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선 | 사진작가, 여행칼럼니스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현장
동양과 서양을 잇는 곳, 즉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이스탄불'. 아득한 옛날부터 실크로드를 오가던 모험가들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해 왔던 이곳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환상이었다. 또 근래에 들어서는 영화 속에서도 많이 등장한 곳이다. 애정 영화, 첩보 영화 등을 막론하고 그 속에 배경으로 깔리는 이곳 이스탄불은 왜 그리 멋있게만 보였던고. 그래서 온갖 복잡한 사건과 무언가 신비한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며 바삐 돌아가고 있을 것만 같이 생각되는 곳이어서 이름만 들어도 왠지 가슴 설레게 하는 곳이다.
이곳은 각 시대별로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로 불려오다가 15세기에 들어서부터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오늘날의 '이스탄불'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그 각각의 이름들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도시의 이름으로 역사에 남아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또 다른 한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 바로 이곳 이스탄불이다.
관광객을 압도하는 볼거리들
이곳 이스탄불의 볼거리 중에서 가장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야 소피아(Aya Sofia)'성당이다. 이곳은 537년에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축된 동방 정교회의 대성당인데, 900년 동안 기독교 교회로 사용되어 오다 1453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들어서면서부터 회교사원으로 쓰였다. 십자군 원정 무렵인 1240년경 많은 보물이 약탈당했으며 회교도 정복자 마호메트는 비록 이교도의 상징적 건물이었지만 그 엄청난 규모와 각종 모자이크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결코 파괴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벽면에 석회만을 덧발라 회교사원으로 개조시켜 사용케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이 너무 낡아 1935년부터는 박물관으로 사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부에 들어서니 엄청난 크기의 돔과 그 화려함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술탄 아흐메트 공원의 가로수에 만개해 있는 꽃들의 향기를 맡으며 여섯 개의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고 마치 거대한 비행접시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둥근 지붕을 가진 '술탄 아흐메트 사원'으로 발길을 옮겨 본다. 이곳은 오스만 제국 시절 술탄 아흐메트 1세가 1606년에 아야 소피아의 위용을 넘는 거대한 이슬람 사원을 짓고자 장대한 포부를 가지고 짓기 시작해 근 10년 만에 완성한 것이다. 처음 그의 포부는 보다 더 많은 첨탑들을 세워 세계 최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메카'에 있는 것보다는 절대 많아서는 안 된다는 이슬람 지도자들의 의견이 강해 결국 그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을 싫어한 나머지 현재의 6개의 첨탑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내부는 아야 소피아 성당처럼 높다란 천정의 돔 아래 텅 빈 기도실뿐이다. 하지만 이곳저곳의 벽면이 파란 타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어서 일명 '블루 모스크(Blue Mosque)'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해마다 5월이 시작되면서 이 블루 모스크에서는 매일 밤 '빛과 소리의 제전'이 행해진다. 어둠 속에서 행하는 이 쇼는 '나는 술탄 아흐메트이다. 무슬림의 위대한 힘과 영광을 보여주기 위해 맞은편에 있는 아야 소피아를 능가하면서 이 세상 최고의 모스크를 짓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매일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터키어 순으로 번갈아 가면서 술탄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현장감 있게 울려 퍼진다. 그런 가운데 다양한 각도로 조명을 받고 있는 이 모스크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내면서 당시 오스만 제국 시절의 꿈을 꾸게 만든다.
화려함 뒤에 숨겨진 부패의 실상
오스만 제국 시대의 문화와 슐탄들의 실체를 보기 위해서 역시 근처에 있는 '톱카피 궁전(Topkapi Sarayi)'을 찾았다. 이곳은 정복자 마호메트 2세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제국의 부의 극치를 보여주는 왕궁으로 1467년에 완공되어 약 400년간 오스만 제국의 권력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술탄에게 보내온 각 국의 보물과 도자기, 의복, 장신구, 무기 등이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엄청난 크기의 다이아몬드를 비롯하여 체스, 칼 등을 비롯한 각종 보석들로 장식된 술탄들의 사치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강성한 오스만 제국이 ‘슐레이만 대제’의 통치 기간에 전성기를 맞은 이후로는 타락과 부패의 길로 빠져들어 멸망하게 되었다고 하더니, 결국 보는 이들에게 황홀하리 만치 화려하게만 보이는 이 전시품들이 백성들의 피와 땀을 빨아들인 그 부패의 실상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었다.
