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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 녹아 있는 서민의 미학 '짚'

수확이 끝난 들판에 푸짐하게 쌓여있던 짚더미.
짚은 우리 삶에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나 한민족의 손재주를 증명하는 짚공예품이
무관심 속에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초등학교 저학년 국어교과서에 마음씨 착한 형과 아우의 이야기가 실려 가슴 찡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벼 베기를 한 후 형은 아우에게, 아우는 형에게 서로 볏가리를 높이 쌓아주려고 밤새 자기의 볏가리를 옮기다가 마주쳐 겸연쩍어하며 형제의 우애가 더욱 돈독해진다는 이야기다.


서민들이 엮어낸 질박한 아름다움
형제의 우애가 볏짚 높이만큼 불어나듯 들판의 푸짐한 짚들은 작은 산더미를 이루고 있는 것만으로도 서민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었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여름에는 보릿짚, 밀짚, 가을에는 볏짚이 생긴다. 그리고 가을걷이가 끝나면 곡식을 추려낸 볏짚들이 퍼포먼스 작가가 널어놓은 작품처럼 마을마다 지역마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무늬를 이루며 들판 가득 수를 놓는다. 이처럼 짚은 항상 곁에 있던 흔한 것이어서 일상생활에서나 사람들에게 그다지 귀중함을 느끼게 하지 못하였으리라.

그렇지만 우리 선조들은 그것을 천대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 때로는 생활용품으로, 때로는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물건으로 변화시켜 생활 속에서 늘 간직할 수 있는 우리만의 짚의 아름다움을 창출하였다.

한국미로서 짚의 아름다움은 짚으로 엮어서 만든 우리 물건 어디에서든 발견할 수 있다. 짚의 종류도 여러 가지지만 만들어진 종류도 다양해 의식주의 생활용품에서부터 공예, 농기구, 주술적 의미의 물건 등 어떤 것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의 전통 문화 유산이 시간이 갈수록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반면 짚으로 만들어진 공예품이나 문화는 날이 갈수록 버림받고 잊혀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속에 한국문화의 위상을 더 높이 세울 수 있는 길은 유달리 손재간이 뛰어난 우리 민족의 장점을 알리는 것이다. 짚은 바로 우리 문화유산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서민들이 엮어낸 고졸하고 질박하며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의 생활에 바로 녹아있는 삶의 미학, 일상 미감으로서 짚의 아름다움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한국적 의식주 문화의 필요충분조건
짚으로 만든 물건은 우리나라 서민들의 의식주 어느 곳에서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간 미감을 살린 지붕, 건강 미학으로서 신발, 모자, 생활필수품으로서 농기구와 어린이들의 놀이기구까지 짚은 조용히 우리 곁에서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해 왔다.

짚을 이용한 공예품 중 사람들의 일상 미감이 가장 잘 묻어있는 것으로 단연 짚신을 꼽을 수 있다. 볏짚을 엮어서 만든 것이 짚신이다. ‘초혜(草鞋)’ 또는 ‘망리(芒履)’라고도 한다. 고무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우리 민족의 신발 노릇을 톡톡히 했다. 논농사를 많이 지어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짚을 이리저리 꼬아 엮어냈던 짚신은 서민들이 사용하는 신발이었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이름으로 응용되기도 하였다. 처음에 짚만을 써서 네 날로 엉성하게 짜 신던 짚신은 차츰 치장을 더하기 위해 왕골, 부들 등을 이용해서 섬세하고 고운 신발을 삼아 신었다. 삼으로 만든 고급스럽고 세련된 미투리, 왕골로 만든 왕골신, 칡덩굴의 속껍질로 만든 청올치신, 부들로 만든 부들신 등이 그것이다.

짚신은 사람과 같이 생활하면서 때로 동행하던 소에게도 이용 기회를 줬다. 먼 길을 가야 할 때면 하루에도 수십 리씩 걸어야 하는 소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소 주인은 어디서고 잠시 쉬는 틈만 생기면 쇠짚신을 삼아서 닳아진 신을 갈아주었다고 한다. 정 많은 주인장이 짚 한 가닥 한 가닥에 정을 뚝뚝 묻혀서 인정 넘치게 짚신을 삼는 모습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짚은 옛 사람들의 지혜를 담아 생활에 필요하면서도 모습을 멋스럽게 하는 옷으로도 사용되었다. 들판에서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면 농부는 짚으로 엮은 집시 스타일의 우비 도롱이를 꺼내 입고 논두렁을 성큼 성큼 걸어 나온다. 이 도롱이 의상은 패션 잡지에나 나올 만한 무기교적인 디자인으로 현대적 미감에도 손색이 없는 독창적 미감을 가지고 있다.

