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열린 학교 조성사업’이 시작된 이후 학교 방범에 대한 우려는 계속돼 왔다. 그러나 정작 학교 내 안전문제는 주로 학생 간 폭력이나 안전사고 예방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왔고, 경각심도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연이어 발생하던 학생 대상 강력 범죄가 학교 안까지 옮아오면서, 이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요구는 정책 담당자뿐 아니라 일선 학교현장을 직접 향하는 경우도 많아, 학교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학교를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
학교 안전관리 총체적 부실
이런 시점에서 지난 6월 29일 한국셉테드학회가 주관한 세미나에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미랑 박사팀이 발표한 ‘학교 안전을 위한 학교 CPTED 원칙의 적용 방안’이라는 연구는 눈길을 끈다.
셉테드(CPTED)는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의 약자로 ‘범죄예방을 위한 환경설계’를 뜻하며, 특히 외부인의 통제에 초점을 둔 이론이다. 주요원칙으로는 접근통제, 자연감시, 영역성의 세 가지가 있다. 여기서 접근통제는 출입구, 울타리 조명 등 시설물의 배치나 방범설비 등 기계적 장치를 통해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것을 말하고, 자연감시는 공간을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개념이다. 영역성은 차별화된 공간으로 인식시킴으로써 특정 영역의 역할과 그에 대한 소속감 등을 사람에게 인식시키는 것을 일컫는다.
이 연구는 셉테드 관점에서 만든 15페이지 분량의 체크리스트를 기초로 서울시내에서 범죄 발생률이 높은 지역의 30개 학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학교의 안전 실태를 조목조목 분석했음은 물론, 이에 대한 개선 방향까지 제시한 이 연구를 토대로 우리 교육현장의 안전실태를 점검해 본다.
자연감시 위해 담장은 투시형으로
가장 먼저 살필 것이 바로 교문과 담장이다. 이는 학교 공원화 사업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부분으로 안과 밖의 경계가 아주 모호한 학교가 많다. 담장이 있는 학교 중 상당수는 벽돌로 쌓아 안과 밖이 보이지 않는 비투시형 담장을 유지하고 있는데, 군데군데 파손된 상태를 그대로 방치해 둔 경우도 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는 비투시형 담장이 자연감시 기능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감시 기능은 학교 내부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외부인에 의해서도 이뤄질 수 있는데, 비투시형 담장은 시야를 차단함으로써 사각지대를 늘린다. 둘째는 파손된 담장이 보는 이에게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줌으로써, 외부인은 물론 학생의 일탈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금속재질의 투시형 담장을 설치한 곳이 늘고 있는데 이는 내구력도 좋고 자연감시 기능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담장 주변에 담쟁이 넝쿨, 나무 등을 심어 자연감시 기능을 저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미관상으로는 좋을지 모르나 범죄 예방 측면에서 볼 때는 부정적이다.
등하교 시간 외에는 관리 가능한 교문만 개방
대부분 학교는 외부에서 운동장으로 통하는 2개 이상의 통로를 갖고 있는데, 이들 통로에 대한 관리가 상당히 부실한 상태다. 등하교 시간과는 상관없이 모든 문을 개방해두고 감시하는 인력도 없어 통제는커녕 누가 드나드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 곳이 태반이다. 경비실이 설치된 학교조차도 방문자의 신분이나 방문목적을 확인하는 경우가 드물다.
교문은 등하교 외 시간에는 관리 가능한 곳만 개방하고 바로 그 옆에 출입을 통제하는 인력을 배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인력 부족 등 현실적인 여건이 여의치 않다면, 교직원이 머무는 행정실이나 교무실 등에서 잘 보이는 교문만 개방해 감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주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돼 있는 쪽문은 반드시 잠가둬야 한다.
멀리서도 학교를 구분할 수 있도록 야간 조명을 학교 주변에 설치하는 것도 영역성을 표시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교내 바닥에 문양이 들어간 패턴을 주는 것도 학교의 영역성을 강화하며, 이동경로를 유도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묻지마식 운동장 개방은 금물
현재 학교 운동장은 많은 지역주민이 이용하는 체육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상황은 학생과 학교 직원들로 하여금 ‘모르는 사람’에 대한 무관심을 증가시킬 수 있다. 이미 출입이 허용된 지역주민의 행동에 대한 규제는 무척 어렵고, 방과후나 주말 등 교직원이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문제가 된다. 실제로 박 박사팀이 조사를 위해 방문한 한 학교에서는 벌건 대낮에 외부인이 학교 벤치에서 술을 마시고, 노숙자가 잠을 자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학교 운동장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공원화된 학교의 경우는 공원 내 금지행위 및 이용규칙, 그리고 안전관리 정책 매뉴얼까지 패키지화해 운영하는 것을 기본으로, 주민과 학생의 이동시간, 이동경로를 분리해 구분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교무실, 행정실 등 교직원이 머무는 공간을 운동장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배치하고, 외부방문자가 이를 식별할 수 있도록 디자인, 색깔, 조경의 변화를 주면 자연감시 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 내부 구조 또한 외부를 내다볼 수 있는 구조로 배치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교장실처럼 안쪽을 바라보는 응접실 형태로 돼 있으면, 위치가 좋더라도 별 소용이 없다.
