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라는 자리가 힘(권력·돈)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일찍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들 스스로 무력한 존재를 자청하는 것은 어딘가 허전하다. 겸손이라기에는 너무 맥 빠지고,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기에는 진정한 ‘안분(安分)’을 터득하지 못한 분위기이다. 자기 정체(正體)에 치열하지 못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힘’을 논하기 위해서는 ‘힘’을 보는 우리의 단조로운 시선을 수정해야 할 듯하다. 그 힘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때마침 힘에 대한 담론이 난만하다. 지식기반 사회의 힘이란 산업화 시대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들이 줄을 잇는다. 근육질로 표상되는 물리적 힘의 시대는 지나갔다고들 말한다. 탈근대의 정신에 비추어 감성의 힘을 강조하기도 하고, 미래사회의 힘은 여성성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어야 함을 내세우기도 한다.
크고 세고 요란해 보이는 것들에만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부드러운 것은 부드러운 것대로 조용한 것들은 조용한 것대로 그 나름의 온당한 힘이 있는 것이다. 사람을 바꾸는 힘, 세상을 바꾸는 힘은,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숨어 있는 힘이다. 교사의 힘 또한 숨어서 작용하는 힘이다. 힘의 작용점이 다를 뿐, 교사의 힘은 그 어떤 힘보다도 오래, 널리, 두루, 그리고 은밀히 작용하며 존재한다.
선생님의 힘이란 학생을 잘 가르칠 수 있는 힘이다. 또 선생님의 힘은 학생을 잘 가르치는 데서 생기는 힘이기도 하다. 잘 가르치다 보면, 학생을 감화시키는 힘도 생기고, 바람직한 권위로서의 힘도 생긴다. 흔히 ‘가르치는 맛이 난다’고 한다. 이야말로 ‘선생님의 힘’이 생생하게 실현되는 바로 그 장면이다.
1960년대 말, 미국의 교육고문단은 한국 교육의 미래는 수업 혁신에서 찾아야 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국가재정이 극도로 궁핍하던 시절, 학급당 90명의 아동들이 3부제로 정신없이 수업을 하던 때이다. 이 마당에 수업 혁신이란 무엇이겠는가. 무계획, 비효율의 수업실상을 반성하고, 정교한 ‘공학적 체제(engineering system)’로서의 수업을 개발·실천하자는 것이다. 그로부터 공학적 체제로서의 정교함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수업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이런 수업 문화에서는 ‘선생님의 힘’도 그 공학적 체제 속으로 해체되기 쉽다. 잘 조직된 수업의 체제는 보이지만 선생님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 후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거쳐 우리는 IT 선진국이 되었다. 우리가 일상으로 운영하는 수업도 이제는 IT 환경과 불가분의 관련 속에서 이루어진다. 사실 우리의 교실은 지난 10년 간 ICT 조건들을 활용·개선하면서 눈부신 발전을 해왔다. 첨단 정보 통신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수업을 혁신시키고, 전자 도서관을 꾸미고, e-러닝과 u-러닝의 시대를 숨 가쁘게 열어가고 있다. 교사들은 기술적 운용에 익숙해지기에도 많은 공력과 연마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런 수업 체제와 IT 기술들이 수업을 더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공학적 체제’와 ICT 기술 숙달이 곧 ‘선생님의 힘’을 보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 체제와 기술의 형식에 익숙해지는 것을 넘어서서, 그것에 담을 선생님 고유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을 때, 진정한 ‘선생님의 힘’이 발현되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의 힘’은 곧 ‘이야기의 힘’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야기의 힘(또는 이야기로 변용하는 힘)’을 터득한 선생님이야말로 ‘선생님의 힘’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지식과 정서와 기능을 모두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선생님은 위대하다. 어떤 교육과정 내용도 이야기로 번역되는 동안에 그것은 그 선생님의 콘텐츠로 구체화 된다. ‘이야기’를 문학 작품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야기란 자연과 세상에 대한 지식이다. 이야기란 경험에 대한 반추이다. 이야기란 소통에 대한 노력이다. 선생님이 수업을 위해 만드는 이야기는 그 자체가 교수법이다. 그런 이야기는 금방 학생을 사랑하는 징표로 전이된다. 지식을 일깨우는 이야기로 나아가면 ‘선생님의 힘’은 이미 교실을 가득 채운다. 오랜 울림을 주는 이야기는 선생님과 동일한 가치의 이미지가 되어 아이들의 인생에 효소처럼 내면화 된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바꾸는 ‘선생님의 힘’이다. 아이들 사이에 이야기가 꾸준히 쌓이면 그것이 곧 아이들의 문화가 된다.
요컨대 ‘이야기의 힘’이 곧 ‘선생님의 힘’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야기의 힘’을 어떻게 갖춘단 말인가. 물론 많은 독서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읽어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이야기의 힘’을 부리는 경지에 들기 어렵다. 지식을 읽어서 이야기로 만드는 사람이 진정한 ‘이야기의 힘’을 갖출 수 있다. 무릇 가르치기 위한 독서의 진지함과 성실함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