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잘 아는 사람들도 남한강변 습지는 몰라 논은 아이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논에는 수생식물, 풀꽃, 곤충, 양서류들이 어울어져 사는 생태계의 창고 같은 곳이다. 물고기와 물벌레(수서곤충)며 연체동물도 논에서 부화하여 살아간다. 또 그들을 노리는 조류들도 논을 떠나 따로 놀지 않는다. 논뜰을 지나면 자갈과 모래로 덮힌 드넓은 둔치의 대초원이 펼쳐진다. 왼쪽으로는 남한강 본류가 돌아나가고 앞쪽으로는 장마철이면 이따금 섬이 되는 섬숲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모래와 자갈밭을 덮은 대초원이 펼쳐져 있다.
이곳 초원의 식생은 갈대와 물억새 같은 습생식물과 띠와 사초 같은 건생식물들이 주종을 이룬다. 그러나 온통 자갈과 모래뿐이어서 식물들이 살아가기에는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장마철에는 건생식물들이 골탕을 먹고, 가뭄이 오래 계속되면 습생식물들이 견디기 어렵다. 달맞이꽃·망초·개여뀌·도꼬마리·땅빈대·강아지풀 등과 같은 귀화식물들도 상당한 세력을 이루고 있다. 강가 주변으로는 십자화과 식물들이 눈에 많이 띈다. 황새냉이, 꽃다지, 개갓냉이, 나도냉이, 속속이풀이 모두 십자화과 식물이다. 봄이 무르익으면 깨알처럼 작은 꽃들이 자지러지게 핀다.
자갈밭 가운데 얕은 습지가 있다. 마치 길다란 수영장을 연상케 해준다. 어른들의 무릎을 조금 넘는 알맞은 깊이는 여름철 아이들이 물장구치고 놀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이 습지는 장마가 끝난 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강물이 낮은 데로 모여서 된 것이다. 하지만 물이 맑고 찬 것을 보면 지하에서 꾸준히 샘이 솟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웬만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천혜의 습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자갈과 모래가 깔려 있어서 수질도 1급수에 가깝다. 넓은 연못 모양을 한 습지에는 다양한 수서생물들이 살고 있다. 게아재비, 각다귀유충, 강도래유충. 날도래유충, 물방개, 물자라, 물장군, 소금쟁이, 장구애비, 잠자리 유충, 하루살이유충 등을 비롯해 민물새우, 옆새우, 다슬기, 물달팽이, 플라나리아, 달팽이, 가재, 거머리, 재첩, 말조개 등이 관찰된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이름 모를 생명체들도 부지기수로 많다. 이것들은 이곳 생태계 피라밋의 든든한 기단 역할을 해주고 있다.[PAGE BREAK]‘수달’ 찾아와 후식하듯 물고기 사냥 강변의 초원에는 엉겅퀴, 찔레, 지칭개, 애기똥풀꽃 등이 모래언덕을 눈맛 좋게 덮고 있다. 길섶 풀밭에 피어난 엉겅퀴에 은점선표범나비 한 마리가 정신없이 꿀을 빨고 있다. 작은은점선표범나비는 주로 낮은 구릉에 살며, 봄부터 가을까지 전국에서 관찰된다. 주로 국화과 식물을 좋아하는데, 야산 숲 속과 밭둑에 지천으로 깔린 쑥부쟁이, 벌개미취, 왕고들빼기, 털쇠서나물, 망초, 개망초, 민들레, 엉겅퀴, 구절초 등이 모두 국화과 식물들이다. 강변으로 나가면, 모래톱을 끼고 남한강 푸른 물이 산 그림자를 싣고 유장하게 흐르고 있다. 강에는 군데군데 큰 자갈 여울이 넓게 깔려 있다. 여울은 경사가 있어서 산소공급이 활발하다. 건너편 산그림자 드리운 곳에는 흰뺨검둥오리와 원앙들이 탁족(濯足)을 하고 강 한가운데는 농병아리와 쇠물닭 한 쌍이 자맥질을 하고 있다. 모래톱에는 백로와 왜가리들이
바짓가랭이를 걷고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물고기를 쫓고 있다. 둔치 초원과 습지 주변, 그리고 인근 농경지에는 참개구리에서부터 청개구리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개구리들이 거의 다 모여서 산다. 강을 끼고 내려가다 보면 넓은 둔치 들녁 사이에 또 다른 습지가 자리하고 있다. 아까와는 달리 어른 두 길이 넘는 깊이를 보면 이 습지가 오래 전에 골재채취로 생긴 것임을 말해준다. 몇몇 낚시꾼들이 낚시를 드리워놓고 낮잠에 푹 빠져 있다. 망태기 안에 몇 마리의 민물고기들이 들어있다.
