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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변이 뜰 만큼 섬유질을 먹자

신동호 | 월간 <<과학동아>> 편집장 dongho@donga.com


6·25 때 한국인들은 미군의 똥을 보고 염소똥이라고 놀려댔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터무니없이 작은 똥을 싸는 미군을 한국인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뒤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한국인도 염소똥을 누는 국민이 됐다. 과거에 한국인이 얼마나 많은 똥을 누었는지, 지금은 얼마나 작은 똥을 누고 있는지 조사한 학자를 찾을 수 없다. 다만 요즘은 밥그릇이 훨씬 커졌는데도 똥 크기가 예전만 못하다.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먹자
아프리카 밀림에 가면 지금도 한국인이 반세기 전에 누었던 ‘후진국 똥’을 볼 수 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하루 대변 양은 400g으로, 100g인 서유럽인보다 4배나 많다. 아프리카 원주민 중에는 하루 750g의 똥을 누는 대변 종족이 있다고 한다. 왜 아프리카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똥을 쌀까?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인은 가공하고 정제한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 제분소나 정미소에서 곡식의 껍질을 완전히 벗겨 내고 갈아서 정제해 먹지 않는 것이다. 대신 억센 풀과 과일, 캐낸 뿌리를 그대로 먹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식이섬유로 배를 채우게 된다.

먹은 음식 중 잘 소화되지 않는 식이섬유는 거의 그대로 똥이 돼 나온다. 그러나 서구인의 음식에는 식이섬유가 거의 없고 영양 덩어리인 엑기스만 있다. 엑기스는 대부분 장에서 소화되니 변의 양이 적을 수밖에 없다. 똥이 적은 만큼 변의 장내 체류 시간도 아프리카인보다 2배나 길어 똥이 딱딱하고 변비 환자가 많다.

식이섬유는 자신의 무게보다 16배나 되는 물을 머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식이섬유는 고성능 스펀지인 셈이다. 또 식이섬유는 장내 박테리아의 활동을 도와 발효 가스를 발생시킴으로써 똥을 부드럽게 만든다. 때문에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 조금만 힘을 주어도 똥이 죽죽 잘 나오는 것이다.

한국인이 처음 서양인의 똥을 보고 놀랐듯이, 서양인 가운데 아프리카인의 부드럽고 푸짐한 똥을 보고 놀란 사람이 있었다. ‘닥터 파이버(Fiber)’란 별명을 갖게 된 아일랜드 출신 의사 데니스 버킷이 바로 그 인물이다. 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의료활동을 한 그는 아프리카인에게는 이상하게도 서구형 성인병이 없는 것을 보고 이들의 푸짐한 똥과 섬유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66년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유럽으로 이주한 아프리카인들 사이에서 대장암, 심장병, 당뇨병, 비만 같은 서구형 성인병이 급증하는 것을 보고 1971년 ‘식이섬유 가설’을 발표했다. 그가 1980년 식이섬유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쓴 ‘제대로 먹어라(Eat Right)’는 서구인의 식습관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피플 매거진’으로부터 상을 받는 등 대중의 큰 관심을 모았다.

그 뒤 많은 연구자들의 조사를 통해 식이섬유 부족은 변비, 비만, 대장암 외에도 당뇨병, 심장질환, 담석증 등 성인병의 원인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선진국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발전한 제분 기술 덕택에 식이섬유의 주공급원인 밀의 섬유질 함량이 한 세기 동안 무려 15분의 1로 줄었다. 아프리카인처럼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섬유질 많은 거친 음식에 적응해 왔는데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하루아침에 음식이 가공 및 정제식품으로 바뀌니 잦은 병치레를 하게 된 것이다.

