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가을 조선시대 여인의 몸으로 최초로 임금의 주치의가 된 의녀 대장금에 대한 일대기를 다룬 MBC 드라마 <대장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장금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조정은 양의 깜찍한 연기를 기억할 것이다. 어린 대장금은 천민 신분에서 우여곡절 끝에 생각시로 뽑혀 궁에 수라간 나인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다른 생각시들과 호된 궁중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생강’에서 파생된 새앙각시(생각시) 아는 사람은 알고 있었겠지만 어린 대장금이 처음에 궁에 들어갈 때의 호칭으로 사용된 ‘생각시’는 뜻밖에도 우리 전통의 향신료 재료인 ‘생강(生薑)’에서 온 말이다. ‘생강’이 바뀌어 ‘새앙각시’도 되었다가 ‘생각시’도 되었다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새앙각시’의 ‘새앙’과 ‘생각시’의 ‘생’은 모두 ‘생강’과 관련된 말이지만 이 말들과 혼동을 일으키는 말들이 여럿 있다. 이 단어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조선 시대, 임금이나 왕비가 평상시에 거처하는 곳인 지밀(至密)과 침방(針房), 수방(繡房) 등에 소속된 궁녀 중 관례(冠禮)를 치르지 않아 ‘새앙머리’를 땋은 어린 궁녀를 ‘새앙각시’라고 한다. ‘새앙머리’란 머리를 두 갈래로 갈라서 땋아 이것을 다시 틀어 올린 뒤, 아래위로 두 덩이가 지도록 중간을 댕기로 묶기도 하고 틀어 감아서 비녀 같은 것으로 꽂기도 해서 생강 모양으로 만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이 ‘새앙머리’가 줄어서 ‘생머리’가 된다. 우리말의 ‘생머리’라는 말에는 이렇게 생강 모양으로 꾸민 머리라는 뜻의 단어와 머리에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둔 자연 그대로의 머리를 말하는 ‘생머리’가 있는데 후자는 ‘생머리(生--)’이고 입말에서는 ‘쌩머리’로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어찌되었든 이렇게 ‘새앙머리’를 한 어린 궁녀를 ‘새앙각시’라고 하는데 ‘새앙머리’가 ‘생머리’가 되는 것처럼 ‘생각시’는 ‘새앙각시’가 줄어든 말이다. 이 ‘생각시’를 예전에는 이두식 한자로 ‘生閣氏’로 쓰기도 하였는데 ‘각시(閣氏)’는 우리말에서 아내나 아냇감을 나타내던 ‘가시’를 한자로 쓴 것이다. 여기서 ‘生’은 ‘생강(生薑)’에서 변한 말인 ‘새앙’이 다시 줄어들어 ‘생’으로 된 말을 한자로 쓴 것인데 ‘生’이라는 한자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이다. 한자어 ‘생강(生薑)’에서 ‘새앙’으로 변했다가 ‘생’으로 줄어든 이 말은 현대 국어 사전에 ‘생각시, 생머리’ 이외에도, ‘생단자, 생뿔, 생엿, 생쥐, 생토끼’ 등에 남겨져 있다. ‘생단자(-團)’는 ‘찹쌀로 만든 단자에 생강가루를 묻혀 만든 떡’을 말하고 ‘생뿔’은 ‘생강의 뿌리’라는 뜻과 ‘생강 모양으로 난 아직 채 못다 자란 송아지 뿔’을 가리키는 말이다. ‘생엿’은 ‘생강엿’을 가리키고 ‘생토끼’는 ‘생강 모양으로 생긴 우는토낏과의 포유류’를 가리키는데 이 토끼는 ‘꺅꺅’하고 특이한 울음소리를 내기 때문에 ‘우는토끼’라고도 한다.
