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이 수면욕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말에는 잠을 나타내는 말이 아주 발달해 있다. 특히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 세분화 돼 있어 그만큼 사람들이 깊은 잠을 이루는 일에 민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귀잠과 수잠 잠을 나타내는 우리말에 ‘귀잠’이라는 말과 ‘수잠’이라는 말이 있다. ‘귀잠’이란 ‘아주 깊이 든 잠’을 가리키는 말인데 중세 국어의 ‘그위’이라는 말에서 변한 것이다. ‘그위’는 ‘관(官)’이나 ‘고위직의 관리(官吏)’를 가리키는 말로 ‘그위>구위>구의>귀’로 변화한 것이다. 따라서 ‘그위’은 ‘관(官)에서 자는 안전한 잠’ 혹은 ‘고위직의 관리가 자는 잠’이라는 뜻에서 ‘아주 편안하게 드는 잠’ 혹은 ‘아주 깊이 드는 귀한 잠’의 의미로 파생된 것이다. 중세 국어에는 ‘귀잠’의 반대말로 ‘깊이 들지 못하는 잠’ 즉 ‘얕게 살짝 든 잠’을 가리키는 ‘수흐’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은 ‘수흐>수후잠’을 거쳐 현대 국어에 ‘수잠’이라는 말로 남겨져 있다. ‘수흐’의 ‘수흐’ 혹은 ‘숳’이 중세국어의 ‘숲[林]’ 또는 ‘수풀[藪]’의 의미를 갖던 말이니 ‘수잠’은 ‘산속이나 숲속에서 나무를 하다가 잠깐 드는 잠’을 가리킨다. ‘수잠’의 유의어로 ‘풋잠’이 있다. ‘잠든 지 얼마 안 되어 깊이 들지 못한 잠’을 말하는 ‘풋잠’이 본래 ‘플[草]+ㅅ+[眠]’의 단어 구성에서 만들어진 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수흐잠’과 ‘풋잠’이 유의 관계에 있는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 ‘숫되다’와 ‘풋되다’, ‘숫보기’와 ‘풋내기’의 유의성도 이와 함께 고려될 법하다. 정리하자면, 중세국어 ‘구의잠’에서 이어진 현대국어의 ‘귀잠’은 ‘관(官)에서 자는 관리들의 편안하고 안정적인 잠’을 말하며 중세국어 ‘수흐잠’에서 이어진 현대국어 ‘수잠’은 ‘숲에서 자는 잠, 즉 정해진 거처가 없이 야외에서 자는 한뎃잠’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동물의 특성에 비유돼 붙여진 말 ‘수흐잠’은 다른 한편으로 음상의 유사성에 끌린 와전(訛傳)으로 인해 현대어 ‘새우잠’ 혹은 ‘시위잠’으로 바뀌었다. ‘새우잠’은 수잠을 잘 때 보통 옆으로 몸을 구부려서 금방 일어날 수 있도록 자는 모양이 새우의 모양과 흡사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고 ‘시위잠’은 자는 모양이 활시위의 모양과 흡사한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말에는 이렇게 ‘불편한 잠’을 가리키는 말이 많은데 그 중에는 특히 ‘새우잠’처럼 동물의 자는 모양에 빗대서 이르는 말도 많고 ‘시위잠’처럼 사물의 모양에서 나온 말도 많다. 예를 들어, ‘깊이 들지 못하고 자주 깨는 잠’을 ‘괭이잠’이라고 하는데, ‘괭이’가 ‘고양이’의 방언이니 그 어원적 의미는 ‘고양이 잠’임을 알 수 있다. 고양이는 일반적으로 잔뜩 웅크린 채 얕은 잠을 자다가 주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깼다가 자는 동작을 반복한다. 이러한 이유로 ‘고양이 잠’, 즉 ‘괭이잠’이란 ‘깊이 들지 못하고 자주 깨는 잠’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이와 유사한 말로 ‘깊이 들지 못하고 자꾸 놀라 깨는 잠’이라는 뜻의 ‘노루잠’이 있다. 깊이 잠을 자지 못하고 자주 깨는 노루의 특성에서 비유된 ‘노루 잠자듯’이라는 관용어에서 온 말이다. 달리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자기 보호책이 없는 노루가 사나운 맹수들의 습격을 언제 받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선잠이 들었다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놀라서 깨는 모습에서 ‘노루잠’이라는 말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단어가 ‘놀라다[驚]’와 음상이 유사한 것도 이러한 뜻을 지니게 된 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똑같이 깊이 들지 못하는 잠이라도 ‘노루잠’에는 ‘놀라다’의 의미가 들어 있는데 비해서 ‘괭이잠’에는 ‘놀라다’의 뜻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불편한 잠을 표현하는 다양한 말 깊이 들지 못하고 자주 깨는 잠에는 ‘토끼잠’과 ‘벼룩잠’이라는 말도 있다. ‘토끼잠’은 귀가 밝고 주변 환경에 예민한 토끼처럼 주변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쳐 눈이 빨갛게 충혈된 모습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벼룩잠’은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깜짝 놀라 펄쩍 뛰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개처럼 머리와 팔다리를 오그리고 옆으로 누워 자면서 깊이 자지 못하고 설치는 잠을 비유하는 말로 ‘개잠’이라는 말도 불편한 잠을 나타내는 말로 빼놓을 수 없다. 