현재 학교 건물은 외관상 교실과 교무실, 행정실의 구분이 어렵고, 교장실과 교무실에 들어가면 밖을 관찰할 수 있는 창문에 커튼이 쳐 있거나 불투명 시트로 가려져 있다. 이는 교실 또한 마찬가지다. 또한 조경을 위해 심어놓은 커다란 나무에 가려 운동장이나 통행로에 대한 시야 확보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여름철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등나무벤치는 낮 시간에도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기 때문에 빛이 통하도록 하거나 조명을 설치해야 한다.
건물관리도 곳곳이 허점
학교 건물 진입로 역시 수업이 시작되면 한 곳만 개방하고 행정실이나 교무실에서 출입을 통제해야 한다. 여러 출입구를 모두 개방해 놓을 경우 외부인을 통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ㄷ’자나 ‘ㅁ’자로 지어진 학교 건물은 더욱 어렵다. 한 곳에 현관이 나란히 배치된 경우라도 한 쪽은 폐쇄하고 다른 한 쪽만 이용하도록 해야 관리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이때 안에서만 열 수 있는 문을 설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부를 향하는 창문 역시 복도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투명해야 한다. 화장실처럼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공간이라 할지라도, 직접 관련이 없는 세면장 쪽으로 창을 내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좋다. 교실 관리도 중요한데, 최근 늘어난 교과교실 등 특별실이나 학생 수 감소로 빈 교실 등에 대한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비어 있는 교실의 문을 잠그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용하지 않을 때는 반드시 문을 잠가두어야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체육활동 등을 위해 일시적으로 교실을 비우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외부에서 안이 잘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 학교현실상 빈 교실은 위험한 범죄장소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교실에 인터폰을 설치해 비상시 교무실로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 학교가 교무실에서 교실로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은 있는 반면, 교실에서 교무실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마련해두지 않은 상태다. 어두운 계단 밑이나 소화전 등 안전시설에 대한 조치도 필요하다. 계단 밑의 공간은 넓지 않지만 매우 어두워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막아서 창고 등으로 활용하고, 소화전이나 전기함 등은 잘 잠가서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옥상은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는데, 일부 학교에서는 그냥 문을 개방한 상태로 방치돼 있어 조치가 필요하다. 건물 주변의 청결관리도 중요하다. 담장 관리에서 언급한 것처럼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줌으로써 일탈 충동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CCTV는 범죄예방 효과 없어
요즘 범죄예방 책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CCTV다. 교육과학기술부 조사에 의하면 전국 학교의 CCTV 설치율은 58.9% 수준. 그러나 박 박사의 말에 따르면 CCTV를 설치하는 것은 범죄학적으로 봤을 때 예방효과가 없다고 한다. 다만, 정확한 목적을 갖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한다면 어느 정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CCTV 활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CCTV는 주로 학교 정문이나 주차장 등에 설치돼 있는데, 학교마다 관리 장소가 다르고 모니터링도 하지 않아 예방 목적보다는 사고 발생 시 수사용도로만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조명이 확보되지 않아 야간에는 전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CCTV를 주차장에 설치해 놓은 것도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지목됐다. 주로 지상에 마련된 학교 주차장은 우범지대가 아니기 때문에 안전과는 별로 상관이 없고, 만약 도난 · 파손 방지 목적이라면 CCTV를 설치하기 보다는 교직원 주차장과 외부인 주차장을 구분해 놓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교실에서 일어나는 도난 문제 때문에 복도에 CCTV를 설치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방차원에서는 교실 창문 등을 통한 자연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벽면에 거울을 설치해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낫다.
계단이나 복도의 꺾이는 부분에 거울을 설치하면 충돌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엘리베이터에서는 등 뒤를 볼 수 있어 폐쇄된 공간이 주는 불안감을 덜 수 있다. 우리나라 학교의 복도는 꺾이는 부분이 90°로 되어 있는데, 이를 앞페이지에 제시된 그림처럼 고치고 거울을 설치하면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볼록거울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안전의 중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바꿔야
조사 과정에서 우리나라 교육현장의 안전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음을 실감했다는 박 박사는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수업 중 외부 간섭을 차단하는 것이나 사적 부분의 보호, 쾌적한 수업환경, 학교의 미관 등도 중요하겠지만,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권리입니다. 이는 학생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근무하는 교직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학교 내 범죄 피해자 중 교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10%가 넘는다. 그럼에도 정작 교사들의 업무 공간이라는 점은 간과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현 상황과 정서에 맞는 범위 안에서만 방안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변화 없이는 해결이 쉽지 않다.
그는 출입통제를 예로들며 “학교 규칙을 잘 설명하고 협조를 요구한다면 대다수 방문자들은 이를 수긍하고 협조할 것입니다. 일부가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안전을 포기해서는 곤란합니다. 협조를 거부하는 사람일수록 교내에 함부로 들어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욱 통제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회자되면서 범죄, 특히 강력 범죄는 정신이상자의 치밀한 계획에 운 없이 말려들어 당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실 범죄는 범행이 용이한 환경이 조성됐을 때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학교는 물론 주변 환경을 원칙에 따라 잘 정돈한다면 많은 범죄를 얼마든지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끝으로 박미랑 박사는 “학교에서 교육이 강조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교육만 강조한 나머지 안전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하다며, 학생, 교사를 떠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안전할 권리’를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 강중민 jmkang@kf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