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재면서 살아간다. 눈앞에 보이는 물체가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를 알기 위해 ‘높이’를 재고, 얼마나 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길이’를 잰다. ‘높이’는 ‘세로’의 다른 이름이고 ‘길이’는 ‘가로’의 다른 이름인데 이 둘이 만나면서 생기는 넓은 영역을 ‘넓이’라고 한다. ‘자’에서 나온 ‘재다’의 의미확대 ‘세로’의 옛말은 ‘셰’였는데 이 말은 ‘서다[立]’의 옛말인 ‘셔다’의 어간에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이’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말로 ‘서 있는 모양의 길이’를 나타내던 것이다. ‘가로’의 옛말은 였다. 가 ‘가로’로 바뀌자 이때의 ‘로’가 부사격조사 ‘로’로 인식되어서 ‘셰’에도 ‘로’가 붙어서 ‘셰로>세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어쨌든 ‘세로’와 ‘가로’는 그렇게 ‘높이’와 ‘길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됐다. ‘재다’라는 말은 본래 ‘자’에서 나온 말이다. 옛날에는 ‘자’로 사물의 길이를 재는 일을 ‘자히다’라고 했다. 이 ‘자히다’가 ‘자이다’가 되었다가 줄어서 ‘재다’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자히다>재다’는 본래 길이나 높이, 넓이와 같이 ‘자’를 대어서 알아볼 때 쓰는 말이었다. 그러다 ‘자’가 없을 경우에 신체의 일부 특히 손이나 발, 몸을 사용해 측량하는 데에도 쓰이게 돼 ‘뼘’을 잰다든지 ‘걸음’을 잰다든지 ‘키’를 잰다든지 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사물의 기운 정도’를 나타내는 ‘기울기’라든지 ‘밝은 정도’를 나타내는 ‘밝기’ 및 ‘세기’, ‘잦기’ 등 모든 측량하는 것에 확대해 쓰이게 됐다.
접미사 ‘~의’가 붙어 나온 척도 단어 그런데 이렇게 측량하여 재는 것을 나타내는 우리말 중에는 그 어원을 뚜렷이 알기 어려운 말들도 상당수 있다. ‘부피’나 ‘키’, ‘무게’, ‘두께’, ‘지름’, ‘너비’ 등이 그러한 말들이다. ‘키’는 비교적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척도 명사를 나타내는 접미사는 ‘-의’였는데 ‘키’는 본래 ‘크다’의 어간에 ‘-의’가 붙어서 ‘킈’가 되었다가 자음 뒤에서 ‘의’가 단모음화되는 현상(희망[히망], 무늬[무니], 물의[무릐/무리], 합의[하븨/하비])에 따라 ‘키’로 바뀌게 된 말이다. 처음에는 척도명사로 사용되던 이 ‘키’가 ‘사람이나 동물이 똑바로 섰을 때, 발바닥에서 머리끝에 이르는 몸의 길이’를 나타내는 의미로 고정되면서 ‘큰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명사 ‘크기’가 새롭게 만들어져 현재에 이른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비해 ‘부피’나 ‘무게’, ‘두께’ 등은 그 의미를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들이다. ‘부피’는 ‘(무엇이) 바람 따위가 들어가서 공간이 넓다’의 뜻을 지니는 옛말 ‘*붚다’에 우리 옛말에서 형용사를 명사로 만들어주는 접미사 ‘-의’가 결합하여 ‘부픠’가 되었다가 ‘킈’와 마찬가지로 자음 뒤에서 ‘의’가 단모음화되는 현상에 따라 ‘부피’가 된 말이다. ‘*붚다~부피’와 관련된 말로 현대 국어에 남겨진 단어들에는 ‘붑>북’과 ‘부풀다~부푸러기’, ‘보풀다~보푸라기’ 및 ‘붑바티다>북바치다’, ‘봅놀이다>봅뇌다>>뽐내다’ 등이 있음은 이미 지난 4월호 원고에서 언급한 바 있다. ‘무게’는 ‘무겁다’와 관련된 말이다. ‘무겁다’의 옛말 ‘므겁다’가 중세 국어의 ‘*믁-’에 형용사를 다른 형용사로 만드는 접미사 ‘-업-’이 결합한 말임을 염두에 둔다면 ‘무게’ 역시 ‘*믁-’에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의’가 붙어서 ‘므긔’가 되었다가 ‘무게’로 바뀐 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믁-’은 중세국어에서는 ‘므그니, 므근하다, 므기다’ 등의 단어들에서 생산적으로 확인되지만, 현대 국어에는 ‘묵-직하다’나 ‘무지근-하다’와 같은 말에만 화석화되어 남겨져 있을 뿐이다.