어떤 일이 염려가 돼 마음을 놓지 못하고 조바심내며 온몸을 사리고 자는 잠을 가리키는 ‘사로잠’이라는 말도 그 불편한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또 비좁은 방에서 여럿이 잘 때, 바로 눕지 못하고 모로 끼어 불편하게 자는 잠을 ‘갈치잠’이나 ‘칼잠’이라 하며 잘 자리를 얻지 못해서 남의 발이 닿는 쪽에서 불편하게 자는 잠을 ‘발칫잠’이라고 한다. 아예 방 안에서 자지 못하고 옷을 입은 채 아무것도 덮지 아니하고 아무 데나 쓰러져 자는 잠을 가리키는 ‘등걸잠’이나 너무 피곤하여 아무 데서나 쓰러져 자는 잠을 이르는 ‘멍석잠’같은 말은 모두 ‘수잠’과 같이 한뎃잠에 속하는 말들이다. 어떤 일을 앞두고 짧은 틈을 타서 불편하게 자는 잠을 ‘쪽잠’이라고 한다. 눕지도 못한 채, 등을 구부리고 앉아서 자는 잠을 ‘고주박잠’이라고 하며 앉은 채로 고개를 꾸벅거리며 조는 잠을 ‘꾸벅잠’이라고 한다. 아예 선 채로 자는 잠을 가리키는 ‘말뚝잠’이나 ‘선잠’이라는 말도 있다. 심지어 자야 할 시간이 아닌 때에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몰래 자는 잠을 가리키는 ‘도둑잠’이라는 말도 있다. 자기는 잤지만 자나마나한 ‘헛잠’도 있고 한자리에 누워 자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자는 ‘돌꼇잠’도 있으니 불편한 잠이란 참 많기도 하다.
편히 자는 잠을 비유하는 말 하지만 ‘귀잠’처럼 깊이 드는 잠을 가리키는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막 곤하게 자는 잠을 가리키는 ‘첫잠’부터 근심이나 걱정이 없어져서 마음을 놓고 편안히 자는 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발편잠’, 깊이 든 잠을 가리키는 ‘속잠’이나 ‘쇠잠’도 있다. 피로를 풀기 위해서 푹 자는 잠을 말하는 ‘한잠’,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자는 잠을 말하는 ‘통잠’,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달게 자는 ‘꿀잠’ 등 편안한 잠을 가리키는 말도 불편한 잠만큼은 아니지만 그 편안함의 상태에 따라 적지 않은 수의 단어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할 만한 잠으로는 ‘꽃잠’과 ‘나비잠’이 있다. ‘꽃잠’이란 갓 혼인한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을 가리키는 말인데 다른 어떤 잠보다 깊이 든 행복한 잠일 것이다. ‘나비잠’은 갓난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모양이 고운 ‘나비’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작고 여린 갓난아기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나비의 날갯짓으로 보이는 듯하니 이보다 더 부러운 잠이 어디에 있을까? 비록 불편한 잠을 잤더라도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드는 ‘그루잠’을 잔다면 그것만큼 꿀맛 같은 잠도 없을 것이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늦잠’을 잘 수 있다면 그 또한 다른 어떤 잠맛에 비할 바가 아니리라. ‘늦잠’을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말에 ‘다방골잠’이라는 말이 있다. 다방골은 지금의 서울시 중구 다동을 말한다. 예전에 이곳에는 다도와 차례를 주관하던 사옹원(司饔院)에 속한 다방(茶房)이 있어 밤늦도록 장사하는 이들이 많았다. ‘다방골잠’은 여기 사람들이 밤이 늦도록 장사를 하다가 밤중이 지나서 잠자리에 들어 이튿날 해가 높이 뜬 뒤에야 일어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일반 서민들에게 다방골 사람들처럼 공식적인 늦잠은 고관대작들의 귀잠만큼이나 부러운 잠이었으리라. 자정 넘어 잠들어서 아침 일찍 일터에 나가야 하는 요즘, 그 어떤 때보다 다방골잠이 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