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시교육청 고위간부의 인사 비리가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복마전이라는 부끄러운 이름과 함께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오비이락인진 몰라도 이후로 국내 유수 기업인과 정치인들의 로비 사건과 관련해 각종 부정행위가 보도되면서 우리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그 와중에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제기하면서 그것이 세간의 화두가 되었던 일이 있다. 공정사회란 무엇인가. 사전에는 공정과 정의를 동의어로 풀이하고 있었다. 정의는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라 하고 이는 플라톤의 철학에서 지혜, 용기, 절제의 완전한 조화를 이르는 말이라고 부연했다.
불현듯 서슬이 시퍼렇던 제6공화국 때 정치 이슈로 등장했던 ‘정의구현 사회’와 ‘삼청(三淸)교육’을 연상하게 된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정부에서 국책으로 사회구조를 개조해보려고 했던 것인데 그것마저도 성공하지 못했던 것을 돌이켜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정의는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제우스의 판도라 상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간은 어째서 판도라의 상자를 짊어지고 수없이 모순에 당착해 비틀거리면서도 정의를 연모하고 있는 걸까. 교육계의 비리도 몇몇 사람들의 법적 심판으로 끝이 나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과 함께 수면 아래로 침잠하고 말았다.
정의의 여신상 앞에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으로 가면 대한변호사협회 회관이 있다. 이 회관 정문에 ‘법의 여신상’이 우뚝 서 있는데, 오른손에는 천칭저울을 등불처럼 높이 쳐들고 있고, 왼손에는 큰 칼을 지팡이처럼 집고 있으며, 눈은 지그시 감고, 머리에는 관을 쓴 모습이다. 미국 맨해튼에 횃불과 성경을 들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과는 대조적이다. 법률관계 기관의 정문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조각이지만 그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작품의 의미를 새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찍부터, 조각의 여신에서 저울은 법을 집행함에 있어서 편견이 배제된 평등을, 칼은 국가로부터 나온 법의 엄격한 집행을, 감은 눈은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는 공평함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법의 여신’ 말고 ‘정의의 여신상’도 있다. 법의 여신이 여기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싶다. 문헌에 따르면, 정의의 여신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의 마아트(Maat)인데, 그는 정의뿐 아니라 진리, 질서를 상징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 정의의 개념에 가장 가까운 여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디케’(Dike)이다. 디케라는 말은 법(法)과 정의(正義)의 합성어이고 이것이 로마시대로 오면서 정의의 여신 ‘디케’에다가 형평성의 개념이 추가되어 유스티치아(Justitia)라는 말이 탄생했으며, ‘정의(Justice)’란 단어도 여기서 파생된 것으로 본다. 서구에서는 법과 정의의 연관성을 바탕으로 인격화시킨 ‘정의의 여신상’을 법의 상징물로 여겨 각 도시의 시청, 법원, 광장 등에 세웠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법률관계 기관의 정문에는 이 조각이 서 있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공정이나 정의는 모두 법과 관계된 개념이다. 그러니까 법대로 하면 된다는 뜻이고 불공정이라면 법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의 구현보다는 청렴 교육을 우리들 곁에 판도라의 상자가 있는 한 정의 구현은 어렵지 싶다. 그나마 우리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청렴교육이라 할 수 있다. 교육계 비리가 급물살을 타면서 학교에서는 청렴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던 모양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청렴에 대한 글짓기를 해오라는 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하고 묻는 글이 의외로 많았다. 누군가 나한테도 갑자기 그 뜻을 묻는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옳을까 하는 걱정이 엄습한다. ‘청렴’은 추상명사이기 때문에 그 개념을 누구나 선명하게 떠올리지 못한다. 관념적인 명제 앞에서 우리가 그것을 구상화하는 데는 남다른 고등사고가 필요하다. 그 단어가 난해하다기보다 그것에 적합한 설명이나 부연하는 과정이 난감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청렴,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청렴을 한자로는 ‘맑을 청(淸)+검소할 렴(廉)’으로 쓴다. 표의문자(表意文字)이니까 이것을 파자(跛者)로 풀이해보면 청(淸)자는 ‘수( )+청(靑)’이니까 ‘물이 푸르도록 맑다’는 뜻이고 렴(廉)자는 ‘엄()+염(兼)’의 합성이니 선비가 공직에서는 물론 집안의 사생활에서까지 깨끗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겸손(謙遜), 겸양(謙讓), 겸허(謙虛) 등이 파생된다. 국어사전에는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음’이라 했고 영어로는 ① A man of integrity ② An upright man 했다. 전자는 진실성을 말하고 후자는 정의를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 살펴보아도 그 개념이 극명하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 개념인 탐욕(貪慾), 오만(傲慢), 불손(不遜)을 가져오니까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청렴 앞에서 자유로운 자 그렇다면, 청렴 앞에서 과연 누가 자유로운가를 자문(自問)하게 된다. 누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까. 공자, 예수, 부처를 빼고 누가 청렴이라는 잣대 위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이 땅에 살고 있는 성직자? 정치가? 법률가? 학자? 그들이 자유로울 수 없다면 교사도 어쩔 수 없지 싶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경쟁사회에서 숨 쉬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것은 너무도 초인적인 행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경>에 보면 유대인들이 창녀를 잡아다 놓고 손가락질을 하며 죽이라고 소리치고 있을 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나와 돌을 던지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시절에도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기록을 더듬게 된다. 정말, 청렴 앞에서 누가 먼저 청렴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새삼스레 내 낯이 붉어지는 연유는 무얼까.
