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공활하고 하늘이 끝간데 없듯이, 우리의 기상도 저 하늘 저 바다 같아라! 우리의 우정을 상쾌하게 드높이자. 날자, 날자! 양어깨에 날개를 달고 날아보자! 비울수록 가벼워지는 육신! 육신의 짐도 일상의 욕심도 세상살이의 의무도 세월의 무게도 다 내려놓고 새처럼 가벼이 날아보자!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마다 훌훌 벗어 던지고 따라나서 줄 친구들이 곁에 있다면” 천상병 시인이 ‘귀천(歸天)’에서 노래한 것처럼 우리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학창시절 모처럼 숨통 트이는 날
그러한 우정과의 첫 만남은 학창시절에 함께 한 수학여행에서일 것이다. 반장의 차렷 구호로 시작하는 조회에서 경례로 맺는 종례의 나날들! 감색 치마에 흰색 블라우스. 검은색 운동화에 검은색 양말. 남학생 빡빡 머리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새까만 모직 교모(校帽). 귀밑 2∼3㎝의 여학생 단발머리. 모든 것이 획일적이어서 찍어낸 붕어빵 같기만 하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우리 모습. 모든 과정은 규격화의 하달로 진행되고 선택의 여지란 아무 데서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학교와 집 사이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날이 그날이던 학교생활. 월장(越牆)을 하는 희귀한 영웅도 있긴 했지만, 울 밖을 넘보는 것은 금지사항. 단체 관람 외에 친구끼리 영화 한편 보는 것조차 영화내용과 상관없이 처벌감이었다. 월말고사가 끝나는 날, 모처럼 벼르고 별려서 범생들이 극장에 숨어들었다가는 영락없이 처벌 대상자로 방이 붙게 마련. 소풍가는 날이나 사생대회 가는 날도 교복을 단정히 입고 가지런히 줄맞추어 갔다. 그런 우리에게 숨통 트이는 날이 있었다면, 3년 과정에 단 한 번뿐인 수학여행이었을 것이다.
교복을 입은 채로 떠나는 지라 달리 개성을 표출할 도리는 없었다. 간밤이 새도록 바지통을 줄이거나 끝단을 내거나 줄이는 일이 고작이다. 그러나 교모 하나를 가지고도 어찌 그렇게 다양하게 연출을 해내는지. 우리는 기차역 대합실에 들어서는 친구들을 마치 이방의 낯선 사람들이 등장할 때와 같은 호기심으로 훔쳐보게 된다. 교모는 물론 중절모에서부터 승마용 운동모까지 제각각 삐딱하게 머리에 올려놓은 용감한 남학생들. 단발머리 여학생들이 연출하는 각가지 머리모양새와 흥분한 재잘거림이 기차역 대합실을 화려하게 모자이크해 나간다. 그렇게 출발한 수학여행 길에는 반드시 희생양이 있게 마련. 평소에 좋아하고 존경하던 선생님일수록 그 반열에 오르게 된다. 물론 학생들을 쥐잡듯 꼼짝 못하게 하던 선생님들도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잠자는 얼굴에 지워지지 않는 매직펜으로 그림 그려놓거나 불침 놓기. 안경알에 빨간 색칠을 해놓고 불이야 소리지르기. 여장한 남학생이 여학생의 열차 칸에 숨어들기. 짐짓 놀란 여학생들의 과장된 고성. 굴속을 지나갈 때 선생님 몰매주기 등등. 악동들의 창의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굶주린 짐승이 먹이감을 찾듯이, 이 작업은 밤을 하얗게 밝히며 가히 필사적으로 진행된다. 여기 저기서 괴성, 교성, 아우성, 고통의 신음소리, 숨 넘어갈 듯 터지는 폭소….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기회로
교복 속에 꼭꼭 눌러 두었던 그 많은 끼와 개성이 제각기 한꺼번에 폭발, 여행 내내 폭죽이 터지는 불꽃놀이와 같은 장관이 연출된다. 무대도 없는 장급 여관의 툇마루에서 벌어지는 장기자랑.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그 당시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남녀공학이어서, 수학여행은 그 진가를 더할 나위 없이 발휘하는 때이기도 했다. 가랑잎이 굴러가는 것을 보고도 자지러진다는 사춘기의 여학생들 앞에서, 남학생들은 각기 자신들을 각인 하고자 모듬마다 화려한 공작새의 변신을 연출하고, 새침때기 여학생일수록 카멜레온의 변신은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PAGE BREAK]여행이란 것이 일상을 벗어나는 행운유수((行雲流水)와 같아서 어떤 일이 전개될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누구나 동경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때때로 숨이 막힐 것 같은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 흐르는 시간에 자신을 내맡기는 치기를 부려보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일상의 자리를 박차고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과 비용에 구애받지 않아도 좋을 만큼 여건이 갖추어지고 돌보아야 할 자녀들이 다 성장할 만큼 나이가 들어도, 어느 날 갑자기 여행하고 싶다고 해서 쉽게 떠나지는 것은 아닌 듯 싶다. 