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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저에게 큰 의미는 없습니다”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구는 251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우리 사회에 장애인에 대한 벽은 여전히 높지만 점차 장애인이 참여하는 영역은 넓어지고 있다. 교직사회에도 이제는 장애인의 진입장벽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울에서 최초로 1급 시각장애인이 중등임용고사 영어 교과에 합격했다. 바로 김헌용 서울경원중 교사다. 화제를 모았던 김 교사로부터 1년간 교직생활을 경험하면서 느낀 바를 들어보았다. 김 교사는 “장애라는 것이 저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며 “앞으로 교직사회에서도 장애인 교사의 증가에 대비한 제도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각장애인이 일반 교과 교사로 합격
지난해 서울시에서 최초로 시각장애인 일반교사로 합격해 화제가 됐는데요.
“모든 것이 처음이라는 게 부담스럽고 제가 하는 방식이 곧 전례가 된다는 사실에 책임감도 크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2007년부터 임용시험에서 장애인 특별전형이 생기면서 장애인 교사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겁니다.

합격 당시 선생님의 우수한 영어실력도 언론에서 많이 보도(처음 응시한 토익에서 975점, 텝스에서 918점을 받은 것이 알려졌다)되곤 했습니다.
“언론에서 임용시험 성적이 일반합격자들과 비슷하고 토익점수, 텝스 점수가 높다고 소개됐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랑할 것이 아니라 영어교사로서 기본 요건일 뿐이라고 봅니다. 장애인이라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영어교사가 되려면 그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언론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1년 동안 학교에서 생활해보니 어떠셨나요?
“아이들을 통제하거나 학교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이 예상했던 것처럼 어려운 면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장애를 왜 장애라고 부르는지 알게 된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저희 학교에서는 많은 지원과 배려를 해주셨습니다. 다만 그동안은 저 혼자 하는 일에 익숙해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다가 이제는 학교에서 다른 선생님, 학생들과 함께 해야 하는 일이다보니 어려운 점이 당연히 생기게 되네요.
수업이나 현장학습 때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시행해 보곤 하지만 일부 따르지 않는 학생들을 통제하지는 못하는 부분이 생기니까요. 학교에서 저에게 행정업무는 가급적 주지 않으시지만 오히려 그게 다른 선생님들께 죄송하기도 하죠.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가능성이 없거나 절망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노력하면 개선할 수 있겠다는 것을 절감하게 됐습니다.”

정부나 교육청 차원에서 시각장애인용 학습자료 개발했으면…
수업은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학생들의 반응도 남다를 것 같은데요.
“학생들이 처음에는 시각장애인이 수업을 한다니 신기해하고 대단하다고 느끼지만 그것도 잠깐이더라고요. 이제는 여러 선생님 중의 한 명일 뿐이지 크게 다르게 느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수업은 학교의 지원으로 협력교사(강사)와 함께 진행합니다. 교실에 교사 둘이 동시에 들어와 교과서를 나눠서 가르치는 겁니다. 제 입장에서는 학생들을 통제하기에 수월하고 시각 자료를 주로 사용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학생들 입장에서도 부족한 부분이 발생하지 않아 더 안심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두 선생님이 수업을 같이 연구하고 진행하는 코티칭(Co-teaching)과는 다릅니다. 그 강사 분이 제 수업을 도와주기 위한 보조교사도 아닙니다. 그렇다보니 일부 수업이 겹치거나 학생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어 너무 좋은 지원이기는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올해는 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채용을 해주신다고 합니다. 많은 지원에 더 책임감이 생깁니다.
교과서는 미리 시각장애인복지관에 맡겨 컴퓨터에서 음성인식시스템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작업을 해놓습니다. 그것을 통해 수업 준비를 하게 되죠.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교과서를 모두 외워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업준비 과정에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 제안을 해놓은 것도 있습니다. 아직은 교과서나 공문서를 점자나 음성인식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해 개인적으로 복지관을 찾아 의뢰해야 합니다. 그러나 점차 장애인 교사나 공무원의 임용이 늘어나는 만큼 이제는 개인적으로 의뢰하기보다는 정부나 교육청 차원에서 연계돼 이같은 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년 동안 학교생활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신 적이 있나요?
“저희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1인 1계발 활동을 맡아야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점자부’를 만들었습니다. 시각장애인 체험을 하고 점자를 읽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점자부 활동 두 번째 시간이 마침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첫 시간에 배운 점자를 이용해 편지를 써가지고 온 겁니다. 물론 하루밖에 배우지 않아 틀린 부분이 더 많긴 했지만 아이들의 정성에 감동을 받았지요.

영어에 관심을 갖고 영어선생님을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영어는 중학교 때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보러 가고 싶다, 영어로 된 축구기사나 소설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이런 게 영어공부에 대한 강한 동기로 작용했던 것 같네요. 그러다보니 우선 쉬운 영어 교과서, 문법책, 단어장부터 차근차근 보게 됐습니다. 학생들에게도 영어를 공부로 느끼게 하지 않으려고 해리포터나 트와일라잇 소설 자료 등을 주기도 하죠.
공주대학교 특수교육과를 들어가서도 1학년 2학기부터 영어교육을 복수전공하기 위해 수업을 들었습니다. 영어교육 자체에 흥미를 많이 느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3학년부터는 교직으로 나가기로 결정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장애인도 본인의지만 있으면 기회는 많다”
장애인이라서 느낀 불편이나 심적 갈등은 없으셨나요?
“저는 다섯 살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기 시작해 이제는 빛만 감지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시각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장애 자체에 크게 불편을 느끼지 못했고 ‘나만 왜 이런 걸까?’ 하는 고민도 별로 없이 자랐습니다. 시각장애인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시각 장애가 있었고, 대학도 국립대학이고 특수교육으로 유명해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장애인에 대한 시설도 잘 돼 있었습니다. 장애라는 게 저에게 큰 의미는 없었던 거죠.
우리나라도 이제는 장애인의 교육을 위한 시설이나 지원이 제대로 갖춰져 있어서 임용시험에 합격하기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장애인이라도 본인이 공부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기회는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취업에는 여전히 장벽이 높은 게 사실입니다.
대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면서 제도보다 사람들의 장애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제도 자체가 오랫동안 뿌리내려와서인 것일 수도 있겠죠. 우리나라는 이제 제도가 막 시작된 만큼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앞으로 장애인 교사들이 늘어날 텐데 제안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아직 현실은 어렵습니다. 학교장의 재량이나 개인의 능력만으로 해결하라는 식으로 무조건 학교에 교사를 배치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현재로서는 수십 년간 닫혀있던 문을 조금 열어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는 장애인들이 교직에도 더 많이 진출하는 만큼 이에 대한 지원책이나 제도가 마련돼야 할 겁니다.
사람이 날개가 없지만 왜 날개가 없냐며 불평을 하지는 않잖습니까? 그것에 그냥 적응하며 살게 되죠. 하지만 라이트 형제들은 날개가 없다는 것에 불만을 느끼며 비행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시각장애인 교사면 불편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버리기보다는 우리 교직사회에서도 이들의 불편을 없앨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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