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반[隊商]의 낙타몰이 무함마드, 하디자를 만나지 못하다.” 사실은 무함마드가 하디자를 만나 결혼한다. 이슬람교는 두 사람의 결혼을 알라의 섭리로 설명하지만 무함마드가 카라반의 주인 하디자와 결혼하지 못했어도 이슬람교가 개창되었을까?
모로코에서 인도네시아까지, 예멘에서 체첸에 이르기까지 60여 국가의 13억 5천여 신도(이슬람 측은 17억 이상이라고 주장한다). 약 67억 세계인구의 1/5 내지 1/4에 달한다. 27개국으로 늘어난 EU 전체의 인구가 5억에 훨씬 못 미친다지만 이슬람교의 교세를 웅변해주는 수치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어린 시절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예수와 달리 탄생과 관련해서도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특히 40세 이전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는 사후에 기록된 것이어서 자세하지 않고 신빙성도 그리 크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 무함마드는 570년경에 메카의 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6세에 부모를 잃어 조부의 보살핌을 받던 중 8세에 조부도 타계해 백부의 보호아래 자랐다.
15년 수행 끝에 알라의 계시 받아
성장한 후에는 부유하지만 두 차례 결혼해 수명의 자녀를 둔 미망인 하디자 소유의 대상(隊商)에서 낙타몰이로 일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하디자의 눈에 띄어 신임을 받은 그는 결국 25세에 40세의 그녀와 결혼했고, 결혼 후 곧 메카 부근 동굴에 들어가 수도했다. 아내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샤를 비롯해 수명의 아내를 두었던 무함마드는 그러나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 다른 여인을 취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여러 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딸 파티마만 장성했다.

무함마드는 한 동굴에서 15년여 동안 명상을 하던 중 610년경에 천사 가브리엘(기독교의 수태고지 천사다)의 안내를 받아 천마(天馬)를 타고 예루살렘의 한 바위에 도착, 빛사다리를 타고 승천해 알라(Allah)의 계시를 받고 그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메카로 귀환했다고 한다. 지금 그 바위 위에는 ‘바위돔모스크’가 서 있다. 그때부터 그는 ‘이슬람(Islam, 복종 - 무슬림 muslim은 복종하는 사람)’을 외치며 알라의 진리를 설파했다. 그의 나이 마흔이 되던 해의 일이었다.
무함마드라고 처음부터 포교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한때 마법사나 점쟁이로 외면 받았고 부인과 백부마저 떠나버렸다. 하지만 그는 622년에 메디나로 옮겨(헤지라, 聖遷) 포교에 성공했고 630년에는 메카에 복귀했다. 시리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 메디나에서 타계했지만(632) 그가 만든 이슬람공동체 ‘움마’를 토대로 성장한 이슬람제국은 100년도 못되어 동·서양에 걸친 대제국이 되었다.
이슬람제국은 639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이집트(640)와 튀니지(698)를 아우르고 711년에 지브롤터 해를 건너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했다. 동쪽으로도 724년경에 인더스 강 유역과 중국 서부지방을 차지하고 카스피 해 연안을 병합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한 후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에 침공했다. 프랑스 남부 뚜르에서 패해(이겼을 경우 유럽의 한가운데인 프랑스도 이슬람 땅이 되었을 것이다) 피레네 산맥 남쪽으로 후퇴했지만 지중해 연안의 유럽 땅을 유린했다.
5가지 이슬람의 기둥 이행해야
이슬람교는 신도에게 5가지(이슬람의 기둥)의 이행을 요구하는데, 신앙고백·기도·구제·단식·순례다. 이슬람교파 중의 하나인 카와리즈파는 거기에 성전(聖戰)을 더해 6개의 기둥을 지키게 한다. 무슬림은 항상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예언자이다”는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 그것은 전장(戰場)에서는 신을 위해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음을 의미하고 장례식에서는 애도의 표시로, 아기가 태어나는 산실에서는 축복의 의미가 된다. 무슬림은 매일 5회 정해진 시간(새벽·정오·일몰 2시간 전·일몰 직후·일몰 두 시간 후)에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 그들은 손발과 얼굴을 씻고 신을 벗고 모스크에 들어가 꿇어앉아 메카의 카바신전을 향해 기도한다. 기도시간이 되어 가까이 모스크가 없으면 있는 자리에서 메카를 향해 기도한다.
순례는 무슬림의 의무이자 축복이다. 공식순례 때는 전 세계에서 수백만의 무슬림들이 메카의 카바신전으로 모여들기 때문에 때로는 화재나 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지만 그들은 순례 중에 죽는 것을 구원받은 것으로 여긴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꾸란〉에는 “알라를 위해 순례와 소순례의 의무를 다하라 (중략) 병자 또는 머리에 질환이 있는 자는 대신 단식이나 희사를 한다든가, 공양을 하면 된다”고 가르친다. 무슬림은 또한 매년 일정 기간 먹거나 마시지 않아야 하는데, 금식은 대개 이슬람력 9월(라마단)에 행해지는 공식 금식을 말한다. 금식은 한정된 날수를 지켜야 한다. 단 병자 또는 여행 중인 자는 다른 날에 같은 날수만큼 행해야 한다. 금식 중에는 화를 내거나 아내와 동침하거나 담배를 피워서도 안 된다. 반면 하루의 금식시간이 끝난 다음에는 원하는 대로 먹고 이슬람율법이 허용하는 행동은 할 수 있다.
마지막은 구제, 곧 종교적 헌납이다. 〈꾸란〉은 예배를 잘 드리고 구제를 행하라고 가르친다. 노예·정신병자·빈자·재산만큼의 빚이 있는 자·미성년자 등을 제하고는 구제활동에 참여해야 해야 한다. 사실 이슬람교에 있어서 구제는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는 한 방법이었다. 일부다처제를 채택해 미망인과 고아를 돌보게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비롯한 것으로 평가된다. 오늘날은 종교헌금으로 바뀌었지만 일부 아랍국은 구제를 의무화하고 있다.