청렴, 그 형이하학 필자가 교육계의 비리를 보면서 혼자서 개탄하고 있는 사이에 청렴에 관한 활동을 하는 기관이 의외로 많다는 점에 새삼 놀랐다. ‘청렴한 세상’을 비롯해 ‘국민권익위원회’, ‘청소년 청렴 교육’, ‘대한민국 크린 웨이브’, ‘클린시티감시단’, ‘한국전력공사협력회사 청렴 포털’,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청렴관리시스템’ 등 열 손가락으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낯선 기관들이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저들은 이미 청렴에 관해 엄청난 과업을 진행하고 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야 청렴이 무엇인가를 상고(上考)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그런 큰일은 저명한 기관에서 하고 나는 청렴 이하의 차원에서 요즘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는 수뢰(受賂)에 관해 아주 소시안적인 고찰을 피력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형법」에 보면 수뢰, 사전수뢰, 제삼자뇌물제공, 알선 수뢰, 뇌물공여 등 많은 조항의 처벌 규정이 나온다. 그중에서 제129조(수뢰, 사전수뢰)를 보면 ①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해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할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②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될 자가 그 담당할 직무에 관해 청탁을 받고 뇌물을 수수(收受), 요구 또는 약속한 후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참고로 제133조(뇌물공여)를 보면 뇌물을 약속, 공여 또는 공여의 의사를 표시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전항의 행위에 공할 목적으로 제 삼자에게 금품을 교부하거나 그 정을 알면서 교부를 받은 자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있다. 처벌 내용을 읽다 보면 섬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는 금단(禁斷)의 선을 넘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음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잠시 이 문제를 관조해 보기 위해서 문화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문화권은 크게 정문화권(情文化圈)과 의문화권(意文化圈)으로 나눈다. 전자는 감성(Pathos) 중심의 문화권이고 후자는 이성(Logos) 중심의 문화권이라고 한다. 감성 중심의 문화권은 판단이나 행위를 감정적으로 하고 그 때문에 공공의식보다는 공동의식이 크다고 할까. 여기에 감정적인 판단이 앞서기 때문에 근린(近隣)의 정(情)을 중심으로 하는 도당(徒黨)형성 현상이 많다. 이와 같은 집단 심리적 특성을 바탕으로 혈연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연과 학연 심지어는 같은 종교생활을 한다는 조건으로 이루어진 신연(信緣)이나 군대생활을 함께 했다는 군연(軍緣)까지 작용을 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는 종씨(宗氏)라는 것도 인연으로 작용하는 문화권이다. 여기서 연(緣)이란 ‘묶음’이나 ‘끈’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사색당쟁(四色黨爭)도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교장 자리에 있을 때 고향 선배가 찾아와 청탁하면 정에 끌려 차마 거절하지 못하다가 마침내는 법망(法網)의 제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을 극복해 보려고 용기백배해 거절하면 여지없이 이런 말을 하며 눈을 흘기고 간다. “같은 학교를 다닌 선배의 부탁인데 감히 그럴 수 있나?” 감성중심 문화권에서 자주 보는 현상이다. 그런 입소문이 팽배해지면 동창회에서는 동창의식이 희박하다고 손가락질을 하고 마침내는 ‘싸가지 없는 놈’이라는 이름으로 왕따를 당하기 일쑤다. ‘Pathos 문화권’에서는 이런 약점의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그 후유증도 적지 않음을 자주 본다. 이들은 우리 고향, 우리 가족, 우리 동네, 우리 집안, 우리 학년, 우리 학교, 우리 종교라는 조건 앞에서 취약한 반면에 ‘우리 모임’이 아닌 ‘다른 모임’에 대해서는 매우 배타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지역감정의 발로나 종교단체들의 충돌과 배타적인 아집(我執), 그 종교단체 안에서도 파벌이 형성되어 사분오열(四分五裂)함으로써 분쟁이 자주 일어난다.
