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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스스로 키워나가는 준법정신

 우리나라는 눈부신 발전을 통해 세계에서도 내로라할 정도의 무역강국이 됐지만 아직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이유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이 바로 민주시민의식이다. 민주시민의식 부족은 단순한 교양이나 문화수준의 문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각종 분규와 법적 분쟁을 일으켜 막대한 사회적 지출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에 교육계는 물론 사회 각계에서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따라 법무부는 민주시민의식의 근간이 되는 준법정신 함양을 위해 여러 법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는데 그 중 학생자치법정은 큰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도 학교의 선도프로그램과 연계해 법치교육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청소년 선도와 사회성발달에 큰 효과
 학생자치법정은 1983년 미국 오데사 시에서 도입된 후 주목받기 시작한 제도로, 이미 미국에서는 청소년 선도와 사회성발달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6년 경기 의정부 광동고와 충북 제천고 등 5개교에 처음 도입되었으며, 올해부터 35개교로 확대 운영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4년째 학생자치법정을 운영하고 있는 의정부 광동고의 실제 운영사례를 통해 운영방법과 효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주입이 아닌 스스로의 이성을 통해 도덕심 함양

 의정부 광동고등학교(교장 이학송)는 학생자치법정이 국내에 처음 도입된 2006년부터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해오고 있다. 처음 도입당시에는 교사들조차 재판절차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고 학생들도 ‘법정’이라는 명칭에 조금 위축되었다고 한다. 법관도 교사가 맡아 완전한 학생자치법정으로 운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전부터 상벌점제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자치법정과 연계가 용이했고, 교사 대상 연수프로그램과 도입을 처음 건의한 윤성관 교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이학송 교장은 “유치원에서 배우는 도덕은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너지기 쉽다”며 “어느 정도 성장한 고교 때 스스로 이성으로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운영취지를 설명했다.
 학생자치법정은 동아리 형태로 운영되며, 매년 15명을 선발하는데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좋아 지원자가 많다. 학생자치법정의 피고는 벌점 5~9점 정도의 경벌점자가 대상이 되며, 수위가 높은 잘못을 한 학생은 학교선도위원회에서 징계를 결정한다. 재판은 입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인문계 고등학교이기 때문에 모든 경벌점자를 대상으로 하지는 못하고 학생자치법정의 판사와 부판사가 선정한 건에 대해 해당 학생의 동의를 얻어 실시한다. 학생들이 직접 재판을 해서 벌칙을 주면 학생들 간에 갈등이 생기거나 학부모가 불만을 제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오히려 공개적으로 소명할 기회도 생기고, 재판을 거치지 않은 학생에 대한 징계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벌칙을 내리기 때문에 불만이 없다고 한다. 학부모들도 처음엔 약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지만 이내 운영취지를 이해해, 이의를 제기한 경우는 없다.
 학생자치법정 도입 전부터 체벌을 지양해왔고 학교에 큰 사고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학교 사례처럼 체벌이나 사건 • 사고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흡연학생은 눈에 띄게 줄었다. 비록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이나 가끔 실황중계 되는 재판과정을 보면서 다른 학생들의 태도에도 변화의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재판은 흔히 생각하는 일반적인 재판과 ‘5분 발언’의 두 종류로 진행된다. ‘5분 발언’은 즉심판결과 같은 것인데 어감이 좀 좋지 않아 ‘5분 발언’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올해부터 학생자치법정을 담당하고 있는 위효승 교사는 “첫 임용 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학생자치법정을 맡게 되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학생들이 스스로 너무 잘하고 체계도 잘 잡혀 있어 큰 어려움이 없다”며, “모든 일은 학생들이 알아서 하고 교사는 회의록 검토 등 행정 위주의 지원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올해 3학년이 되어 후배들에 대한 조언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 이준경 학생은 “그동안 학생자치법정에서 변호사와 검사를 담당하며 색다른 경험을 했다. 재미는 물론 법을 좀 더 친숙하게 느끼고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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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변호사의 탄탄한 논리에 교장도 고개를 끄덕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떠들어서 감독 선생님께 받은 벌점은 인정하지만, 지적받았다는 이유로 담임 선생님께서 추가 벌점을 준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벌점 1점을 받아야 할 한 가지 행동으로 벌점 2점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변호사의 변론에 방청석 한쪽에 조용히 앉아있던 이 교장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모의재판이 아닌 실제 사안을 갖고 하는 재판이기 때문에, 피의자석에 앉아 있는 학생은 당연히 억울하다는 표정이고 변호사와 검사의 얼굴에는 당당함과 당혹스러움이 교차한다.
 벌점 초과자 2명과 5분 발언 대상자 3명을 대상으로 열린 이날 재판은 주심판사의 개정선포를 시작으로 실제 법정에서 하는 재판과 같은 절차로 진행됐다. 물론 학생자치법정이기 때문에 주 • 부심과 검사, 변호사, 피의자, 배심원까지 모두 학생이 맡는다. 이 교장과 담당교사도 법정에 들어와 있지만 방청석 한쪽에 앉아 지켜볼 뿐 재판에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학생자치법정에서는 교장도 한 명의 방청객일 뿐이다.
 
국민참여재판과 유사한 절차로 진행
 재판의 진행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대상자선정회의에서 재판 대상자를 선정해 해당 벌점초과자의 기록을 각 담당 변호사와 검사에게 벌점의 사유 등이 적혀있는 기록을 통보하고, 기록을 받은 변호사와 검사는 2~4주가량 사건을 조사한다. 배심원은 재판 1~2주 전 선착순으로(학교규칙을 자주 어기는 학생 제외) 8~9명이 선발되며, 재판이 열릴 때까지 배심원 관련 교육을 받고 배심원장을 선출한다.
 개정 후 검사와 변호사의 증인 심문을 거처 벌점초과자들의 최종진술까지 재판이 진행되면, 판사가 휴정을 선언한다. 이때 배심원단은 배심원실로 이동해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회의를 진행한다. 배심원회의를 통해 작성된 배심원 합의문은 배심원장이 낭독한 뒤 재판부에 전달되며, 재판부는 이 의견을 합당하다고 판단하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처벌을 수정해 판결한다. 판결이 내려지면 벌점초과자는 정해진 기간 내에 처벌을 수행한 뒤 담당교사에게 확인을 받고 재판부에 확인서를 제출하면 모든 과정이 종료된다. 물론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절차는 얼마 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과 흡사하다.
 우리나라에 학생자치법정이 도입된 지 3년밖에 되지 않아 그 성과를 단정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오랜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님에도, 실제 법정 못지않은 진지함과 탄탄한 논리로 스스로의 공과를 논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학생자치법정이 큰 교육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한다. 학생선도와 교육의 양 측면에서 효과를 인정받으며 점차 확산되고 있는 학생자치법정이 우리 공교육에 어떤 활력을 불어넣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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