무슬림은 또한 도박을 해서는 안 되며 돼지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고 술도 멀리해야 한다. 〈꾸란〉은 “시체, 피, 돼지고기, 알라 이외의 이름으로 희생되어 타살된 것 등은 너희에 금지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돼지고기와 술을 금한 것은 사막기후와도 연관 있는 듯하다. 〈구약성서〉의 레위기가 돼지고기를 금한 것이나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전도하면서 유대인의 돼지고기 금식을 반드시 지킬 필요는 없다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유대인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기독교와 유사한 교리 갖고 있어이슬람교와 유대·기독교는 일신교리를 비롯해 일부 교리가 유사하고 성지를 공유하는데, 그것도 두 종교가 충돌해온 한 원인이다. 두 종교의 비슷한 점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일신론이다. 이슬람교의 알라 또한 유일의 신이고 창조주다. 〈꾸란〉은 “온 세상의 주인이신 알라를 찬송할 지어다”고 시작하는 1장 1절을 비롯해 도처에서 알라는 “유일신이고 그 외에 어떠한 신도 없다”고 가르친다.
천지창조 이야기도 유사하다. 〈꾸란〉은 “그대들의 신은 하늘과 땅을 6일간에 만드시고(중략) 만사를 다스리시는 신이시다”고 말한다. 이슬람교에서도 낙원에서의 추방 이야기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즉, 알라는 아담에게 아내와 더불어 낙원에 살며 마음대로 먹되 특정한 나무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가르쳤지만 이행하지 않고 불의를 범했다는 것이다.
〈꾸란〉의 출애굽 이야기도 두 종교의 관계를 짐작케 한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포함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하는 이야기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꾸란〉에는 모세 외에도 아담, 아브라함, 다윗, 세례 요한, 예수, 마리아 등 신·구약성서의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무함마드도 인간의 조상은 진흙으로 만들어진 아담이며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올바르고 의로운 자로 탄생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슬람교에서의 예수는 한 사도일 뿐이다. 〈꾸란〉에는 “우리는 많은 사도의 뒤를 이어 또 사도를 파견하고, 마리아의 아들 예수를 보내기에 이르렀다”와 “알라의 눈으로 보면 예수는 아담의 경우와 같다”는 구절이 나온다. 성모 마리아 또한 알라의 은총을 받아 예수를 잉태하고 순산했으며, 예수는 알라의 은총을 받아 장님과 문둥이를 고쳤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알라의 사도로서의 메시아지만 예수를 메시아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름은 메시아, 마리아의 자식 예수, 그 분은 현세에 있어서나 내세에 있어서 고귀한 분이시며 알라 가까이 계신다”느니 “구세주라고 하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단지 알라의 사도일 뿐이다”고 말한다.
〈꾸란〉은 또한 신·구약 성경과 얽혀 있다. 이슬람교에 따르면 알라가 인간에게 준 거룩한 책은 〈꾸란〉과 성경을 포함해 104권인데, 아담에게 10권, 아브라함에게 10권, 모세에게 5권, 다윗에게 시편, 예수에게 복음서, 무함마드에게 〈꾸란〉을 주었다. 그런데 무함마드는 신이 아담과 아브라함에게 준 책은 모두 분실되었으되 그중 무슬림이 알아야 할 것은 〈꾸란〉에 들어있다고 주장했다. 그뿐 아니라 무슬림들은 유대·기독교도가 알라의 거룩한 책들을 변조시켰다고 비난하는가 하면 신·구약성경은 변조되어 진리와 함께 오류도 섞여있으므로 성경과 반대되는 〈꾸란〉의 내용을 따르라고 한다. 무함마드에 의하면 〈꾸란〉은 이전 가르침의 효력을 상실시켜 바로잡은 마지막 계시므로 신·구약 성서의 완성판이다.
〈꾸란〉의 부활이야기도 두 종교의 관계를 짐작케 하지만 영체(靈體) 영생을 가르치는 기독교와는 다르다. 이슬람교도는 내세를 육신으로 살게 된다. 즉, 낙원의 행복은 육체적인 것이고 지옥의 형벌은 곧 육체적 고문이라는 것이다. 이슬람교의 부활에서는 몸이 일어나서 영혼과 결합한다. 선업(善業)으로 구원받아 부활하는 날 썩지 않고 보존되는 응치등뼈에서 나머지 뼈들이 자라난다고 한다.
이슬람제국의 일등공신 하디자무함마드가 하디자와 결혼할 수 없었더라면 과연 이슬람교가 존재할까? 대상의 일원에 지나지 않던 무함마드가 어떻게 천국의 진리를 터득해 설파할 수 있었을까? 더욱이 그는 글을 몰랐다고 하며 설사 알았어도 당시 중동에는 아랍어로 된 종교·철학 서적이 없었다. 대상으로 시리아 등 여러 곳을 여행해 견문을 넓혔겠지만(그래서 유대·기독교의 교리에 익숙했겠지만) 무엇보다도 장기간 수도했기 때문에 무함마드는 득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디자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무함마드는 15년간의 수도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함마드가 하디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슬람교와 이슬람제국 또한 없었을 것이다. 이슬람교와 이슬람제국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중동과 동지중해 세계의 역사, 나아가 세계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을까? 이슬람교 아닌 다른 종교가 중동에서 기독교와 경쟁하고 대립해왔을까? 그래도 십자군전쟁은 일어났을까? 또한 중동 역시 상이한 종교·인종·문명이 유혈대결을 벌이는 땅으로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