‘Pathos 중심’이 친애력(親愛力)은 제고할 수 있을지 모르나 공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응집력(凝集力)을 신장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공공(公共)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를 희생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성(理性) 중심 문화권은 조금 다르다. 이성(Logos)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주관적이라고 하기보다는 객관적이고 나(I)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You) 중심이 강하기 때문에 공공의식이 강하다. 공공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나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하고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사유권을 포기할 수도 있다. Logos 문화권에서는 Police-Line을 넘지 않는다. 규정이나 법이라는 테두리를 넘는 것을 금기시한다. 이 문화권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처칠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총리로 있을 때 의회에 가기 위해 과속을 했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불가피한 조치였다. 경찰 오토바이가 차를 세웠다. “날 세” 하니 경찰이 처칠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그렇게 바쁘시면 제가 에스코트를 해드리겠습니다”하며 앞장을 섰다. 처칠이 무사히 의회 연설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더니 그 경찰이 있었다. “이젠, 에스코트는 필요 없네”라고 말하며 웃는 처칠에게 경찰이 말했다. “각하! 과속 딱지를 떼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성 중심 문화권의 대표적인 에피소드라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나라를 떠올렸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대통령의 친인척이나 사돈의 팔촌까지, 아니 그의 고향 친구나 동창생들까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청백리 청렴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청백리(淸白吏)를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청렴이 청백리에서부터 연원(淵源)했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에는 ‘염리’(廉吏)로 불렸다가 조선 시대에 ‘염근리’(廉謹吏)라 했다가 ‘청백리(淸白吏)’라 했다. 청백리란 ‘청귀(淸貴)한 관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품행이 단정하고 순결하며 자기 일신은 물론 가내(家內)까지도 청백해 오천(汚賤)에 조종되지 않는 정신을 가진 관리’를 지칭했다.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최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제도권에서 청백리가 거명되었고 청백리상을 주는 제도까지 있었다. 교육계에서 그 청백리상을 타신 P교장을 내가 알고 있다.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초등계의 여러 요직을 섭렵하시다가 나중에는 서울 모 여중에서 퇴임하신 분이다. 그분이 남긴 에피소드가 있다. 1970~1980년대, 학교사회에서는 좋은 학년이나 편한 보직을 받기 위해서 교장이나 교감을 상대로 이른바 운동(?)을 하는 관행이 있었다. 대체로 선생님들이 중학교에서는 중 3을 선호했고 초등학교 같으면 6학년 담임이 경합의 대상이었다. 선물 공세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현금 봉투로 거래했다. 2월 말, 학년담임 발표를 할 때 보면 주요 학년에는 유명한 교사들이 배치되게 마련이었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학교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해마다 계속해서 6학년을 맡는 교사들은 교내에서 가히 쥐락펴락하는 명사(?)였다. P교장이 부임하게 된 D중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긴장했다. 청백리상을 받으신 분에게 누구도 감히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 학년도가 가까이 되면서부터 선생님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잘못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생겨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게 아닌가.” “아무리 청백리라 해도 P교장도 공자님이 아닌데, 여느 교장과 다를 게 있겠나.” “맞아, 오히려 다른 교장들보다 더욱 테크닉할지도 몰라.” 설왕설래하던 중에 그래도 통 큰 고참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다는 마음으로 맨 먼저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의외로 교장이 웃으며 천연스럽게 봉투를 받는 것이었다. 삽시간에 이 일이 입소문으로 교내에 확산됐다. “그러면 그렇지, 청백리가 땅 파먹고 살겠나.” “청백리는 고려조나 조선시대나 있는 일이지.” 기다렸다는 듯이 선생님들이 은밀히 교장실을 드나들며 서로 시치미를 뗐다. 2월 말, 학년 담임과 보직 발표 날이 다가왔다. 교장실을 다녀온 사람은 모두 기대에 벅차 가슴이 부풀었다. 