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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집의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동·식물 표본 2천 여점 기부해  국립수목원 감사장 받은 하상교 교사


인천 신광초 하상교(55) 교사는 동·식물학자들에게 ‘신기한 선생님’으로 통한다. 수업이 끝나면 산과 들로 나가 채집하고 밤에는 채집해온 식물과 곤충들을 표본 하는 것이 일상생활인 그는 학자들도 하기 어려운 ‘발견’을 종종 하기 때문이다.

그가 대청도에 근무하면서 4년간 채집한 표본에는 그동안 충청 이남지역에만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후박나무를 비롯해 실거리나무, 아기사철란, 대청부채, 생열귀나무 등 좀처럼 보기 어려운 식물들이 포함돼 있다. 또 열대지역에 주로 사는 살며 제주도에서조차 거의 발견하기 어려운 ‘남색남방공작나비’를 대청도에서 5마리나 채집하는 등 곤충분야에서도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이런 성과에 국내의 유명 곤충학자인 강원대 박규택 교수, 인천대 배양섭 교수도 직접 대청도에 찾아와 하 교사와 함께 채집을 하기도 했다.

“주로 울릉도에 많이 서식하고 있는 후박나무를 인천 앞바다 섬, 대청도에서 발견한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죠. 국립수목원에서도 한 마리 보유하지 못한 희귀종인 ‘남방남색공작나비’를 인천 대청도에서 처음 발견한 것도 큰 성과입니다. 1980년대에 인천 앞바다에서 발견한 이후 2004년 제가 발견한 것이 처음 보고되었습니다. 제주도에도 발견하기 힘든 나비가 서해 최북단 섬인 대청도에서 채집됐다는 사실에 대해 학계에서도 놀라워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동·식물의 보고 대청도
채집광인 하 교사가 일생일대의 채집 기회를 만난 것은 지난 2002년. 인천 앞바다 서해 5도의 하나인 대청도 대청초교에 발령을 받으면서다. “대청도는 알려지지 않은 동·식물의 보물섬이에요. 그렇지만 학자들은 상주하며 연구하기 힘든 곳이죠. 다른 사람들은 반기지 않는 섬 생활이지만 저는 천국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학교 주변에서 수집한 자료를 과학실에 비치해 놓고 교육용으로만 활용하다 체계적인 조사를 위해 섬 전역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자연환경 보존 상태가 좋은 대청도의 동·식물들이 그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좋은 친구들’이었다. 4년간 거의 육지에 나오지 않은 채 자료 수집에 열성을 보였다.

그는 대청도를 샅샅이 뒤져 식물 390여 점과 나비 28종 300여 점, 나방 370여 종 1200여 점, 딱정벌레 200여 점 등 무려 2000여 점을 채집, 표본 했고, 지난 1월 이를 국립수목원에 기증했다. 이들 중에는 곤충과 식물도감에 새로 등재하거나 서식지 지도를 뒤바꿔야 하는 등 학술적 가치가 높은 자료가 많다.

특히 그가 이들 동·식물을 채집한 자료들은 일반 학자나 전문가들이 채집하기 어려운 대청도에서 4년간 지속적으로 채집해 종류가 다양하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립수목원은 감사의 표시로 지난 3월 하 교사에게 감사장과 기념품을 인천 남부교육청을 통해 전달했다.

“소장하지 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의미 있는 동·식물 표본이어서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가지고 있는 국립수목원에 기증했습니다. 이 표본이 많은 학자들의 연구 활동에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손자와 손잡고 수목원에 기증한 표본을 보러 갈 생각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40년간 “채집은 나의 힘”

그가 ‘채집’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시절부터. 생물반에 가입해 체계적으로 채집·표본 하는 방법을 배웠고 고교, 대학을 거치면서도 그의 관심은 온통 ‘채집’에 머물렀다. 교사가 되고 나서는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채집을 했고, 학교를 옮길 때마다 표본을 전시하고, 기증했다.

그렇게 채집과 함께해 온 것이 벌써 40여 년.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나비를 채집하기 위해 나비가 좋아하는 꽃을 찾아 인적이 드문 산을 수없이 헤매기도 하고, 밤마다 하얀 벽면에 조명을 켜두고 나방을 기다렸다. 나방을 채집하다가 인분(鱗粉)이 눈에 들어가 고생을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채집을 나가지 않는 날에는 도감(圖鑑)을 연구하고, 채집 중에 모르는 종을 발견했을 때는 관련 전문가들을 찾아가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채집에 열정을 바치게 했을까. 하 교사는 채집의 가장 큰 매력으로 ‘발견의 기쁨’을 꼽는다. “채집을 갔다가 처음 만나는 종을 접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희열을 느껴요. ‘내가 해냈구나!’하는 무한한 자신감이 샘솟죠. 그것이 지치지 않고 열정을 가질 수 있었던 매력입니다.”

‘서해 5도’ 동·식물 채집이 꿈
하 교사의 꿈은 앞으로 서해 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에 모두 근무하면서 그곳의 동·식물을 체계적으로 조사 하는 것. 최근 교감 연수를 마치고 근무 학교를 서해 5도 지역으로 신청해 놓았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학자들도 지속적으로 연구하지 못하는 섬을 제 힘으로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싶습니다. 서해 5도의 곤충과 식물 자료를 모아 수목원에 ‘서해 5도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체험캠프 ‘섬에서의 한 달’ 기획하고 싶어
하 교사는 이번 학기에 국립수목원으로부터 희귀 들꽃종을 분양받아 신광초에 ‘들꽃 단지’를 만들 생각이다. 대청도를 떠나 도시학교에 근무하면서 자연을 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을 본 지 오래되었죠. 자연이 곧 놀이터이자, 삶의 배움터인데 도시의 아이들은 학교, 학원밖에 몰라요. 자연과 ‘함께’해야 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체험’만 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학교장이 된다면 한 반 정도의 아이들이 섬에서 지낼 수 있는 캠프를 마련하고 싶어요.”

그는 채집으로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한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인생을 살면서 무언가 꼭 보람된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제 교육철학인데 채집이 제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보람이고, 또 앞으로 해야 할 남겨진 과제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채집 활동은 계속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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