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배우는 활동은 즐거운 ‘놀이’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힘겨운 ‘노동’에 해당하는가? 아마도 사람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질 것이다. 배우기를 즐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에게는 배우는 활동이 놀이일 것이다. 배우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배우는 활동은 힘겨운 노동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교육을 연구하며, 교육활동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모두가 배우는 일을 즐긴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지며 풍요로워질까 생각하곤 한다.
미국에서 이루어진 한 조사에서, 지금하고 있는 일이 ‘일’처럼 생각되느냐 ‘놀이’처럼 생각되느냐 물어보았더니, 6학년 아이들이 학교 공부는 일 같고 운동 시합은 놀이 같다고 약속이나 한 듯이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도 이러한 질문에 대해 크게 다르지 않게 대답할 것으로 생각된다. 오호 통재라. 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놀이가 아니라 일처럼 느껴진다는 말인가?
인간은 한편으로 누가 뭐래도 ‘배우는 존재’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이다. 인간이 배우는 활동을 놀이처럼 즐기는 것은 불가능한가? 인간은 본성적으로 배우는 것을 놀이처럼 즐기는 존재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필자의 직업의식 때문에라도 인간은 배우는 것을 놀이처럼 즐기는 존재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온갖 질문을 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원하는 것을 배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적어도 배우는 활동을 가리키는 ‘교육’은 인간에게 놀이와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배우는 일 자체가 좋아서 희열을 느끼며 배우는 활동에 몰입하는 것을 한 번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학교교육’은 교육의 특수한 형태이다. 특정한 내용만이 특정한 방법으로 가르쳐지고, 특정한 방식으로 가르친 내용을 평가하며, 평가 결과는 여러 사회적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교육이 이처럼 특정한 방식의 학교교육의 형태로 포장되어 제공될 때, 교육은 학생들에게 더 이상 놀이일 기능성은 줄여든다. ‘놀이로서의 교육’은 ‘노동으로서의 학교교육’의 형태로 바뀐다. 그 자체로 좋아서 참여하는 ‘놀이’라기보다는 뭔가를 대가로 얻기 위하여 수고해야 하는 '노동'으로 변질된다.
우리 아이들한테 학교에서 노동을 즐기라고 권하기는 쉽지 않다. 노동을 즐기라고 권한다 하더라도 학생들이 이 말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일 지도 알 수 없다. 교육은 원래 놀이가 아니라 노동이라고 학생들에게 강변해야 하는가? 교육이라는 노동은 일류대학의 입학, 좋은 직장, 사회적 명예와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설득해야 하는가? 학생들에게 교육이라는 ‘노동’의 휘황찬란한 수많은 혜택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면서 힘든 노동을 감내하라고 훈화해야 하는가?
교육은 힘겨운 노동이며, 교육이라는 노동이 가져다 줄 미래의 혜택을 상기하면서 ‘노동으로서의 학교교육’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방안은 지나치게 암울해 보인다. 왜냐하면 교육이라는 노동이 가져다 줄 미래의 혜택은 소수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모두가 미래 지향적인 사고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노동에 참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말이다.
교육은 원래 놀이였는데, 학교교육으로 포장되면서 노동으로 변질되었다고 볼 수는 없는가? 모두가 자신의 관심과 흥미에 따라 뭔가를 배우는 배움의 향연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한가? 학교교육이 ‘노동’이라기보다는 ‘놀이’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소수만이 성공하고 대다수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학교교육의 성격을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학교교육의 모습으로 혁신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새 학기부터는 좀 더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노동보다는 놀이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교사를 포함한 모든 교육계 인사들이 ‘노동으로서의 학교교육’을 ‘놀이로서의 교육’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을 시도했으면 좋겠다. 교사와 학생 모두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적 가치를 향유하면서 한바탕 신명나게 교육적 놀이를 잘 놀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