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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영웅

최중호 /대전동부교육청 장학사·수필가



 한 병사가 숨을 몰아쉬며 평원을 달린다. 누구에게 무슨 소식을 전하려고 저리도 급하게 달리는가? 그는 그리스군의 승전 소식을 아테네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달리는 그리스의 병사 필리피데스다. 약 40km의 마라톤 평원을 쉬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우리가 이겼노라"고 외친 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한다. 여기서부터 마라톤의 역사는 시작이 된다.
 베를린 올림픽 주경기장엔 손기정 선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 곳에 한국 선수의 이름이 있다면 얼마나 큰 영광인가? 그 이름을 보고 싶었다. 마침 연수를 받기 위해 독일의 다름슈타트에서 3개월 간 머물 기회가 있었다. 주말 시간을 이용하여 베를린으로 가 그 이름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초겨울 새벽 4시, 아직도 주위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그의 이름을 보겠다는 의욕 하나로 찬바람을 가르며 다름슈타트역으로 나가 프랑크프르트행 열차를 탔다. 6시에 프랑크프르트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초특급 열차 이체(ICE)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이 자랑하는 최대시속 400km인 이체는 프랑크프르트에서 베를린을 쉬지 않고 달려 4시간만에 도착한다고 하였다.
 이체의 1등실로 갔다. 산뜻하면서도 조용한 객실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게다가 넓은 좌석의 등받이 뒤엔 작은 TV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 처음 보는 것이라 호기심이 생겨 TV를 켜는데 승무원 아가씨가 식사를 가져온다. 하지만 요금이 얼마인지 몰라 선뜻 식사에 손을 대지 못하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식사는 나만 주는 게 아니고 객실에 있는 사람들에도 다 주었다. 아침 일찍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을 위하여 제공하는 특별 서비스인 것 같았다. 이젠 긴장도 풀렸고 객실 분위기도 웬만큼 익숙해져 후식으로 차를 한 잔 주문해 보았다.
 열차는 쉬지 않고 어둠 속을 달린다. 얼마나 달렸을까? 차츰 어둠이 걷히면서 들판에 쌓인 흰눈이 보이고 이따금 너른 들판에 외롭게 서있는 나무도 보인다. 미처 겨울 준비를 못한 나무의 단풍잎에서는 독일의 초겨울 풍경도 엿볼 수가 있었다. 달리고 달려도 보이는 건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들판뿐이다. 이 넓은 캔버스 위에 오밀조밀한 한국의 가을 풍경을 그려보는 사이에 어느 덧 열차는 베를린 초오역에 도착하였다.
 그 곳에선 지하철(U-Ban)을 이용해 올림픽 경기장역으로 갔다. 경기장 가는 길은 오른쪽에 작은 동산이 있고 왼쪽엔 국기 게양대가 경기장까지 길게 늘어 서 있다. 멀리 주경기장의 모습이 보인다. 그 앞엔 두 개의 사각기둥이 당간지주(幢竿支柱)처럼 서 있고 그 사이로 오륜 마크가 보였다. 저렇게 크고 웅장할 수가! 히틀러가 독일 민족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개최했다는 베를린 올림픽. 엄청난 비용과 인원을 투자하여 그가 직접 건립을 지휘했다는 올림픽 주경기장이 아닌가. 그 규모가 62년 전에 세워진 건물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크고 웅장했다.
 추운 날씨라 목도리를 하고 장갑까지 끼었으나 몸이 바싹 움츠러든다. 하지만 손기정 선수의 이름이 이 곳에 새겨져 있다는 기쁨과 같은 한국인으로서의 긍지가 추위를 잊게 하였다. 정문에 도착하여 입장권을 샀으나 곧바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이렇게 크고 넓은 경기장에서 손 선수의 이름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손 선수의 이름을 찾으려면 한나절도 더 걸릴 것 같았다. 매표원에게 그 위치를 묻고 싶었으나 짧은 영어 실력이 문제였다. 8년 동안 영어를 배웠지만 기본회화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한숨만 절로 나왔지만 어찌하랴. 무슨 말이라도 해서 찾아 볼 수밖에….
 올림픽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를 무어라 말할까?
 문득 88서울 올림픽 때 아나운서가 소리를 높여 외치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 '올림픽 챔피언'이란 바로 그 말이다. 그 다음 선수들의 이름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려면 어떻게 할까? 용기를 내서 말도 되지 않는 영어를 해 보기로 하였다.
 "할로, 올림픽 챔피언 네임 롸이트?"
