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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넓은 조형의 세계, 소반의 아름다움

지금도 일반가정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반.
서양식 문화에 밀려 명맥을 잃어가고 있지만
지역마다 집집마다 다양한 독창성을 간직한
우리 목공예를 대표하는 소중한 유산이다.

한 가족이 각기 다른 시각에 식사를 하는 것은 이젠 어느 가정이나 예사로운 일이다. 옛날처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작은 모양의 상(소반)을 차려 주는 일은 극히 찾기 힘들다. 그러나 지금도 일반 가정집에는 한두 개 정도는 있을 정도로 우리와 친숙한 것이 소반이다. 그동안 서양식 문화와 핵가족화가 팽배해지면서 복잡한 것보다 간단한 것을 원하고, 힘든 것보다 수월한 것을 택하게 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이유로 현대 가정에서는 미끈하게 빠진 긴 다리의 식탁이 가족들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외상받기의 흔적 간직하는 소반
우리 옛 가정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상받기를 즐겨했다. 특히 상류 가정에서는 어른은 물론 어린이까지 거의 외상을 받았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식기를 받치는 작은 규모의 상을 소반이라고 하는 것을 볼 때 외상은 소반을 의미한다.

필자는 어릴 적 어머니가 차려주신 외상을 여러 번 받은 기억이 있다. 그 때는 어머니가 나만을 생각하며 차려 주셨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필자가 받은 외상은 팔각형 반에 유유하게 흐르는 곡선미가 돋보이는 멋진 다리를 가진 것이었다. 설강(상을 올려놓기 위해 처마 밑에 나무막대를 두 줄로 만든 상 보관 장소) 위에 정갈하게 정리해 둔 소반들이 그립다.

기나긴 역사가 흘러 생활의 규모와 제도는 바뀌었지만 소반은 우리 일상생활에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에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고 전통미와 조형미를 간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남아있는 문헌이나 유물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이는 소반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6세기경의 고구려 각저총의 ‘현실 북벽 부부상’과 무용총의 ‘조실 묘주’의 그림에서 여자들이 소반에 음식을 담아 옮기는 모습은 우리 역사 속에서 소반 문화가 확고한 자리매김을 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전의 유물은 전해지는 것이 없다.

조선시대에 소반과 같이 이동하기 편리한 소형의 상이 사용된 것은 유교 이념인 남녀유별, 장유유서(長幼有序) 등의 사상적 영향으로 겸상보다는 주로 독상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 공간적으로도 부엌과 방이 멀고 규모가 작으면서 좌식생활을 하는 한식 온돌방에 적합했다. 조선시대 목공을 다루던 장인은 소반을 통해 작지만 큰 세계를 만들어냈다. 소반의 아름다움을 찾아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그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찾아보기로 하겠다.

온돌문화로 꽃피운 독특한 문화
소반은 그 집안의 가도(家道)나 지방의 특색에 따라 종류와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그중 지역의 특색이 두드러지는 것이 통영반(統營盤), 나주반(羅州盤), 해주반(海州盤), 충주반(忠州盤) 등이다.

소반의 종류는 재료와 장식, 형태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이 지워진다. 재료에 따라 자개반, 흑칠반, 주칠반, 행자반(은행나무로 만든 소반) 등으로 불리고, 형태에 따라서는 8각, 12각, 장방형, 4방형, 원형, 반월형(半月形), 연엽형(蓮葉形), 화형(花形) 등으로 나뉜다.


그리고 다리는 모양에 따라 구족반(狗足盤), 호족반(虎足盤), 죽절반(竹節盤), 단각반(單脚盤) 등으로 불린다. 상다리는 주로 4개의 다리와 2개의 판다리 형식이 많다. 특히 다리가 4개인 것은 개, 고양이, 용, 범의 형상으로 만들어, 그에 따라 상의 이름도 안개다리상, 괭이발상, 용발상, 범발상 등으로 불렀다.
이처럼 소반의 종류와 형태가 다양한 것은 우리 민족의 생활적 취미와 기호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소반의 높이, 그리고 판면의 길이와 너비는 온돌방에 앉아 식사하는 한국 사람의 풍습에 맞게 만들어졌다. 보통 민가에서 쓰이는 소반의 크기는 그 너비가 50㎝ 내외이다. 이 너비는 한 사람이 소반을 받쳐 들고 부엌에서 마당을 지나 대청을 오르고 그곳을 건너 안방이나 사랑방으로 옮겨가는 데 무리하게 힘을 쓰지 않도록 계산된 크기이다. 보통 성인의 어깨 넓이를 넘지 않게 하여 양팔에 부담을 덜 주도록 만든 소반은 생활 경험에서 우러난 우리 민족의 지혜의 산물이다. 높이도 25∼30㎝ 내외로서 몸을 심하게 구부리지 않고 팔을 움직이는 데도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다.