현미에는 영양분이 풍부하다
요즘 선진국에서는 식이섬유 먹기 운동이 뜨겁다. 흰 빵이 식탁에서 사라지고 거친 검은 빵과 귀리로 만든 오트밀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미네소타 대학의 데이빗 제이콥 교수는 1999년 정제하지 않은 곡식을 먹는 사람은 심장병과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15∼25% 가량 낮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심장협회, 미국암학회, 미국국립보건원도 현미식, 즉 정제하지 않은 곡식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권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럽의 영향을 받아 흰쌀밥 대신 현미먹기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 역시 현미나 보리 대신 쌀눈을 완전히 제거한 10∼12분도의 흰쌀밥을 먹는 것이 자랑거리인 양 생각했었다. 쌀눈에는 쌀의 영양분 3분의 2가 들어있는데도 영양분만 쏙 빼놓고 오히려 몸에 해로운 것만 골라 먹는 것이 바로 흰쌀밥이다. 쌀눈은 그대로 두고 껍질만 벗겨 낸 1∼3분도 쌀인 현미가 비타민 등 영양분은 물론 섬유질이 훨씬 많다.

식이섬유는 식물의 세포벽이나 뼈대를 이루는 딱딱하고 질긴 물질이다. 식이섬유는 물에 잘 녹는 수용성 식이섬유와 비수용성 식이섬유 두 가지가 있다. 수용성 식이섬유는 장내의 콜레스테롤에 딱 달라붙어 이를 몸 바깥으로 배출시킨다. 특히 과일에 많은 펙틴 성분의 부드러운 수용성 식이섬유는 대장 내에서 콜레스테롤 등 지방의 흡수를 방해함으로써 당뇨와 비만을 예방하는 작용도 한다.

식이섬유는 음식물 속의 당을 꼭 붙잡고 서서히 놔주기 때문에 장에서 당이 흡수되는 속도를 느리게 한다. 만일 음식속에 섬유질이 없을 경우 당이 체내로 빨리 흡수되기 때문에 몸에 부담을 주게 된다. 설탕처럼 식이섬유는 거의 없고 당분만 있는 음식을 자주 먹어 급격한 혈당 변화가 매일 반복되면 인슐린을 생산하는 췌장이 혹사당해 결국 당뇨병에 걸리기 쉽다. 당뇨병 환자에게 미국당뇨병학회 일일 권장량(25g)보다 두 배 많은 식이섬유를 먹게 한 결과 혈당치와 콜레스테롤 흡수량이 떨어졌다는 보고도 있다.

비수용성 식이섬유는 음식을 장에서 빨리 통과시켜 변으로 배출되게 한다. 장에서는 단백질 등의 부패 과정에서 발암물질이 생긴다. 이를 빨리 배출시킴으로써 암을 예방하는 것이다. 얼마 전 유럽 10개국 암 관련 단체들의 합동 연구 결과 식이섬유 섭취량을 2배 늘이면 대장암에 걸릴 위험이 40% 줄어든다는 것이 밝혀졌다.

대장암은 국내에서는 거의 없던 병이었다. 그러나 불과 수십 년 만에 대장암은 한국에서도 암 가운데 남성 4위, 여성 3위의 빈도로 발병하는 흔한 병이 됐다. 변비가 있으면 대변 속의 발암물질이 대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므로 정상적인 대장세포가 변형되어 암세포가 발생하기 쉽다. 변비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대장암을 예방하는 첩경이다.

식이섬유는 또한 포만감을 주기 때문에 과식과 비만도 예방한다. 그뿐만 아니라 대장 내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세균이 섬유질을 발효하는 과정에서 만드는 물질은 인체의 중요한 영양소이다.