 매표원이 웃으며 주경기장 전경이 찍혀있는 사진의 한 곳을 가리켜 준다. 그가 지적해 준 곳을 찾기 위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한 때는 수십만 관중이 운집했을 경기장이지만 오늘은 텅 비어 있다. 아무도 없는 경기장 중앙엔 파란 잔디가 깔려 있고 붉은 트랙 위엔 흰색 라인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관중석 중앙에 있는 본부석을 지나 선수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출구 쪽으로 간다.
 출구 쪽 벽면엔 세 개의 대리석 판으로 된 대형 기념비가 있었다. 중앙의 기념비에는 오륜기가 그려져 있고 그 양쪽에 있는 기념비에는 종목별 우승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손 선수의 이름을 찾아본다. 왼쪽 기념비에서 가까스로 손 선수의 이름을 찾는 순간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PAGE BREAK]  'MARATHONLAUF 42195m SON JAPAN'. 이게 웬 말인가? 마라톤 우승자인 손 선수의 국적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으로 새겨져 있었다. 여기 'JAPAN'이란 글자를 보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서둘러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62년 전에 손 선수가 겪었던 나라 없는 설움을 내가 다시 이 곳에서 느껴야 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경기장을 바라본다. 관중은 물론 열정을 다해 뛰던 선수들도 없다.
 때 마침 겨울의 운치를 더해주려는 듯 함박눈이 내린다. 살며시 잔디 위에 앉는가 하면 바람 따라 관중석에 앉기도 했다. 어느새 하얀 눈들이 선수와 관중으로 변하여 비어 있던 경기장 안을 꽉 메우고 있는 게 아닌가. 1936년 8월 9일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마라톤 경기엔 세계 27개국에서 56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여기서 우리의 손기정과 남승룡은 32번과 49번째로 각각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이어 손 선수가 약 6km지점에서부터 속력을 내서 4위로 선두그룹에 합류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우승자인, 아르헨티나의 자발라 선수를 강력한 우승자로 손꼽았다.
 다시 손 선수는 21km 반환점을 앞두고 포르투갈의 디아스를 제치며 2위로 나섰지만 반환점을 통과할 때까지도 자발라는 계속 선두를 유지했다. 그 후 29km지점을 통과하면서부터 손 선수가 자발라를 제치고 선두에 나섰다. 손 선수는 계속 선두를 유지하며 이 대회의 마지막 고비이자 승부처인 비스마르크 언덕을 힘겹게 달려 올랐다.
 한편 주경기장에 있는 관중들은 손에 땀을 쥐고 곧 이어 들어 올 마라톤 우승자의 모습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드디어 팡파르와 함께 수 십만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382번을 단 손 선수가 주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관중들의 환호에 힘을 얻은 듯 혼신의 힘을 다해 결승점으로 질주했다. 그는 올림픽 신기록으로 2시간 29분 19초를 기록하였다. 그 뒤로 영국의 하퍼와 우리의 남승룡 선수도 들어왔다.
 시상대에 오른 자랑스런 손 선수의 모습을 본다. 머리에 월계관이 씌워지고 일장기가 오르면서 일본의 국가인 '가미가요'가 울려 퍼진다. 그는 계속 고개를 숙인 채 한 번도 우승 깃발을 쳐다보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을 본 일본인들은 '그가 너무 감격한 나머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태극기 대신 일장기가 게양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그랬다.
 이제 쉴 새없이 내리던 함박눈이 그치고 경기장에 운집했던 관중들도 보이지 않는다. 마라톤 경기에서 손 선수와 남 선수의 승리는 정말 대단한 쾌거였다. 그들의 승리는 희망을 잃었던 우리 민족에게 자긍심을 높여주었고 일장기 말소 사건과 같은 민족혼을 일깨워 주는 계기도 되었다. 자랑스런 손 선수의 이름을 다시 본다. 하지만 이상하다. 기념비에 새겨진 손 선수의 국적이 다른 선수들의 국적보다 색깔이 더 밝게 보인다.
 1970년 8월 15일 밤, 올림픽 기념비 밑을 서성이는 한국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독일에 온 신민당 국회의원 박영록씨 부부와 부름을 받고 달려 온 유학생 이주성씨다. 세 사람은 준비해 온 시멘트와 물 그리고 미장용 공구를 이용해 기념비에 새겨진 'JAPAN'이란 글자를 없애고 그 자리에 'KOREA'를 새겨 넣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기념비에 새겼던 'KOREA'는 다시 'JAPAN'으로 바뀌고 말았던 것이다.
 마라톤 경기는 인간이 체력적 한계를 느낄 수 있는 장거리 도루 경주다. 그리스의 병사 필리피데스가 승전소식을 알리기 위해 마라톤 평원을 달렸다면 우리의 손 선수는 조국의 아픔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베를린 가도를 달렸다. 아직도 기념비엔 우리 민족의 아픈 상처가 남아 있지만 손 선수의 이름만은 '베를린의 영웅'으로 남아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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