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8 (금)

  • 맑음동두천 22.6℃
  • 맑음강릉 24.3℃
  • 맑음서울 24.7℃
  • 맑음대전 20.7℃
  • 흐림대구 19.4℃
  • 구름많음울산 20.6℃
  • 구름많음광주 20.7℃
  • 부산 21.1℃
  • 구름많음고창 19.3℃
  • 흐림제주 20.5℃
  • 맑음강화 20.0℃
  • 맑음보은 16.4℃
  • 구름조금금산 18.9℃
  • 흐림강진군 19.6℃
  • 흐림경주시 19.2℃
  • 흐림거제 19.1℃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조원미에 나타난 순리의 아름다움

자연을 그대로 살리는 한국 정원의 순리미.
우리만의 정취와 아늑함을 만나볼 수 있는
한국 정원은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다.
그 특별하고 순수한 정원을 만나보자.



자연미 살리는 한국의 정원

생활공간으로서의 주택에는 수천 년 함축되고 전승되어 온 그 민족의 취향이나 기호 그리고 미의식이 용해되어 있기 마련이다. 한국의 후원이나 정원을 보면 꾸밈새 없이 자연의 섭리에 순수하게 따르려는 한국인의 담담한 마음과 순수한 조원미(造園美)를 느낄 수 있다. 흔히 한국 주택에는 정원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다만 두드러지지 않을 뿐 훌륭한 정원이 있었다. 즉, 자연에 인공을 가미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그대로 살리는 정원이다. 한국의 정원예술은 건축예술의 일부분이면서 자연과 인공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를 갈등한 흔적이 보인다.

한국 정원의 조원방식에는 낙향한 선비들의 별서정원(別墅庭園), 산수정원(山水庭園), 궁원(宮園)이나 향원(鄕園)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원 조성에 대한 관념과 성향이 어떠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문헌자료로는 고려의 선비 이규보가 쓴 〈손비서냉천정기(孫秘書冷泉亭記)〉와 화초 재배에 관한 강희안의 〈양화소록(養花小錄)〉 등이 있다.

한국의 정원은 되도록 인위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미를 최대한 살린 것이 특징이다. 한국의 정원은 담장을 넘으면 그대로 대자연으로 번져 나가고 담장 안은 그대로 자연의 한 모퉁이로서 존재하며 최소한의 손질만 가미했을 뿐이다. 이는 자연미를 최고로 여기던 한국인의 정취와 아늑하고 정다운 우리 민족의 은근한 아름다움까지 느끼게 한다.

중국, 일본 정원은 인공미 강해
이에 반해 중국 정원의 대부분은 경물(景物)로 중요시되고 있는 석가산(石假山)을 쌓고 태호석(太湖石)으로 바위 풍경을 조성하는 등 대규모의 인위적인 공간이 주된 경관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정원 입구에 들어서도 정원의 경치가 잘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담장에 뚫린 몇 개의 문을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태호석이나 가산, 연못이나 정자, 당 등으로 어우러진 본격적인 정원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따로 인공 경관을 조성하는 것은 자연 풍치가 빈약한 지역의 정원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한편, 일본의 경우를 보면 정(庭)은 궁궐에서 조정의식을 행하는 네모난 마당을 의미하며 원(園)은 크고 넓은 들이나 밭과 같은 성격의 공간으로 여긴다. 일본 정원은 자연 경관을 철저하게 인간 중심으로 만든 실용적 가치를 높인 공간이다. 대부분 담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산이나 강, 바다, 숲 등의 자연 경관들을 인공적으로 조성하였다.

일본 정원의 구체적인 조원 방식을 보면 연못 속에 여러 개의 작은 섬을 배치하여 소나무를 심고, 연못가에 소금 굽는 연기를 솟아오르게 하여 안개를 대신하며, 자연석을 활용할 때도 화폭에 경물을 배치하듯 완벽한 구도를 추구한다. 그리고 각종 석물(石物)이나 연못, 다리 등 인공물은 물론 나무를 비롯한 자연물에도 인간의 체취가 강하게 배어 있다. 또한 돌과 나무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생장속도가 느린 상록활엽수를 많이 심는다. 이 경우에도 철저하게 정원의 규모나 사람의 취향에 맞추어 키가 너무 크면 자르고, 보기가 좋지 않으면 최대한 다듬어 모양새를 낸다. 이것은 수목의 크기를 정원의 크기에 맞추어 수형을 아름답게 함과 동시에 화목인 경우 나무와 꽃을 보다 충실하게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 일본의 화훼·분재 등 원예 산업을 발달시킨 기초가 되기도 했다.