소반의 쓰임새에 따라서는 식반(食盤), 주안반(酒案盤), 공고상(公故床), 제상(祭床), 교자상(交子床), 대궐반(大闕盤) 돌상[百玩盤], 약반(藥盤), 춘반(春盤), 과반(果盤) 등이 있다. 판면의 재료로는 은행나무, 호두나무, 가래나무, 오동나무, 피나무, 느티나무 등이 많이 사용되었고, 다리는 소나무, 단풍나무, 버드나무 등을 주로 썼다.

마무리 작업인 표면의 칠은 생칠(生漆), 주칠(朱漆), 흑칠(黑漆)과 같이 일반 식물성 기름칠을 하여 소반이 트거나 흠이 생기는 것을 막고 방수가 되게 하였다. 붉은 빛이 도는 주칠은 혼례용과 궁중용으로 쓰였고, 검정색이 나는 흑칠은 주로 제사용에 사용되었다.

지역별 특색 반영한 독창성 지녀
소반은 우리나라 주거 양식인 온돌문화와 주거 공간에 가장 잘 맞는 살림살이 용구 중의 하나이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조상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였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생활 용품이다. 옛 소반들은 제각각 빼어난 균형미와 비례미를 갖추면서 한국 목공예의 아름다움은 물론 각 지역의 지리적 특색을 반영한 자재와 기교, 다채로운 장식 문양 등이 표출되어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소반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주거 공간이 평좌식의 생활로 변화하고 온돌방 구조로 정착되면서 앉아서 생활하는데 적합한 형태로 바뀌었다. 조선시대는 유교의 영향으로 사회 규범과 신분 질서가 엄격하여 가옥의 구조도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로 구분되었고, 그러다보니 일하는 공간이 넓어지고 운반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이러한 생활공간에서 손쉽게 운반할 수 있는 형태의 규모와 구조로 제작된 것이다.

경상도 지역의 통영반은 전 둘레를 꽃잎 모양으로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다리는 판 밑에 홈을 파서 물리고 다리 네 면을 돌아가면서 두 줄의 띠를 둘렀으며 판 밑 부분과 위 띠 사이에 초엽을 끼운 것이 특징이다. 초엽은 참대마디, 국화, 넝쿨, 구름 등의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통영소반은 바로 이 초엽조각장식으로 이름이 높다. 통영반은 튼튼하면서도 나주반에 비하여 제작이 편리하고 실용적이어서 그 구조가 널리 통용되어 최근까지도 통영반의 형태가 밥상의 정형이 되고 있다. 다리는 아래로 굴곡진 죽절을 하고, 다리 또한 죽절문양을 하였다.

전라도 지역의 나주반은 모를 죽인 네모난 소반이다. 조선조에 이르러서도 나주는 지형이 한양과 유사하다고 해서 소경이라 했고 토질이 비옥하고 호남 지방의 각종 문물이 모여드는 한반도 서남부의 문화 중심지였다. 게다가 서남해안의 조공품인 황칠이 나주를 통하여 공급되었으며, 조선왕조의 본관인 전주와 인접한 지역이어서 왕가 또는 집권 계층인 사대부 계층과 교류가 많았던 탓인지 목공품이 유명해졌다. 판면 아래에 좁은 띠와 중띠를 두르고 다리는 둥글고 곧게 뽑았다. 잡다한 장식이나 화려한 조각이 없으며 나뭇결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생칠을 썼다. 나주반은 꾸밈새는 없으나 견고하고 튼튼한 짜임과 투명하고 붉게 피어오른 부드러운 광택의 칠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잘 피어오른 생옻칠의 목기를 나주산이라 말할 정도이고 실제로 나주반이 널리 사랑을 받았다. 보편적인 형태의 나주반은 상판에 운각을 정사각형의 특이한 형태로 네 귀를 귀접이하고 끼워 넣었으며 그 위에 다리를 세웠다. 변죽을 접합하였으며 운각은 견고함을 위해 간결한 민문양을 달았다.

해주반은 투각무늬가 있는 판다리를 붙인 네모난 소반이다. 간단한 것은 다리밑 전을 삼각형, 사각형, 복숭아 모양으로 깎아내고 좀 복잡한 것은 아(亞), 수(壽), 복(福) 등 글자무늬를 도려냈으며 가장 복잡한 것은 연꽃, 매화, 국화 등 꽃무늬를 뚫어 새겼다. 상판은 장방형의 네 귀를 능형으로 굴려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게 하였고 판은 두꺼운 통나무 판을 파내어 제물 변죽을 만든 통판이다. 해주반의 특징은 양쪽의 판각과 운각이 모두 투조의 조각판이라는 점인데 장식성이 강해서 기능적인 구조는 약해진 것이 흠이다.

