니 교직에 몸담은 지도 10년이 가까워오는 셈이다. 처음엔 방학 때마다 국내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면서 정말 방학다운(?) 방학을 보냈지만 8년이 지난 지금은 학기중일 때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방학 스케줄은 직무연수 강의로 꽉 채워

솔직하게 ‘방학이 좋아서 교직을 선택했다’는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다면 빽빽한 겨울방학 스케줄이 다소 억울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다(얼마나 바쁘게 사시는지 인터뷰 시간도 정말 간신히 얻어냈다). 마침 오늘 겨울방학 계획표를 만들어오라고 숙제를 내셨다는 박태훈 선생님께, 그렇다면 선생님의 겨울방학 계획표를 한 번 보여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당장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월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간 교원자율연수 15시간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다음 얼마 남지 않은 연말까지는 수료증을 준비하고 연말결과 보고 등 행정적인 업무처리가 잔뜩 기다리고 있었다. 또 1월 10일까지 교육연수 자료 계획서 및 자료를 제출해야 하고 1월 16일부터 25일까지 교원단체총연합회 교원직무연수 60시간을 맡았다. 그러고 나면 방학이 거의 다 끝나가는 거였다. 바쁜 일정 짬짬이 시간을 내서 학교에도 나와야 한다. 이러고 보니 정말 방학이 방학이 아니었다. 방학이 휴가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특히 두 번으로 잡혀 있는 교원연수가 이번 방학 중 박태훈 선생님에게 가장 중요한 스케줄이다. 선생님이 강의하는 건 컴퓨터 사용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들. 이를테면 글이나 교육용 CD 사용법, 인터넷 자료를 활용에 프리젠테이션 만드는 법 같은 것들이다. 강의를 듣는 학생은 정보화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아직도 컴퓨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40대 후반부터 50대까지 선생님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아이들 가르칠 때랑 선생님들 가르칠 때, 언제가 더 어렵냐고 짓궂게 물어 봤더니 웃으며 대답하신다.
“물론 선생님들 가르칠 때가 더 어렵죠.(하하) 아무래도 이해력도 아이들보다 떨어지고, 각 클래스 35명 정도를 대상으로 연수를 시키는데 한 사람 한 사람씩 개인차가 많아 진도를 맞추기가 어려워요.”
그래도 어려워하면서도 열의를 갖고 열심히 배우고자 하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볼 때, 또 나중에 연수받았던 선생님들을 우연히 만나면 연수받았던 내용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고마워 하실 때 열심히 강의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박태훈 선생님은 자신이 맡은 연수를 봉사라고 생각하신다.
사실 우리 나라 교육정보화 수준은 물리적인 측면에서는 이미 선진국 수준에 올라서 있다. PC 보급이나 학내망 구축 등 인프라는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다. 그러나 그런 물적 기반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한 게 우리 교육계의 현실. 특히 나이가 많은 교사들의 컴퓨터 활용능력은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현재 연간 전체 교원의 25%가 방학 때마다 정보화 연수를 받고 있으며 앞으로 연수를 더욱 강화하게 되면 훨씬 활용도도 높아질 것이라 생각된다. [PAGE BREAK]89학번인 박태훈 선생님도 컴퓨터를 배운 건 대학을 졸업한 후라고 한다. 학원에서, 그리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컴퓨터나 인터넷이 교육에도 적극 도입될 것이라고 생각해 스스로 찾아 공부했다고. 지금 미성초등학교 교육정보부장을 맡고 있으면서도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
“제가 가르치는 내용은 컴퓨터에 대한 기본 지식이에요. 간단하게 문서 프로그램 사용하고 인터넷 자료 활용하는 방법 같은 거 말이죠. 연수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많이 있어요. 기본 강좌에서 시작해 그래픽도 있고, 홈페이지 과정도 있구요. 저도 지난 여름방학 때 그래픽 30시간 연수를 받았어요. 방학 때마다 강의를 하지만 제가 연수를 받기도 합니다. 다른 강의를 맡고 계신 선생님들과 계속 연락하면서 정보 교환도 하구요.”