의생활 외에도 짚은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음식문화와 깊숙이 관련지어 소박하고 질박한 미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저장의 용도로 만든 김치광은 마치 움집처럼 짚을 엮어 쌓아 올려 질박하지만 푸근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주거문화와 어울림의 미를 보여주는 예도 있다. 메주를 뜰 때 둥글고 각진 모양의 메주를 짚으로 엮어 공중에 가지런히 매달아 놓은 풍광은 한국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을 더욱 고취시켜 준다. 짚으로 엮은 초가지붕과 처마 아래 매달려 있는 황톳빛 메주를 엮은 짚의 조화는 어느 누구도 계획하지 않았겠지만 그 어울림은 통일미를 보여주는 한국 미감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짚은 주거 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그 지붕은 자연과 맞닿아 자연친화적인 공간 미감으로 자리 잡으며 산등성이와 이어질 듯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었다.

凶을 쫓고 福 부르는 행운의 상징
짚으로 엮은 것들에는 생활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주술적인 의미도 있었다. 그 중 기원을 담은 예로 예전에는 가정에서 아이를 분만하게 되면 마귀를 쫓는다는 의미에서 왼새끼를 꼬아 대문의 양쪽 기둥에 어른 키 정도의 높이로 금줄을 쳤다. 사내아이를 분만했을 때는 새끼줄 사이사이에 생솔가지와 숯, 빨간 고추를 같이 매달고, 여자아이일 경우에는 생솔가지와 숯만 간간이 끼워 대문에다 새끼줄을 쳤다. 손마디가 굵은 순박한 남자들은 자신의 자식이 태어날 것을 기뻐하며 오직 아기를 위한 소원만 담고 볏짚의 생김 그대로 꾸밈없이 새끼줄을 꼬았다. 가지런히 묶어 놓은 볏단에서 서너 가닥씩 볏짚을 꺼내 양손에 잡고 왼쪽으로 말면서 꼰 새끼줄 사이사이에 아기의 건강과 장래 희망을 담았던 것이다.

또 지방에 따라서는 신성한 장소를 표시하기 위해서 마을 어귀나 산등성이에 있는 큰 나무, 바위 등에 흰 종이나 흰 헝겊 또는 주먹만 한 짚 뭉치를 매달았다. 펄럭이는 흰색 헝겊과 함께 매달았던 짚 뭉치는 무작위적인 미감으로 큰 나무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서민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어떤 지방에서는 터줏가리라 하여 그 집의 복을 지키는 터줏신을 모셔놓기 위해 추수가 끝나면 햇짚으로 정성스럽게 짚을 엮어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아내가 아기를 가지면 남편은 산에 올라가 가장 정결한 장소에 난 띠를 뽑아다 돗자리를 만들어 쳤다. 짚으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것 역시 산모가 맑은 기운을 받아 아기를 잘 낳기를 바라는 주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민속놀이를 보면 짚이 놀이문화에도 다양하게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정월에 짚을 거두고 고를 만들어 줄의 머리 부분에 단 다음 농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고싸움이라는 것을 했다. 동쪽은 수줄, 서쪽은 암줄이라 하여 암줄이 이겨야 그 해에 풍년이 든다며 보통 암줄을 수줄보다 길게 만드는 것이 민속풍습이다. 길고 짧음, 음양의 조화로 고를 올린 고싸움은 놀이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 년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농경의식으로 전승되어 농민들이 희망을 품고 즐거움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행사는 하루에 끝나지 않고 20여 일을 계속하면서 승리할 때마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온 마을 사람들이 하나로 뭉치게 하는 역할도 했다.

이처럼 놀이에 사용하도록 한 것이든 서민들의 소원성취를 위한 것이든 이런 저런 물건을 만들거나, 또는 다른 물건과 어우러지게 꾸며진 볏짚은 어느 한 곳 가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또 하나의 우리 아름다움이었다.