조선 최대의 별서정원, 부용동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환경이 모두 정원예술을 만들 수 있는 소재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정원을 조성한다고 해서 특별히 수목이나 경물(景物)을 정원에 옮겨다놓지 않았다. 때로는 필요에 따라 약간의 인공을 첨가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연 순응적인 조원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국의 조원미를 대표하는 예로 전남 담양의 소쇄원(瀟灑園), 전남 해남군 보길도에 있는 부용동(芙蓉洞) 정원, 경주의 포석정, 비원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 부용동 정원과 소쇄원 정원은 순리의 아름다움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정원이다.

먼저 부용동 정원을 살펴보면 이곳은 크게 세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처하는 살림집이 있는 낙서재(樂書齋) 주변과 휴식과 독서를 위해 건너편 산허리의 바위 위에 집을 마련한 동천석실(洞天石室) 주변 그리고 동리 입구의 세연정(洗然亭) 주변이다. 낙서재는 서실(書室)을 갖춘 살림집으로 북향하고 있으며, 옆으로 낭음계(朗吟溪)라는 작은 시내가 흐르고, 낭음계의 양편에 곡수당(曲水堂)과 무민당(無憫垈)의 두 건물이 있다. 이 두 건물의 곁에는 넓고 네모진 연못이 있다. 동천석실은 천하의 명산경승으로 신선이 살고 있는 곳을 ‘동천복지(洞天福地)’라고 한데서 이름 지어진 곳으로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세연정 부근은 이 정원에서 가장 공들여 꾸민 곳으로, 해변에 바로 인접한 동구(洞口)에 인공으로 물길을 조정하면서 연못들을 만들고 정자와 대(臺)를 지어 경관을 즐기도록 하였다.

이 정원은 윤선도(尹善道)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거처할 집을 짓고 그에 딸린 정자와 연못 등을 만든 것이다. 1636년 왕이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하자 항복을 반대하던 윤선도는 벼슬을 버리고 은거를 결심하여 해남 연동(蓮洞)의 본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 섬에 별서(別墅)를 짓고 정원을 꾸민 것으로 건립 연대가 확실하고 유적이 온전히 남아 있는 데다 조선시대의 정원으로서는 드물게 보는 큰 규모의 별서정원이라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높다.

겸손함 배어 있는 정원, 소쇄원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의 선비 양산보의 별서정원(別墅庭苑)으로서 창덕궁 후원인 비원이 대표적인 왕가의 정원이라면 소쇄원은 조선시대 최고의 민간 정원이라 할 수 있다. 소쇄(瀟灑)는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의미로 담 밑에 널찍한 돌을 괸 두 개의 구멍을 통하여 흘러 들어오는 계곡물도 절묘한 조형미는 자연을 거슬리지 않으려는 한국인의 겸손함이 그대로 배어 있다.


소쇄원은 우리나라 건축과 조경의 성지로까지 일컬어지는데 그것은 10여 채의 건물, 계곡과 연못, 돌과 화목, 다리 같은 여러 조경 요소들을 일관된 철학에 따라 엄정하게 배치하고 있는 커다란 정원임에도 불구하고 인공을 드러내지 않은 탁월한 조경감각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손대지 않으면서 돌보고 자연스레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하는 고결한 정신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한국미술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순리를 따르려는 인간의 겸허함을 엿보이게 하는 심미의식으로 생활 속에 스며 있는 자연의 미감이다. 사물의 이치나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찾는 자세, 그리고 인공을 배제한 자연미와 연결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분수에 맞는 아름다움을 지닌 한국미술은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순리의 아름다움인 동시에 독자적인 한국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