공예 본질의 아름다움 지니고 있어
좋은 공예작품일수록 그 아름다움의 본성이 건강하고 정직하다. 공예가 건강하다는 것을 구조가 착실하고 그 용도에 따라 주어진 기능이 쓸모 있다는 뜻일 것이다. 목공예 작품의 진수를 보여주는 소반은 색채에 허식과 잔재주가 없으며 따라서 아첨할 줄 모르는 공예 본질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서민의 일상생활에 쓰인 소반은 바로 건강과 정직의 아름다움이 멋지게 발로된 경우이다. 의식적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든 무의식적인 손맛이었던 간에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생활 속에서 숙련되어온 한국미의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시대 목공예나 죽공예와 같은 공예품들은 19세기말부터 불어 닥친 개화의 물결 속에 무분별하게 소외당하면서 이제 얼마 남지 않게 되어 이젠 그 명맥에 대한 장래가 걱정된다. 그 중 소반은 일상생활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실정까지 이르게 되었다. 키 높은 식탁과 간이 ‘호마이카상’에 밀려 어쩌면 장식용 정도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한낱 조선시대 반상에 불과했던 소반이 오늘날 국내외에서 매우 넓은 폭으로 애호가가 번져나가고 있는 것은 전통의 존엄함을 고수하면서 근대 감각에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 단순미와 소박미 그리고 대담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소반은 각 지방마다의 풍토색이 농후하게 깃들여 있으면서도 재료 자체를 매우 분별해서 만들었다. 그리고 용도와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분수에 맞게 설계된 것도 특징이다. 말하자면 세계 어떤 민족의 성정과는 다른 한국인만의 성정이 담긴 작지만 넓은 마음을 표현한 본성의 아름다움을 나타낸 것이다. 소반의 빛깔은 어둡지만 탁하지 않고,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 빛깔에는 몇 달에 거쳐 정성스럽게 만든 장인의 숨결이 녹아 있을 뿐 아니라, 지혜로운 선조들의 일상이 담겨있어, 오늘날까지도 소중한 우리 생활문화의 한 부분으로 인정되고 있다. 소반은 우리의 문화가 좌식에서 입식으로, 소반문화에서 식탁문화로 변화되면서 점차 멀어져 갔다. 그러나 부드럽고 평화로운 민족의 정서를 머금고 수세기를 함께 지내온 그 정신만큼은 온전히 지켜야 할 것이다.

중요무형문화제 제99호 소반장 이인세 옹은 소반장의 진정한 솜씨는 좋은 목재를 고르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였다. 이인세 옹에 의하면 “사실 한국의 소반은 일본인들이 더 좋아한다. 일제강점기 소반의 미를 깨닫고 그것의 종류와 쓰임새를 그림으로 그려가며 자세하게 설명해놓은 책 <조선의 선>을 낸 것도 일본인이었으며, 지금에 와서도 그 가파른 언덕을 용하게도 찾아와 물건의 가치를 찾아주는 이들도 일본인들이 많다”고 하였다. 한국의 소반은 동양문화권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 진정한 우리 것을 지켜가는 일은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오늘의 현실을 앞질러 전진해야 할 현대 한국 공예의 중흥을 위해서는 한국 공예미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성실한 한국 공예기술의 현대적 해석을 면밀히 해야 한다. <끝>


연재를 마치며…
오래 전 저는 우현 고유섭 선생과 혜곡 최순우 선생의 옥고를 통해 한국미에 대한 열정과 한국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습니다. 두 분의 영향으로 한국미의 본질과 독창적인 한국미감을 찾으려고 노력한 지도 어언 2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저는 미술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아름답고 중요한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분에 넘치지만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일생의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하지만 정작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며,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정확히 대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저 태극문양이나 한복, 초가집 정도를 우리 것의 대표적인 아름다움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민족은 모두가 선천적으로 고유한 미의식과 미적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문양이나 조형물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지닌 독창적인 한국적 미감과 미의식을 아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민족의 선천적 미의식을 일깨워 주어 한국적 아름다움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저는 전국 방방곡곡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돌부리 하나에도 한국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욕만 앞설 뿐, 아직도 곳곳에 숨어 있는 우리 것을 찾아내는 데 의지와 열정이 많이 부족하고,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아하, 그렇구나!’라며 감탄하고, 심금을 울릴 만한 글 솜씨도 갖추지 못해 항상 아쉽고 걱정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교육>을 통해 일 년 동안 ‘한국의 美’를 연재하면서, 작은 부분이나마 한국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게 되어 무척 고맙고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더 넓은 한국미의 세계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새교육> 독자들과 졸고를 더욱 빛나게 해준 <새교육> 편집팀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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