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 | 호주 칼럼니스트
한국의 대학 입시가 가까워 올 때나 학년 말경이면 호주 유학에 관해 물어오는 주변 사람들을 자주 접한다. 중고생들은 물론이고 초등학생조차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둬야 하는 한국 실정에서 한 학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이 되면 뭔가 미진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지금의 학업 상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이나 돌파구를 찾고 싶은 심정에서 일 것이다.
‘머리 회전 빠르고 두뇌 기능 말랑말랑할 때 영어가 쏙쏙 들어가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초등학교 저학년인 자식을 1, 2년 정도 단기 유학을 시키고 싶다는 학부형들을 비롯해서, 자녀가 중학생만 돼도 내처 호주에서 대학까지 보내는 게 어떨지를 진지하게 상의해 오는 부모들도 있다.
부모와 자녀들이 머리를 맞댄 심사숙고 끝에 마침내 ‘유학을 간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고 이와 더불어 기왕 가는 것, 제대로 해 보자는 의욕 또한 하늘을 찌르게 마련이다.
유학생활의 이점은 생활공간과 일상 자체가 바로 영어 습득 체험 기회로 하루 24시간을 영어를 하며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원컨대 꿈조차 영어로 꾸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고스란히 ‘영어의, 영어에 의한, 영어를 위한’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의욕이 이 정도로 넘치다 보면 학교생활뿐 아니라 먹고 자는 곳도 기왕이면 호주 사람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타진해 온다. 자녀가 유학 기간 중에는 되도록 한국 사람과 접촉을 안 했으면 하는 것이다.
부모 동반 유학이 아닌 경우 현지에 친척이나 지인 등 자녀를 돌봐 줄 사람이 있다 해도 다만 얼마간은 자녀 혼자 독립적으로 영어권의 생활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하고 싶다는 욕심에서이다. 호주 현지인들과 생활하려면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거나 호주인 집에서 하숙(홈스테이)을 해야 하는데 원한다면 학교에서 외국 유학생들과 홈스테이 가정을 체계적으로 연계해 주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호주 가정에서 유학 짐을 풀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발생한다. ‘이제부터 내 아이가 호주 사람들과 밤낮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겠지…’ 한다면 대부분 착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호주인 홈스테이를 경험한 한국 학생들 대부분이 제대로 적응을 못 하거나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일쑤이며, 심지어 다시는 호주 사람 집에 안 가겠다며 공포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말하기 좋게는 이질적 언어와 환경에 어린 학생들이 적응을 못한 탓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고 듣게 되면 단순히 문화 차이와 언어 불 소통에서 원인을 찾을 일만은 아니라는 느낌이다.
한국 학생들에 대한 호주인들의 공통적인 평가는 한 마디로 ‘기본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자고 난 후 침대나 책상 정돈, 옷가지 개기, 욕실 사용 후 뒤처리 등 개인의 위생과 신변 정리 습관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물론 한국 학생들 처지에서도 할 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 따라 지나치게 부실하고 빈약한 식단을 제공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사사건건 일거수일투족을 트집 잡거나 학생들의 행동에 지나친 잔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심하다 싶은 쪽은 역시 한국 학생들이다. 호주 하숙집 아줌마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눈치를 살피려 해도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어질러도 뒤치다꺼리는 당연히 엄마의 몫이며 그저 공부만 잘하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호주에 왔다고 해서 갑자기 자기 주변을 척척 정리 정돈하기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탓이다.
더욱이 깔끔한 집에 걸렸다가는(?) 영어 회화보다는 묵묵히 입 다물고 청소하는데 시간을 죄다 보내야 하는 설움조차 겪을 판이다. 특히나 호주 사람들은 욕실 사용 후에 물기 한 점 남김없이 깨끗하게 닦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바닥에 머리카락을 흘린다거나 세면기 주변이 젖어 있을 경우 질색하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아왔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그저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응석받이로 자식들을 키우고 있다면 호주 부모들의 자녀 양육 관은 사람 사는 일의 기본을 철저히 가르치는 것을 우선시한다. 내가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내 주변은 내가 정리하는 것을 아주 어릴 때부터 몸에 배도록 훈련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 간의 최소한의 책임이자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를 익히는 첫걸음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가까이 지내는 호주 청년 하나가 잠시 한국의 한 가정에 머물면서 어릴 적부터 습관화된 매너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경탄 어린 칭찬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 청년은 기상 후 반듯하게 이부자리를 개키고 샤워를 하고 난 후에도 몸을 닦은 타월로 말끔하게 물기를 훔쳐내는 등 지나간 곳마다 두 번 손 갈 일이 없도록 자기 단속을 철저히 하더라고 했다.
자기 자식들을 그렇게 가르치고 남의 자녀들에게도 같은 가정교육을 기대하는 이 나라 사람들의 눈높이를 맞추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제멋대로 살아온 한국 학생들로서는 호주 가정의 엄격한(?) 규칙을 지킨다는 것이 고역스런 일이 아닐 수 없고, 그러다 보면 밉살스레 보이게 되어 말 한마디라도 퉁명스레 주고받는 일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대개는 한 달, 길어야 두 달을 채우지 못하고 보따리를 꾸려 다시 한국 가정으로 거처를 옮기는 학생들을 볼 때면 씁쓸함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어린 아이들을 탓할 게 아니라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가르친 부모 탓이라는 생각 때문에서이다.
귀한 내 자식이 남의 나라에 공부하러 가서 집에서도 생전 해 보지 않은 방 청소나 목욕탕 청소를 하고 있다면 펄쩍 뛸 부모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자유롭게 말을 통하기 위해서는 피차간에 마음을 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함께 있는 공간이 즐겁게 느껴져야 비로소 대화가 오고 갈 수 있는 법이다.
기본 예의가 없는 이방의 어린 학생들을 너그러운 시선으로 받아 줄 수 있는 호주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14년을 호주에서 살면서 직·간접적으로 이 나라 사람들을 겪어온 경험자로서 이 기회에 한마디 충고하고 싶다. 혹 호주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면 원어민을 통해 자식에게 영어를 가르치겠다는 섣부른 욕심만 가지고는 십중팔구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