“방학은 생산적인 교육을 위한 준비기이죠”

박태훈 선생님에게 방학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바로 이때가 교육자료를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점. 처음 혼자서 컴퓨터를 배운 것도, 지금도 꾸준히 연수를 받으며 공부하는 것도 교육자료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방학 때마다 준비한 교육자료로 ’99년에는 전국 1등급, 지난 해에는 서울시 2등급 우수자료로 선정됐다고 한다. 그 자료들은 교육용 CD로 제작되어 현재 교육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어떤 자료인지 좀 보여달라고 했다. 현악기에 관한 음악용 교육자료였는데 교과서에 실린 현악기 감상곡들까지 담겨 있어 활용도가 높은 자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르치면서 아쉬움을 느껴 직접 공부하고, 자신이 배운 것을 또 다른 교사에게 가르쳐 주면서 스스로의 배움도 한 단계 높아짐을 느낀다는 박태훈 선생님. 그 배움과 가르침을 실천하며 보내는 방학은 선생님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간으로 보였다.  
“저는 교육은 생산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교사는 땅이죠. 영양가 높은 곡물을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 곡식을 심는 그 땅이 얼마나 비옥한가가 정말 중요하죠. 농사지을 때 보통 2~3년 경작하고는 1년을 쉬면 좋다고 하잖아요. 교사에게 있어 방학은 바로 그 휴경기에 해당돼요. 물론 그냥 쉬는 게 아니라 연수도 받고 교육자료도 준비하고 자기 계발도 할 수 있는 시간이죠.”
그러고 보니 교사에게 있어 방학은 ‘쉴’ 휴(休)자의 개념이 아니다. 땅은 그냥 묵히면 되지만, 교사에게는 이 휴경기가 보다 생산적인 교육을 위한 준비기인 셈이다.  
박태훈 선생님이 가장 인상깊게 기억하는 방학은 언제였을까? 의외로 대답이 싱겁다.
“특별히 기억나는 방학이라기보다 어릴 때 방학하면 한달 내내 신나게 놀았던 기억밖에 없어요. 요즘 애들은 학원 다니느라 바쁘죠. 그래도 방학 끝나고 숙제 낸 걸 보면 시골에도 다녀오고 하더군요.”
만약 컴퓨터 연수하는 거 외에 한 달 방학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다면 뭘 하겠냐고 물었더니 가족과 함께 해외 배낭여행을 하고 싶다고 한다. 요즘 대학생들 사이엔 이미 배낭여행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80년대 학번인 선생님이 대학 다닐 때만 해도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고. 딸 지원이가 네 살, 아들 성균이가 지난 11월에 태어나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서 그 계획을 좀더 나중으로 미루고 있지만 언젠가 꼭 아이들 손잡고 다녀오실 거라고 한다. 물론 대학 1년 후배이자 교사 동료인 부인 장민화씨(31, 신정초등학교 교사)도 함께 말이다.
학창시절 방학 때마다 담임 선생님께 꼭 편지를 썼던 기억이 있다. 크리스마스 때는 정성껏 만든 카드를 보냈었고. 요즘 아이들은 N 세대답게 이메일을 이용한다고 한다. 이번 겨울방학 때 메일을 몇 통이나 받을 것 같냐고 질문했더니 ‘글쎄, 10통 정도?’ 하신다.
“방학하면 선생님이고 학교고 다 잊어 버려요. 생각보다 많진 않을 거예요.”
아니, 이런 괘씸한 것들!
정성껏 접어 우편함에 넣던 고전적인(?) 편지와 이메일 사이에서 격세지감을 느끼며, 그럼 겨울방학 숙제검사는 홈페이지로 하시냐고 물었더니 홈페이지를 갖고 있지 않으시단다. 아니 홈페이지 만드는 법 강의도 하시면서 정작 본인은 그 흔한 홈페이지도 하나 없다니?
“너무 바빠서 홈페이지 만들 시간이 없어요. 예전에 몇 번 만들긴 했는데 도저히 운영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문을 닫았어요. 아마 교육정보부장 맡고 계신 선생님들 거의 대부분이 그럴 걸요?”
또다시 바쁜 생활을 강조하신다.
[PAGE BREAK]어쨌든 이미 컴퓨터 환경에 익숙한 아이들을 가르치려니 요즘 교사들은 이래저래 힘들다. 컴퓨터가 아직 낯설고 두려운 동료 선생님들을 위해 한마디 해 주십사, 부탁드렸다.
“현재 교육정보화 사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학내망과 교단 선진화 기자재를 통한 멀티미디어 학습이 교수-학습 방법의 하나로 도입되고 활용되고 있죠. 그러나 수업의 중심은 그런 인프라를 활용하는 교사와 아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교육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변화에 부응하는 수업을 위해서 교사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도구를 잘 활용하는 교사는 이미 자신이 갖고 있는 교육적 자질과 융화하여 보다 효과적인 수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 낯설고 두려운 기계 앞에서 고민하는 교사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 교사들은 충분히 이런 어려움을 이길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항상 아이들에게 말씀하시듯 처음 단계부터 차근차근 내딛어 보세요.”
‘땅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지난 일 년 농사를 열심히 짓고, 또 다음 농사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박태훈 선생님. 스스로 기름진 농토가 되고자 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그 땅에서 자라날 어린 새싹들의 미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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