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인간은 착한 천성을 갖고 태어난다고 믿고 있다. 부연 설명하자면 인간의 내면엔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함께 자리 잡고 있어 늘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적인 평온한 상황에서는 대체로 선한 마음이 지배하겠지만, 원치 않는 고난을 당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시련과 사건에 휘말릴 때 인간은 평상심을 잃게 된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꺼내 든 날 선 마음이 어느새 무기가 되어 상대방을 해치고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와 스스로를 비극의 수렁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집, 인간의 희로애락이 담긴 곳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필자가 살았던 고향 동네엔 낮은 언덕 하나를 경계로 재래식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요즘의 고급 아파트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4층짜리 아파트였지만, 대도시임에도 아파트 단지가 흔치 않았던 당시로써는 넓은 앞마당과 놀이터가 있던 그 아파트는 주변의 초등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시절만 해도 아파트가 지금처럼 부의 척도나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인식되진 않던 때라, 아랫동네 아이들이 윗동네 친구 따라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창피하지 않았더랬다. 그러다 드디어 그 아파트에 이사 가던 날, 열두 살짜리 아이는 뛸 듯이 기뻤다. 그저 싱크대와 베란다가 있는 집이 좋았고 아파트에 살던 친구들과 옥상에서 밤늦게까지 놀 수 있게 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내 생애 최초의 아파트는 유년의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부동산 붐을 타고 우후죽순 솟아오른 도심의 고층아파트는, 그곳 원주민들의 애환과 눈물 위에 세워졌기에 그 태생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윤종찬 감독의 장편 데뷔작 <소름> 속의 또 다른 주인공인 ‘미금아파트’도 어두운 사연을 담고 있다. 재개발을 앞두고 철거 직전에 놓인, 주민들이 떠나간 낡은 아파트엔 지저분한 낙서로 얼룩진 벽과 쓰레기로 뒤덮인 복도, 삐걱거리는 문이 스산함을 더한다.

그 흉물스러운 폐허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남겨진 사람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가난한 인생들이다. 미금아파트 504호에 새로 이사 온 택시운전사 용현(김명민), 고아라는 이유로 조롱과 무시를 받으며 자란 그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가슴 깊이 맺혀 있다. 용현이 우연히 도움을 주면서 가까워진 510호 여자 선영(장진영)은, 아이를 잃어버리고 남편에게 매 맞는 것이 일상으로 늘 반쯤 정신이 나간 듯 불안정해 보인다.
용현의 옆집 남자 이 작가(기주봉)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소설가로 대박을 꿈꾸지만 출판사로부터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 선영과 언니 동생하며 지내는 은수(조안)는 504호에 살던 남자 친구 광태가 의문의 화재로 죽은 후 그의 환영에 시달리며 괴로워한다. 하나같이 어깨를 짓누르는 인생의 무게에 허덕이며 남루한 현실을 맴돌지만 용현은 그마저도 자각하지 못하는 듯 매사에 무심하고 권태로운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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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욕망이 빚어내는 공포하지만 자신의 집에서 사람이 죽어나갔다는 말에도 동요하지 않고 건들건들 인생을 사는 듯 보였던 용현의 삶은, 선영이 남편의 시체를 아파트 뒷산에 매장하는 걸 도와주면서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또한 30년 전 504호에 살던 한 부부의 이야기(바람난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른 후 버리고 간 갓난아이가 겨우 목숨을 건졌다는)를 듣게 된 후 그의 정신적 공황 상태는 점점 심해진다. 집주인이 운영하는 이발소에서 504호 부부의 사진을 본 용현은, 자신의 몸에 있는 화상 흉터를 들여다보며 왠지 모를 불안과 슬픔을 느낀다.
두 시간 남짓한 영화 속에서 대부분 어둠에 파묻힌 채로 등장하는 미금아파트. 외관도 내부도 흉흉한 이곳은 그 자체로 원인 모를 두려움과 공포를 배가시키는 공간이다. 양끝이 개방된 낮은 복도 위 어슴푸레한 달빛아래 스르르 움직이는 그림자,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깜빡거리는 백열등은 인물들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대변하며 뒷덜미를 서늘하게 만든다.