식이섬유는 이처럼 중요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가 국민영양조사를 할 때 식이섬유 섭취량조차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 다만 10여 년 전 경북대 식품영양학과 이혜성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식이섬유 섭취량은 1969년 24.5g에서 1990년에는 17.3g으로 줄었다. 아프리카인의 섬유질 섭취량은 60g 이상이다. 우리도 ‘풍요로운 식탁 속의 섬유질 기근’이 매우 심각한 지경에 와 있는 것이다. 식이섬유 섭취를 늘이려면 백미보다 현미를, 흰 빵보다는 거친 검은 빵을, 곡물보다는 과일과 야채를 많이 먹어야 한다. 콩, 들깨, 무, 양상추, 당근, 오이, 고구마, 감자, 토란도 섬유질이 많은 식품이다.

석기 시대 사람은 식이섬유를 매일 100g씩 먹었지만, 요즘 현대인은 20g 정도밖에 섭취하지 못한다고 한다.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 식이섬유를 많이 먹는 게 좋다.

하루 2리터 이상 물을 마시자
주의할 점은 식이섬유 섭취와 함께 충분한 양의 물을 마셔야 한다는 점이다. 수분 섭취 없이 식이섬유만 먹으면 오히려 변비가 악화될 수도 있다. 보통 하루 8잔(2리터) 이상의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을 한 컵 마시면 장을 자극해 변이 잘 나온다. 다만 지나친 식이섬유의 섭취는 칼슘의 흡수를 방해할 수 있다. 따라서 골다공증의 위험이 있는 노인이나 중년 여성은 지나친 식이섬유 섭취를 자제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부작용이 심각할 정도로 식이섬유를 많이 섭취하는 사람은 현대 사회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은 대개 입에서 살살 녹지 않고 오랫동안 잘 씹어서 삼켜야 한다. 오래 씹어서 음식을 삼키면 뇌도 발달하고 소화도 잘 된다. 치아는 음식을 잘게 부수는 역할뿐 아니라 씹을 때의 자극이 턱을 통해 뇌로 전달돼 뇌의 혈류량이 증가된다. 운전 중 졸음을 쫓으려면 커피보다 껌이나 오징어를 씹는 것이 효과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오래 씹으면 어린이의 지능이 발달하고 노인성 치매를 막을 수 있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

오래 씹으면 침샘도 자극된다. 하루에 생산되는 침의 양은 약 1.5∼1.8리터나 된다. 씹을 때 나오는 침에는 평소 분비되지 않는 소화 효소가 들어 있다. 이 효소가 음식과 섞이면서 소화를 돕는다.

영양학자들은 수세식 변기에서 똥이 물에 뜰 정도로 섬유질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매일 아침 혼자서 해볼 수 있는 과학 실험이다. 똥을 띄우자.

지나친 채식주의는 위험하다
그렇다면 채식이 무조건 좋은 것일까? 아니다.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철저한 채식주의에는 상당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바람직한 식사는 채식과 육식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인간은 초식동물이 아닌 잡식동물이기 때문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고기 좋아하는 원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백만 년 동안 인류의 고기 섭취 비율은 장소와 계절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20∼40%였다. 인간의 고기 섭취 비율을 20%로 낮게 잡아도, 이 비율은 235종의 영장류 가운데 가장 높다. 진화의 레이스에서 최근 인간과 갈라져 나간 침팬지도 고기 섭취 비율이 4%에 불과하다.

인간의 진화를 설명하는 유력한 이론으로 ‘사냥 학설’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냥과 육식을 통해 언어와 사회적 협동 관계가 발달하고, 영양 상태가 좋아져 뇌가 커졌다는 것이다. 인류학자들이 원시 사회의 표본으로 삼고 장기간 연구를 해온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쿵족은 하루 일과의 40%를 사냥을 하거나 또는 사냥 얘기로 보낸다. 이들 사회에는 ‘고기 고프다’는 단어도 있다.