계절과 지형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이 지역 습지에서 관찰되는 물고기들은 누치에서 잉어에 이르기까지 남한강에서 관찰되는 물고기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장마철이면 곧잘 남한강 본류와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덩치가 작은 것들이 주로 산다는 점이다. 외래종인 떡붕어, 배스, 파랑볼우럭(블루길)도 몇 곳의 습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지역에 수달이 가끔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발자국이 남한강 본류로 이어져 있는 걸로 보면 이따금 습지를 찾아와 후식하듯 물고기들을 사냥하고 가는 게 분명하다.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 남짓한 이 지역에 수달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그만큼 자연생태가 튼실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누가 알까 두렵다.
온통 갈대와 물억새 … 꽃창포 몇 포기도 습지 주변은 온통 인적 드문 갈대밭과 물억새밭이다. 습지가 맑은 수질과 일정한 수량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이들의 공이 크다. 또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생물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준다. 이 습지엔 새들이 귀가 시끄러울 정도로 많다. 떠벌이 개개비가 잠든 낚시꾼 등 뒤 갈대밭 속에서 자지러지게 울고 있다. 개개비는 마른 풀잎을 물어다 갈대 줄기에다 칭칭 감듯이 둥지를 짓는다. 이웃한 습지 뒤로는 야산이 내려와 있고 습지 가장자리로 갯버들을 비롯해 부들, 갈대, 줄, 방동사니, 달뿌리풀 등이 자리해 있다. 군계일학처럼 꽃창포 몇 포기가 화사하게도 피었다.
갈대와 물억새와 온갖 귀화식물들이 무섭게 뒤덮고 있는 이 허허벌판도 홍수가 내려오면 물에 잠기고 야산 같은 구릉지대만 섬이 되어 둥둥 뜬다. 서양민들레는 유럽에서 건너온 것으로 봄부터 가을까지 시도때도 없이 피고 진다. 꽃이 크고 잎이 갈라진 상태가 날카롭다. 심하게 뒤로 젖혀지는 것도 우리 토종 민들레와는 다르다. 우리꽃 지칭개는 국화과 식물로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쉴새 없이 피고 진다.
부전나비 한 마리가 꽃에 앉아 미동도 없이 낮잠을 즐기고 있다.
[PAGE BREAK]둔치와 이어진 야산 숲속에는 찔레꽃이 허무하게 지고 있다. 그 뒤로 까치수영이 버스칸의 여학생들 수다처럼 하얗게 피어있다. 까치수영은 약간 습한 풀밭에 나는 여러해살이 풀꽃이다. 패랭이꽃, 좁쌀꽃, 물봉선, 돌양지꽃, 솔붓꽃, 쇠뜨기, 원추리 등도 그 주위로 어울려 피어 있다. 목본류로는 인동, 산딸기, 쉬땅나무, 쪽동백, 개다래, 으아리, 사위질빵 등이 군데군데 무리를 짓고 있다. 초원 가운데 숨어 있는 습지의 물이 맑고 찬 것을 보면 지하에서 끊임없이 샘물이 솟구치고 있어서 갈수기에도 일정한 수량을 보여준다.
위기에 처한 동물에 아지트 같은 습지 습지는 위기에 처한 동식물들에겐 고향처럼 되돌아가서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아지트 같은 곳이다. 또 생태계 복원의 공간적 기회를 제공해주며 나아가서는 새로운 생물종의 출현을 가능케 해준다. 어느 습지에나 흰뺨검둥오리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텃새인 흰뺨검둥오리는 물오리이면서도 야산 숲 속에다 알을 낳는다. 이따금 관찰되는 원앙도 숲속 나무둥지 속에다 알을 낳는다. 꼬마물떼새와 할미새도 이곳 습지의 조류 가족이다. 여름철새인 이들은 모래나 자갈바닥에다 알을 낳는다. 꼬마물떼새는 하얀 목테두리와 노란 눈테두리가 환상적으로 예쁘다.
알이 자갈무늬를 띠고 있어서 쉽게 발견되지는 않지만 어미새가 의태를 보이면 그 부근엔 반드시 보금자리가 있다. 의태란 적이 나타나면 어미새가 부상당한 시늉을 하면서 적의 눈길을 딴 데로 돌리는 행동을 말한다. 물가 모래밭엔 물을 마시러 왔다 간 고라니 발자국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야산과 인접해 있어서 족제비, 멧토끼, 들쥐, 청솔모 등등 여러 종류의 포유류들이 야산과 초원을 오가고 있다. 하천의 둔치 상태를 보면 그 하천의 생태적 상황을 진단할 수 있다. 둔치에 동식물들이 건강하게 살아있다면 그 강도 함께 건강하다. 더욱이 여주 지역처럼 생명의 오아시스 같은 둔치습지까지 거느린 강이라면 더욱 말할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