이곳 이스탄불의 구시가에서는 어느 방향으로도 눈만 돌리면 보이는 것이 오스만 제국 시절 모스크들의 둥근 지붕과 첨탑들이다. 갈라타 다리 건너에 있는 '갈라타 타워'의 전망대에 올라서 구시가 쪽을 바라보니 그 첨탑이 솟아있는 거대한 모스크들이 무려 13개 보였다. 앞서 언급한 것들을 제외하고도 '베아지트', '슐레이마니', '누루오스마니' 등등의 모스크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그러니까 결국 이것들이 이 이스탄불의 분위기를 꽉 잡고 있는 것이다.
이국의 정취가 묻어나는 대시장
하지만 이러한 모스크들만 보다가는 금방 식상하게 된다. 그래서 뭔가 보다 더 이스탄불 적인 것이 없나 하고 찾게 되는데, 그 욕구에 딱 맞는 곳이 없을 리 없다. 구시가 안에 있는 '그랜드 바자르'와 '이집시안 바자르'가 바로 그러한 곳이다. 이 두 곳은 모두 오스만 제국 초기에서부터 형성된 시장인데 이스탄불 최고의 분위기를 자랑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 두 곳을 보지 않고서는 이스탄불을 봤다고 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00여 개의 상점들이 둥근 지붕 밑에 들어서 있는 그랜드 바자르는 기다란 통로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고 그 통로를 따라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면 길을 잊기가 십상이다.
카펫 가게 앞을 지날라치면 어김없이 종업원들이 불러들이기 때문에 살 마음이 없다고 해도 구경이나 하고 가라고 안으로 잡아 다닌다. '차이'가 나오고 수십 장의 화려한 카펫들이 펼쳐진다. 모두가 몇 년씩 걸려서 손으로 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중에 어떤 것이 조금 낡았기는 해도 고풍스러운 멋이 있기에 물었더니 자그마치 백만 달러라고 해서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처음에는 농담인가 했는데 수백 년이나 된 골동품으로 족보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또 가죽 제품이 싸서 많은 관광객이 쇼핑을 즐기기도 하는데, 막상 무엇을 살 수 있어서 라기 보다는 그 독특한 분위기에 취하고 싶어 모두들 이곳을 찾는다.
좀 더 바닷가 쪽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이집시안 바자르는 그랜드 바자르 보다는 훨씬 규모는 작지만 분위기 면에 있어서는 이스탄불 최고를 자랑한다. 건물들은 낡았지만 어둑어둑한 조명하에서 운치가 더 있어 보이고, '로쿰(Lokum)'이라는 터키 특유의 과자들을 즐비하게 널려 놓고 지나는 사람들마다 맛보게 하는 종업원들과의 만남도 여정을 돋우어 준다. 또 하나같이 머플러를 둘러쓰고 다니는 터키 여인들이나 콧수염의 사내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니 저 먼 곳에 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에미뇌뉘의 선창가로 나오니 오고 가는 페리들이 분주하다. 아시아 쪽 이스탄불은 물론이고, 저 멀리 에게 해 쪽 다른 도시로까지 왕래하는 페리들도 있다. 이스탄불의 또 다른 멋을 느껴보기 위해 보스포러스 해협을 왕래하는 페리에 몸을 싣는다. 서구와 회교권이 혼재된 틈바구니에서 몸부림치면서도 조화를 이루어 가는 이스탄불! 이곳에 영광이 있을 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