<소름>은 등장인물들의 사건과 사연 속에 숨겨진 진실을 설명하는 데 불친절하다. 따라서 어떤 이에겐 다소 난해한 영화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물들의 마음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감독이 조각낸 단편들을 꿰맞추어 추측해야 하는 수고가 따르지만) 그들에게 내재된 공포와 슬픔을 읽어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주인공들의 말 못할 비밀과 사연이 드러나는 순간,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용현과 선영이 부지불식간에 저지르는 또 다른 죄가 그들을 막다른 길로 내몰 때, 그들의 광기어린 눈은 슬프고 또 막막하다.
낡은 아파트를 부유하던 불순한 공기에 오염된 듯 미금아파트에 사는 이들의 불행은 서로에게 전염된다. 이웃의 불우한 사연을 소설의 소재로 이용하고 광태의 아이디어를 도용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한 이 작가의 독백처럼, 미금아파트의 비극은 30년 전 억울하게 죽은 504호 여자의 원한서린 저주로 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비에게서 버림받은 아이, 아이를 잃은 어미가 저지르는 그 비극의 악순환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욕망과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영화의 제목처럼 ‘소름’끼친다.
영화 <소름>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미스터리(공포)물로 장르의 전형성을 벗어나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매순간 시청각적으로 전달되는 음산한 이미지들은 이야기의 비극성과 맞물려 강렬한 힘을 발휘한다. 특히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음향과 심장을 옥죄는 음울한 사운드는 낭자한 선혈도 귀신도 없는 이 영화에 낯선 공포감을 조성한다. 오래된 아파트의 먼지처럼 켜켜이 쌓아 올려진 긴장감이 폭발할 때까지 영화는 때론 격렬하게 때론 멈춰서면서 고유의 리듬을 잃지 않는다.
부조리한 인생을 응시하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절망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물들을 지켜보기가 고통스러웠다. 그 이유는 아마 그들이 나와는 전혀 다른 별종의 인간이 아니라 내 이웃으로, 혹은 나의 지인으로 동네에서 한두 번씩 마주쳤던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마다 소박한 꿈과 목표를 지닌 채 하루하루 인생을 이어가던 이들은 어느 순간 그들을 찾아온 비극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만다. 누군가는 자신의 몫보다 좀 더 가지려는 욕심으로 인해서, 누군가는 버림받은 유년의 기억과 상처를 감당하지 못해서,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을 옭아매는 삶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해서.
그들이 살아보겠다고 항변하는 몸부림이 너무 절절해서, 또 그들을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한 사연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그 누구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 상황에 처한다면 나라고 다를 수 있을까 싶어서 더없이 착잡했다. 마음속에 묵직한 돌 하나를 얹고 영화 속의 인물들을 떠나보냈지만,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미금아파트를 빠져나와 뒤를 돌아보던 용현의 그 얼굴,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슬픔으로 가득 찬, 그 뒷모습을 한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시종일관 검푸른 어둠 속에 묻혀 있던 미금아파트처럼 햇살 한 줌 끼어들 틈을 허락지 않는 이 영화는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어둡고 추한 면을 애써 부정하고 사는 인생은 반쪽자리밖에 될 수 없고,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고 사는 것 또한 온전한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수천 년의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문학과 예술사 속에서 우리가 수많은 비극을 접하는 것은, 그를 통해 양면적인 인생과 인간의 속성을 깨닫고 타인을 향해 연민의 마음을 품게 되는 성숙한 삶을 살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인간 내면의 본질을 성찰하는 <소름>과 같은 영화는 잊히기엔 너무 아까운 작품이다. 용현이 그의 과거를 땅속에 묻고 떠날지라도 내면 깊은 곳의 죄책감과 분노는 영원히 묻힐 수 없는 것처럼, 이 세상엔 결코 잊혀서는 안 될 것들과 더없이 외로운 영혼들이 늘 존재하기에. 부조리한 인생의 심연을 응시하는 감독의 시선은 풍요 속 빈곤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감독 : 윤종찬
배우 : 김명민, 장진영
관람정보 : 18세 관람가, 11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