‘사향’에서 변한 ‘새앙’과 혼란 그런데 특이하게도 현대 국어에서 ‘새앙쥐’의 경우만은 준말인 ‘생쥐’를 표준어로 인정하고 본말인 ‘새앙쥐’는 비표준어로 처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준어로 등재되어 있는 ‘새앙쥐’는 ‘사향쥐(麝香-)’라는 다른 종류의 쥐 이름에서 온 말이다. ‘사향쥐’는 ‘사향뒤쥐’의 다른 이름으로, 회갈색 몸에 악취를 풍기는 분비선이 있어 고양이나 뱀들이 싫어하는 뒤쥣과의 포유류다. 즉, ‘사향쥐’에서 나온 ‘새앙쥐’는 ‘생강쥐’에서 온 ‘새앙쥐’와는 다른 단어임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니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준말인 ‘생쥐’는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으나 이 말의 본말인 ‘새앙쥐’나 ‘생강쥐’는 비표준어로 처리하고 있다. ‘사향쥐’에서 바뀐 ‘새앙쥐’가 표준어로 돼 있는 반면, ‘생쥐’의 본말인 ‘새앙쥐’는 비표준어로 돼 있어 이같은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매우 헷갈릴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생강 모양을 한 동물이나 사물에 사용되던 ‘새앙’ 과 고약한 냄새를 지닌 동물들에 붙이는 ‘사향’에서 변한 ‘새앙’이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새앙손’과 ‘생손’은 다른 말 이렇게 ‘생강’에서 줄어든 ‘새앙’ 혹은 ‘생’과 혼동을 일으키는 말은 또 있다. ‘새앙손이’가 바로 그것이다. 흔히 ‘손가락이 잘려서 생강(生薑)처럼 몽똑하게 된 사람’을 ‘새앙손이’라고 한다. 이 말은 본래 ‘생강(生薑)처럼 몽똑하게 잘린 손가락’을 가리키는 ‘새앙손’에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사 ‘-이’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이다. 물론 현행의 표준어에서는 ‘새앙손’을 단어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생강(生薑)처럼 몽똑하게 잘린 손가락’이라는 뜻풀이를 고려하면 ‘새앙손’이라는 단어가 있음 직함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새앙손’은 ‘상한 손’이라는 뜻을 가진 말인 ‘생인손’과는 다른 말임에 유의해야 한다. ‘생인손’은 ‘손가락 끝에서 종기가 나서 곪는 병’을 가리키는 말인데 ‘생(生) +앓- +-ㄴ +손’에서 발달하여 ‘생안손’이 되었다가 ‘생인손’으로 굳은 것으로 ‘생으로 앓은 손’으로 보기도 한다. 이 ‘생인손’의 준말에 ‘생손’이 있는데 문제는 이 ‘생손’이 ‘생인손’의 준말인지, ‘새앙손’의 준말인지는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새앙손’은 손가락의 마디가 잘려서 뭉툭하게 된 손을 가리키는 말이고 ‘생안손’, 즉 ‘생인손’은 ‘생으로 앓은 손’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둘 다 ‘손가락 끝에 문제가 생겨서 손가락의 형태에 변형이 온 경우’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생손’은 ‘새앙손’과 ‘생안손’ 모두로부터 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생손앓이’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생손’은 역시 ‘생안손’에서 온 말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생손’의 경우는 ‘생’을 한자 ‘生’으로 쓰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서양’이 입말에서 줄어서 나온 ‘생-’ 이 밖에도 ‘생’과 혼동을 일으키는 말에 ‘서양에서 들어온 것’을 가리키던 ‘서양’이 입말에서 줄어들어서 ‘생’으로 된 말들이 있다. ‘생목’ 같은 말이 이에 해당한다. ‘생목(-木)’은 ‘두 가닥 이상의 가는 실을 한 가닥으로 꼬아 만든 무명실로 폭이 넓고 발이 곱게 짠 피륙’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나라 전통의 광목(廣木)보다 실이 가늘고 흰데 서양에서 발달하여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기 때문에 ‘서양무명’을 뜻하는 ‘서양목’으로 부르기도 하고 중국에서 들어왔다는 점에서 ‘당목’으로 부르기도 한다. 물론 ‘생목’은 바로 이 ‘서양목’이 줄어서 이루어진 말이다. 이 낱말에서 ‘목(木)’은 ‘무명’의 한자식 표기 ‘목면(木棉)’을 말한다. ‘가는 무명 올로 폭이 넓고 설피게 짠 서양식 피륙’을 ‘서양사(西洋紗)’라고 하는데 이 ‘서양(西洋)’이 ‘생’으로 줄어서 ‘생사(-紗)’로 쓰기도 한다. 또 ‘통조림이나 석유통 따위를 만드는 데에 쓰는, 안팎에 주석을 입힌 얇은 철판’을 ‘생철’이라고 하는데, 이 말도 본래는 ‘서양철(西洋鐵)’에서 온 말이다. ‘서양’이 입말에서 ‘생’으로 줄어들어서 접두사처럼 쓰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서양(西洋)’이 ‘생’으로 줄어들어서 쓰이게 된 단어로는 그 밖에도 ‘생과자’, ‘생석탄’, ‘생회’ 등이 있다. 우리에게는 ‘일본식 과자’로 알려진 ‘생과자’도 그 어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서양식 과자라는 말에서 온 것이고 ‘화학적 방식으로 얻은 산화칼륨’을 가리키는 ‘생석탄’, ‘생회’에서의 ‘생’은 모두 ‘서양’이라는 뜻을 지닌 것이다. 지금까지 ‘새앙각시’의 ‘새앙’이 ‘사향뒤쥐’의 변한 말인 ‘새앙쥐’의 ‘새앙’과 혼동을 일으키는 것과 ‘생각시’의 ‘생’이 ‘생안손, 생손’의 ‘생’이나 ‘생목, 생사, 생철, 생과자’의 ‘생’과 구별돼야 함을 말했다. 어떤 말에 한자 ‘生’을 쓰고 어떤 말을 고유어처럼 처리할 것인지는 이러한 구별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