표준말과 방언형에서 갈라진 ‘두껍다’와 ‘두텁다’ ‘두꺼운 정도’를 가리키는 ‘두께’는 이보다 좀더 복잡한 어원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의 옛말은 ‘둗긔’였는데 앞에서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의’가 있었음을 고려한다면 본래 ‘*둗ㄱ-’라는 형용사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두껍다’의 옛말은 ‘둗겁다’였는데 이 역시 ‘*둗ㄱ-’에 접미사 ‘-업다’가 결합한 말임을 알 수 있으니 이로부터 ‘*둗ㄱ-’라는 말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그런데 이 ‘*둗ㄱ-’라는 말은 중세 국어에 ‘*둗ㅎ-’라는 방언형을 가지고 있었다. ‘*둗ㅎ-’에 접미사 ‘-업다’가 결합한 말이 ‘두텁다’인데 현대 국어에서는 ‘*둗ㄱ-’에서 만들어진 ‘두껍다’와 ‘*둗ㅎ-’에서 만들어진 ‘두텁다’가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되지만 중세 국어에서는 거의 비슷한 뜻으로 사용되었고 오히려 중세 국어에서는 ‘두텁다’가 ‘두껍다’보다 더 기본적인 단어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중세 국어에서는 ‘두껍다’에서 만들어진 ‘두꺼비’보다 ‘두텁다’에서 만들어진 ‘두터비’가 더 기본적이었다든지 ‘두꺼운 정도’를 나타내는 말도 ‘둗긔’보다는 ‘두틔’가 더 일반적인 용법으로 쓰였다든지 하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아직까지도 ‘고명을 위에 두툼하게 얹어서 만들어 먹는 떡’을 ‘두텁떡’이라고 하고 ‘두텁다’의 ‘도탑다’가 쓰이고 있다든지 ‘두껍다’의 작은말인 ‘*도깝다’는 쓰이진 않는다든지 하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중세 국어에서 ‘두텁다’가 더 넓게 쓰였던 흔적을 알아볼 수 있다. 어쨌든 앞에서 말한 복잡한 구성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두께’라는 말이 ‘두껍다’는 뜻을 가진 ‘*둗ㄱ-’에 척도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의’가 붙어서 만들어진 중세 국어 ‘둗긔’로부터 온 말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 역사적 증거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척도를 나타내는 말 중에서 ‘-의’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말에 ‘너비’와 ‘나비’라는 말도 포함된다. 지금까지의 논리를 충실히 이해하였다면 ‘너비’는 ‘넙- +-의’로 ‘나비’는 ‘*납- + -의’로 구성된 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넙-’은 ‘넓다’의 옛말로 ‘넙적하다’나 ‘넙데데하다’, 납작한 물고기를 말하는 ‘넙치’같은 말에 남겨져 있다. ‘넙-’의 작은말인 ‘*납-’은 지금은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현대 국어에 ‘납작하다’나 ‘납신하다’, 납작한 거미라는 뜻의 ‘납거미’ 등에 남겨져 있다. 알고 보면 ‘납작한 날개를 나풀거리며 날아다니는 곤충’이라는 뜻의 ‘나비’ 역시 바로 이 ‘*납-’에 ‘-이’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이다. ‘너비’가 건물이나 길 따위의 비교적 큰 대상의 폭을 재는 데 쓰는 말이라면 ‘나비’는 천이나 종이 따위의 비교적 작은 대상의 폭을 재는 데 쓰는 말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원을 쉽게 알 수 없는 말 이상에서 우리말에서 ‘척도’를 나타내는 말들의 어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다. 이 밖에도 ‘어디를 질러가다’와 같은 구성에 쓰이는 ‘지르다’에서 온 말인 ‘지름’이라든지 ‘팔’의 옛말인 ‘’에서 온 말로 천이나 종이 따위를 팔을 뻗어서 재는 단위인 ‘발’과 같은 말들도 물건을 재는 데 쓰는 말로 그 어원을 쉽게 알 수 없는 말이다. ‘지름’에 쓰인 ‘지르다’는 ‘지름길’과 같은 말에 남겨져 있고 천이나 종이 따위를 팔을 뻗어서 재는 단위를 가리키는 ‘발’은 ‘밞다(두 팔을 편 단위로 길이를 재다)’나 ‘발맘발맘(두 팔을 편 단위로 길이를 재는 모양)’과 같은 말에 남겨져 있다. 마지막에 말한 이 ‘발맘발맘’은 발걸음을 단위로 하는 ‘발밤발밤’과 구별되는 말인데 현재 인터넷에서 제공되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발맘발맘’과 ‘발밤발밤’을 같은 뜻을 가진 말로 풀이하고 있어서 혼란을 주고 있다. 서둘러 바로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