엮고, 꼬고, 묶어 사용되는 농기구
짚은 농기구의 사용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듬해 쓸 종자들을 보관하거나 직접 밭에서 뿌릴 때 사용하던 종다래끼부터 농사를 지을 때 갖가지 씨앗을 넣을 씨오쟁이까지 농기구 보관용 재료로도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보관용이나 농업 경작을 위해 필요하게 만든 짚으로 만든 물건들은 그 쓰임새에 적합한 모양에다 크고 작은 주둥이를 만들어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소박하고 은근한 멋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갖가지 농기구의 사용 시 움직임을 위한 유연성 있는 역할은 모두 짚으로 만든 밧줄이 담당하였고, 농촌사회에서 빼 놓을 수 없던 거름의 도구인 장군의 마개도 짚이 담당했다. 짚은 엮든지, 꼬든지, 묶기만 하여도 하나의 공예품으로 손색이 없는 물건이 되는 것이다.

짚으로 엮은 아름다움이 더 고귀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이것들은 분명 전문 장인이 만든 것도 아니었으며, 예술가가 만든 것도 아닌 일반 서민의 솜씨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 중 촘촘하게 엮어서 성실한 솜씨를 보이는 삼태기나 멍석은 짚으로 만든 것 중 우리 선조들의 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물건 중 하나다. 그 쓸모도 대단하여 삼태기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역할을 했으며, 멍석은 언제 어디에서나 펴놓기만 해도 앉고 눕고 뛸 수 있는 공간 역할을 하였다. 삼태기는 크기만 다를 뿐 모양은 비슷했지만, 멍석은 짜임도 독창적이고 모양도 둥근 모양, 네모 모양 등 집집마다 멍석을 짜는 주인의 솜씨에 따라 제각기 달랐다. 어떤 것은 가늘고 촘촘히 엮은 것이 있는가 하면 굵고 투박하게 남성적으로 엮은 것도 있다. 또 색깔 있는 헝겊이나 비사리로 ‘상(上)’자 혹은 ‘복(福)’자를 넣기도 하고, 의미 없이 줄을 두어 가닥 넣어 단순한 모양에 멋을 더하기도 했다. 집안의 행사가 있을 때 멍석을 깔고 차양만 치면 무엇이든 못하는 일이 없었다. 가을 농가마당에서는 추수한 곡식들을 말리기 위해 집안에 있는 멍석이 총동원되기도 했다. 이처럼 멍석은 우리 선조들의 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했던 물건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우리 선조들이 전천후로 사용하던 멍석 문화가 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 더 이상 만드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있던 것마저도 점차 사라지거나 손상되고 있으며, 멍석 위에서 행해지던 여러 가지 문화들도 흔적 없이 사라져 가는 실정이다.

독창적 솜씨 있었기에 꽃피웠던 문화
짚은 이처럼 우리 의식주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들을 차지했다. 이제 이러한 짚 문화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때이다.

지금까지 짚으로 엮은 여러 가지 우리의 문화를 살펴보았지만 짚 문화는 짚으로만 된 것은 아니다. 짚 외에도 피나무껍질, 비사리, 일년피껍질, 싸릿개비, 띠, 청올치 등 산과 들에 있는 엮을 거리라면 무엇이든 생활에 필요한 물건으로 만들어져 순박한 아름다움이 표출되었다. 빗자루를 만들 때는 갈목, 억새풀, 신서란, 순비기 등으로 엮었고, 힘이 많이 받는 단단한 것을 만들 때에는 칡덩굴 새삼, 자골 등으로 엮었다. 또 부드러운 돗자리를 만들 때는 부들로, 바구니를 만들 때는 댕댕이 덩굴, 키나 바구니 등을 단단한 용구를 만들 때는 버드나무 가지, 가장 단단하다는 솔포 등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엮는 재료는 짚 외에도 그 종류도 헤아릴 수없이 많았다. 이것은 바로 농가 주변에 널린 모든 풀들을 생활용품의 재료로 활용할 줄 알았던 우리 민족의 기지와 뛰어난 솜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정한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일상 속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짚 문화는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조차 적을 정도로 순식간에 사라져가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고 있지만, 짚으로 엮은 아름다움이야말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진정한 한국의 아름다움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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