그만큼 여행이란 것이 일상과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은 여행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평생의 수기(修己)이다. 선생님의 안내로 우리는 새로운 문화, 풍습, 자연풍광, 역사의 현장, 사람들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모듬 구성, 방 배정, 주어지는 대로의 식단, 나의 주기와 다른 집단생활의 수칙들, 표면적인 질서 뒤에 숨어 있는 복병 등등은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도전을 받고 대응해 가는 해결과정을 통해서 알지 못했던 나의 면모와 친구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학창의 삶을 송두리채로 빼앗는 시험위주의 공부는 얼마나 단편적인 토막 지식인가, 실제 문제에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왜소하고 무력한가, 남을 배려하고 남들이 피하는 일을 도맡아함으로 윤활유 역할을 하는 친구의 도량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함께 하는 나눔의 활동을 통한 이러한 사고의 과정은 우리에게 사안(事案)뿐 아니라 세상 전체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시각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한다.
우리의 삶도 수학여행 같기를…
수학여행은 문자 그대로 수학(修學), 실지로 보고 듣는 체험을 통해서 지식을 넓히는 학습활동의 일환으로서의 여행이다. 수학과 끼 발산의 주체는 학생들이지만, 인솔은 선생님의 몫이다. 여행 안내자로서 교사는 볼거리와 먹거리, 교통 편의와 편안한 잠자리, 안전 등에 면밀한 계획을 짜야 할 것이다. 불안이나 불편 없이 여행자들이 견문과 식견을 넓히고 자연과 사람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발견하고, 잠재되어 있던 자신의 풍요한 정서와 인성과 끼를 발산하면서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자아를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 여행은 다시 하고 싶은 즐거운 추억으로 오래 오래 간직될 것이다. 그런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의식을 하든 못하든 마음을 비쳐주는 등불 같은 스승 한 분을 평생동안 마음 깊이 모시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메마른 삶의 한가운데서 인습에 물들고 세상 욕심에 눈이 멀고 타인 지향적인 외향적인 들뜬 삶에서 참 자아를 잊고 각박하게 살다가 문득 수학여행의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하게 되면 연어의 귀소본능처럼 붕어빵들의 호연지기(浩然之氣)의 그 한 때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추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언제 어디서나 온 세상에 가득한 왕성한 자유의 기운을 들여마실 수 있을 것이다. 불가능이 없어 보이던 순수한 열정, 온갖 주위의 사물로부터 해방된 듯한 호연지기의 그 자유, 수학여행에서 그러한 자유를 함께 누리던 그 때 그 벗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면, 그러한 순수하고 왕성한 원기를 다시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날자! 날자! 양어깨에 날개를 달고 날자! 나의 날개가 되어주는 것은 언제나 우정이다. 마음만 먹으면 함께 길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길동무들! 그래서 우리는 비행기를 소유한 사람들보다 더 자유롭게 날 수 있다. 우리의 여행은 이 땅만이 아니다. 땅위에가 아니어도 마음속에서 날마다 함께 수학여행을 떠날 길잡이 스승님, 친구들, 추억이 있다. 앞으로 이어갈 삶도 날마다가 수학여행이기를!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