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았으면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무엇을 먼저 떠올리겠는가. 나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가끔 던지는데, 무엇보다도 ‘아버지 노릇’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꼭 그렇게 하고 싶다. 다 자란 자식들과 소통의 온기를 살리지 못할 때는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 내 탓이다. 그러나 이렇게 각성을 한들 이것이 하루아침에 교정될 일은 아니다.
나는 다시 더 생각해 본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인생을 산다고 했을 때, 두 번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으면, 무엇을 먼저 떠올리겠는가. 아마도 사람들은 군대를 다시 가야 한다는 대목에서 머뭇거릴지도 모르겠다. 아니, 한 번 마치고 온 군대를 또 가야 한다고? 국방의무를 몰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해보았던 군대생활, 그 고단한 경험의 절절한 실체를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 군대를 다시 가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더라도, ‘아버지 노릇’을 다시 할 수 있다면, 나는 군대에 한 번 더 가는 일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므로 그저 말이 그렇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했다는 후회가 확실하게 솟아오르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후회감은 오늘날 한국의 많은 아버지들이 가진다.
내 앞 세대의 아버지들은 오로지 가난으로 인해 자식을 절대 궁핍 속에서 키웠다는 회한 때문에 아버지 역할을 다시 한 번 해 보겠다고 하셨을 것이다. 너희들 너무 고생시켰다. 이 한 마디를 늘 가슴에 품고 사셨던 분들이 나의 부모 세대이다. 그러나 밥을 굶는 가난으로부터 벗어난 오늘의 부모 세대는 자식들과의 소통 부족과 가족애 결핍에 대한 뼈저린 아픔을 느낀다. 오늘날 부모 세대의 짙은 소외가 내비치는 대목이다.
젊은 날, 돈을 열심히 잘 벌어왔던 아버지들일수록, 세상 명예를 찾아 나서기에 바빴던 아버지들일수록, 권력 쫓기에 골몰했던 아버지들일수록, 나이 들어서 자식과의 소통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기 쉽다. ‘내가 아버지 노릇을 어떻게 해왔기에 이렇게 되었나’ 하는 각성을 해보지만, 되돌아가서 근본을 치유하기에는 너무도 먼 길을 무심하게 걸어왔다는 것만 확인될 뿐이다.
산업화 사회 이후 후기 정보화 사회에 이르기까지 그 분주하고 가파른 변화를 탓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들이 직장과 사회에서 생활하다 보면, 가족 간의 소통과 가족애를 건사할 틈새가 생겨나지 않는다고도 한다. 물질은 다소 풍요해졌지만 마음을 평화롭게 다스려가며 살기는 왜 이렇게 팍팍해졌는가. 가족을 조금이라도 풍족하게 먹여 살리겠다고 기를 쓰고 전쟁하듯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왜 가족이나 자식에게서도 따돌림을 당해야 하는가. 아버지를 처음부터 다시 할 수는 없을까.
‘귀거래사(歸去來辭)’로 유명한 중국 동진시대 시인 도연명(365~427)은 자식들을 책망하는 시 한 편을 남겼다. ‘책자(責子)’라는 제목의 시이다. 도연명이 어떤 사람인가. 고금을 통해 천하에 유명한 시인이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엘리트 지식인이지 아니한가. 도연명의 시 ‘책자(責子)’를 풀이와 더불어 소개해 본다.
白髮被兩(백발피양빈) 양쪽 귀밑머리 백발로 변해있고,
肌膚不復實(기부불부실) 살결도 전처럼 실하질 못하다.
雖有五男兒(수유오남아) 비록 아들놈이 다섯이나 되지만,
總不好紙筆(총불호지필) 하나같이 글공부는 싫어하는구나.
阿舒已二八(아서이이팔) 서라는 놈 이미 열여섯이나 되었지만,
懶惰故無匹(나타고무필) 게으르기가 짝이 없는 놈이고,
阿宣行志學(아선행지학) 선이란 놈은 곧 열다섯이 되는데,
而不愛文術(이불애문술) 도무지 글 읽기에는 관심조차 없다.