인간이 고기 좋아하는 원숭이로 진화하면서 지구에서는 매머드 등 대형 포유류들이 대량 멸종했다. 그 원인도 사실은 워낙 인간이 사냥과 육식을 즐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호주에서는 마지막 빙하기 때 인간이 이 대륙에 발을 들여놓은 뒤 무서운 발톱을 지닌 캥거루 등 무게 45㎏ 이상의 대형동물 24속 가운데 23속이 멸종했다. 15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다른 대륙으로 진출한 호모 사피엔스는 다름 아닌 ‘킬러 사냥꾼’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해부학적으로 볼 때 초식동물보다는 육식동물의 특징을 더 많이 갖고 있다. 사람은 개처럼 뾰족한 송곳니, 모서리에 요철이 난 어금니를 갖고 있다. 고기를 찢어먹기 좋게 생겼다.

사람의 장은 길이가 육식동물처럼 비교적 짧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초식동물은 위에서 항문에 이르는 장의 길이가 몸의 길이에 비해 길고 육식동물은 짧다. 보통 초식동물은 되새김질을 하는 위를 갖고 있지만 사람은 절대 위에 집어넣은 음식을 다시 토해내 씹지 않는다. 인간의 위는 식사 후 3시간이 지나면 텅 빈 상태가 되며 박테리아가 그렇게 많지 않다. 반면 초식동물의 위는 언제나 음식이 차 있으며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박테리아와 원생동물이 위 속에 상주하면서 많은 영양물질을 만들어 낸다.

생선과 고기 섭취로 영양소 균형을 유지한다
인류는 수백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원숭이로 살 때는 숲 속의 과일과 견과류를 주로 먹는 원숭이였다. 그러나 빙하기가 엄습해 아프리카의 숲이 건조한 사바나 초원으로 바뀌고 사냥과 육식에 오랫동안 적응하면서 육식에 적합한 신체 구조를 갖게 됐다. 즉 인간은 생선이나 고기에서 풍부한 필수 아미노산과 지방산, 철, 아연, 비타민 B6, 비타민 B12를 얻게 된 것이다.

우리의 몸은 단백질이란 벽돌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카락, 피부, 눈, 심장, 뇌, 근육이 대부분 단백질이다. 뿐만 아니라 산소를 실어 나르는 헤모글로빈, 적혈구와 인체의 대사를 조절하는 호르몬과 효소도 단백질이다.

식물이나 미생물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단백질을 스스로 합성할 수 있으나, 동물은 그런 능력이 없으므로 단백질 또는 아미노산을 음식물로 섭취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동물성 단백질은 식물성 단백질보다 영양가가 높다. 또 단위 중량당 단백질의 함유량도 동물이 식물보다 많다. 단백질의 종류에 따라 아미노산의 종류와 양도 다르므로 여러 가지 단백질을 고루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양한 살코기는 완벽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설사 채식주의자라 하더라도 계란과 우유를 먹으면 필수 아미노산을 얻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채식주의자가 필수 아미노산 부족에 걸리지 않으려면 콩, 과일, 호두, 식물 씨를 적절히 먹어야 한다. 그래야 채식만을 할 때 부족해지기 쉬운 리신, 트립토판, 메치오닌 같은 필수 아미노산을 공급받을 수 있다. 채식만을 할 경우 부족해지기 쉬운 또 다른 영양분은 붉은 색 고기에 특히 많은 철과 아연이다. 세계적으로 볼 때도 가장 흔한 영양실조가 바로 고기를 섭취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철 결핍성 빈혈이다.

혈액이나 살코기가 붉은 색을 띠는 것은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이 철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 성분은 붉은 색 살코기나 간에 많지만 시금치, 해조류, 참깨, 콩에도 철분이 꽤 들어 있다. 하지만 식물에 들어 있는 철은 체내에 잘 흡수되지 않는다. 고기에 들어 있는 헴철은 식물에 들어 있는 철보다 인체가 이용하기가 훨씬 쉬워 체내 흡수율이 4배나 높다. 식물 속에 들어 있는 철분은 무기 화합물 형태의 철이고, 육류에 들어 있는 철은 인체가 흡수해 이용하기 쉬운 유기 화합물 형태의 헴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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