드디어 교장이 학년 담임 배치자료를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모두 가슴을 조였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순간이었다. 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교장의 인사말과 함께 발표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전개되고 말았다. “K 선생님 15만 원, L선생님 20만 원, P선생님 10만 원….” P교장은 학년 발표는 하지 않고 교장실에 놓고 간 선생님들의 봉투 액수를 발표하는 것이었다. 발표할 때마다 해당 선생님들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중에는 평소에 불의(不義)와는 절대로 누구하고도 타협하지 않는다며 장담하던 사람도 있고, 신실한 크리스천에다가 수줍고 온순해서 감히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여기던 여선생님도 있고, 언제나 얌전하고 정직하기로 동학년에서 정평이 났던 선생님도 있었다. “모두 우리 선생님들의 열의가 대단해 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주신 성의를 모두 모으니까 큰돈이 되어 강당에 피아노를 한 대 들여놓기로 했습니다.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교장의 인사말이 끝나자 선생님들이 모두 낄낄거리고 웃다가 나중에는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박장대소를 했다는 것이다. 그 시절, 교육계는 ‘장천 감오백’이라는 은어가 유행하고 있었다. 교장이 되려면 천만 원을 내야하고 교감으로 승진하려면 오백이라는 뜻인데 P교장의 일화는 썩어가는 교단에 참으로 심금을 울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로 나는 교단에서 그런 분이 계시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더욱 부패해져 급기야는 수도 교육의 총수가 법의 심판대에 서는 일까지 빚어지고 말았다. 물론 나도 청렴 앞에서는 떳떳하지 못하다. 변명 같지만, 나는 청렴이라고 하기보다 유혹을 이기기 어려웠다고 해야 할 같다. 교장이 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의 하나가 반대급부라는 유혹이다. 1997년경 선배 교장의 소개장을 들고 젊은이가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사업가였다. 그는 학교에 무료로 컴퓨터실을 만들고 30여 명이 공부할 수 있는 기기 일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대금은 1년간 수혜자로부터 회수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까 컴퓨터를 배우고 싶은 학생이 수강료를 내고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소정의 국가고시를 통해 자격증을 부여한다고 하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것이 아닌가 싶어 흔쾌히 승낙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교내에 컴퓨터용 책상이며 고급 탁자, 그리고 와이드 스크린과 각종 제어장치까지 훌륭한 컴퓨터실이 생겼다. 나는 교장으로 부임한 이래 매우 큰일을 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공사를 마치자 사장이 내 앞에 고가의 노트북 한 대를 내미는 것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라서 무척 갖고 싶은 것이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서 사양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소개해준 선배가 나보고 ‘새가슴’이라고 비아냥거림을 했다. 소견이 좁고 옹색하고 융통성이 없다는 뜻이다. 갖고 싶긴 했지만 한 번 사양한 터라 나중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개월 후, 그것이 사건화되어 선배가 교육청과 검찰로 호출되어 혼 줄이 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따지고 보면 나도 직접 소유하진 않았을 뿐이지 그 마음을 감히 청렴에 비유할 순 없었다. 오히려 나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였고 비겁한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업주가 몰래 내 차 안에 넣어 두었다면 아마도 두 눈 감고 가지고 왔지 싶다. 그리고 청렴한 척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리며 살았을 거다. 특히 내가 전문직에 있으면서는 여러 사람들한테 청탁을 받아 그 대가를 준 것은 없지만 돈을 받은 적이 적지 않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사악하고 각박한 세상을 살아왔다. 국회 청문회나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뢰(收賂)와 관해 ‘금품은 받았지만 청탁한 일이 없다’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나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청렴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어진 지 오래다. 청백리란 소극적인 의미로 ‘부패하지 않은 관리’로 인식되었는데 그보다 더 적극적 의미로는 ‘깨끗한 관리’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청렴정신은 ① 탐욕의 억제 ② 매명(買名)행위의 금지 ③ 성품의 온화성 등을 내포하고 있으며 선비사상과 함께 백의민족의 예의국가관에 의한 전통적 민족정신으로 여겨졌다. 이른바 가장 이상적인 관료의 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