雍端年十三(옹단년십삼) 옹과 단은 똑같이 열세 살인데,
不識六與七(불식육여칠) 여섯과 일곱조차도 구별 못하고,
通子垂九齡(통자수구령) 통이란 놈 아홉 살이 다 되었는데도,
但覓梨與栗(단멱이여율) 오직 찾는 거라곤 배와 밤뿐이다.
天運苟如此(천운구여차) 하늘이 내게 준 자식 운이 진실로 이러하니,
且進盃中物(차진배중물) 이 또한 술잔이나 기울 일밖에 별도리 없다.
천사오백 년 전 도연명 집안의 자식 키우는 모습인데, 부모의 마음속 풍경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부에 뜻이 없고 배움에 게으른 자식을 둔 아비의 실망감이 잘 드러나 있다. 그렇게 된 자세한 사연이야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도연명같이 뛰어난 사람도 아들 키우기가 여의치 못하다는 점이다. 굳이 따지자면 도연명은 학자나 선생에 가까운 사람이다. 좀 비약될지도 모르겠지만, 선생이 자기 자식 잘 거두기가 쉽지 않다는 시사를 받기도 한다.
이 시에서 확인되는 바가 또 하나 있다. 도연명이 자식들을 꾸짖고 탓하는 면은 뚜렷하지만, 달리 아버지로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자식 운 나쁜 것으로 돌리고 술로 자식 시름을 잊으려 한다. 그의 자식들은 나중에 아버지를 어떻게 대했을까. 이해보다는 책망을 앞세운 아버지라 섭섭해 했을까. 도연명도 시름 끝에 혹시 ‘아버지 역할을 처음부터 다시 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일정한 수준의 능력과 자격을 갖추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 자격증이다. 자격증은 주로 소양과 기술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음을 증명해 준다. 세상은 자격증의 시대이다. 당연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에도 새롭게 자격증을 부여한다.
남자로 태어났다고 다 남자의 자격을 갖춘 것은 아닌가 보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아 나야말로 남자로서의 자격이 모자라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요즘 시대를 괜찮은 남자로 살려면 저런 정도는 노력해서라도 갖추어야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에 이르기도 한다.
나는 이때껏 이렇게 생각했다. 결혼을 해 아이를 낳으면 이미 아버지가 되는 것인데 달리 아버지의 자격을 구한단 말인가. 아니 남편의 자격, 아내의 자격도 마찬가지이다. 남녀가 결혼하면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는 것인데, 달리 무슨 자격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렇게들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들 가운데, 실제로는 전혀 되어 있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정말로 내가 아버지 자격을 갖추기에는 너무도 많은 결격 사유가 있다는 것을 <가족관계 상담자 훈련>을 받으면서 절실히 느꼈다. 그야말로 나의 아버지 정체성이 깨어지고 변화되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되고 무려 23년 만의 일이다.
겉의 형식은 아버지 같아도 그 안의 내용이 아버지다움의 덕성으로 채워져 있지 않으면 그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에서 자주 벗어난다. 내용을 갖추지 못한 형식들이 범람하면 마침내 그 형식조차 망가진다. 형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내용이 형식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형식이 빛을 내기 시작한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형식이 내용을 정화한다”라는 말이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요소요소에 <아버지 학교>를 필요로 한다. 같은 차원에서 <남편 학교>와 <아내 학교>도 절실하다. 아무 준비 없이 남편 되고, 아무 준비 없이 아내 되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다시 아무 준비 없이 아버지 되고, 아무 준비 없이 어머니 되는 사람들도 늘어 간다. 옛날에는 대충 버티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렇게 준비 없이 되어서 인생을 행복하게 경영하기는 어렵다.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은 궁극으로는 내 삶이 훼손되지 않고 행복해지는 문제에 닿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도연명이 오늘을 살고 있다면, 그 역시도 <아버지 학교>에 우선 입학해야 할 사람으로 분류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