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30분 충남외고 1학년 6반 음악수업.
수업 30분 전부터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4층 음악실에는 벌써 6반 학생들이 오밀조밀 모여 바이올린을 켜고, 플루트를 불며 합주를 한다. 익숙한 곡이라 생각했더니 영화 ‘Beauty and the Beast’의 주제곡이다. 짧은 한 학기의 음악수업 동안 학생들은 자신의 감정을 악기로 표현하며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청중이 된 학생들 사이에서 허밍이 흘러나오자 곧 화음이 된다. 사랑을 주제로 한 이 곡을 들으며 남학생들은 쑥스러워 하고 여학생들은 들떠 있다. 합창하는 동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거나 발을 짤랑짤랑 거리며 리듬을 탄다. 가창이 끝나자 이어진 최 교사의 말.
“여러분 마음속에 사랑이 움트고 있는지요? 요즘 사랑이 많이 변한다고는 하지만 여러분이 만나는 사랑은 노래 가사처럼 변하지 않는 사랑이 됐으면 합니다.”
어느새 수업은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다.
아이들이 ‘먼저’ 만드는 뮤직스토리텔링
‘□’자로 연결된 자리배치. 4~5명의 모둠조마다 알 수 없는 유별난 조 이름.
‘박사와 아이들’, ‘A-Yo’, ‘TEN개월’, ‘Sick녀들’… 악보대 위에 올려진 A3 우드락은 일종의 광고판이다. 조별 이름의 특색, 한 학기동안의 다짐, 좋아하는 음악과 저마다의 음악에 대한 생각이 포스트잇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다. ‘음악은 친구’ 혹은 ‘에너지’라는 짧은 단어 속에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생동감이 느껴졌다.
최 교사는 “요즈음 우리 아이들은 휴대폰을 사용하여 자신을 찍고 찍히기를 원하죠. 이러한 심리를 이용해 효과적인 뮤직스토리텔링 학습기법을 시도해 봤어요. 음악을 들려주고, 그림을 보여주고 관찰한 것을 시각화하여 학생들과 함께 음악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발표하죠”라고 설명했다.
모둠조는 자발적으로 짜여졌다. 학기 초에 정한 학습프로젝트에 따라 한 편의 음악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학생들은 의기투합했다. 작품의 주제, 음악의 선정, 제작계획과 이끔이, 기록이, 생각이 등 역할 분담을 능동적으로 정하고 작품발표 계획서를 제출했다.
이번 차시는 모둠조별 음악이야기를 감상하는 시간. 한 학기 동안 완성한 작품을 소개하는 학생들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설렘이 느껴진다. ‘박사와 아이들’ 조에서 음악 선정을 맡은 ‘생각이’ 최세미 양은 “이 노래(J Rabbit의 힘든가요)의 가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말하면서도 그래도 가끔은 웃어보자며 활기를 북돋아 줍니다. 우리는 이 일상 속 인물을 ‘박사’로 설정하여 반복되는 학교생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라고 줄거리를 전했다.
곡은 대중가요가 주를 이룬다. 클래식, 뮤지컬, 영화음악, 전통 창극 등 제한을 두지 않지만 학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통로가 가요이고, 다른 장르에 비해 이야기로 표현하기 쉽기 때문일 터. 최 교사는 이 또한 ‘아이들이 음악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고 ‘자연스럽게 음악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 속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깊이 있게 만나게 된다’고 평가한다.
듣는 음악에서 글, 그림으로 표현하는 음악
최 교사는 음악을 가르치기보다 먼저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듣는’ 음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고 자신만의 느낌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학생들은 음악을 ‘활짝 핀 꽃 가운데 있는 나’로 그리거나 ‘감동하여 전율하는 내 심장’으로 표현한다. 하나의 음악을 들으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내면의 창의력과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힘을 키우고 있다.
“음악을 만들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각자의 다양한 특성을 이해하면서 서로 배려하며 격려하고 협동하는 마음을 갖게 되죠. 음악적 경험을 구체화하면서 상상 그 이상의 창의력이 발산되는 것 같습니다.”
수업 내내 모둠별 작품을 감상하는 학생들의 눈빛은 진지했다. 중간중간 옥구슬처럼 까르르 웃는 소리는 따뜻했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음악실 가득 서로를 응원해주는 박수소리는 뜨거웠다.
놀라운 것은 6반 학생들이 표현한 음악이야기마다 공통된 하나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박사와 아이들’이 말하고자 했던 서로에 대한 위로나 ‘TEN개월’의 작품처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표현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한 편의 음악이야기를 통해 ‘사랑’을 배우고 ‘배려’를 익힌다. 그것이 최 교사가 말하는 음악의 힘, 음악교과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1인 1악기 예산확보를 위한 홍보와 네트워킹
최 교사는 1인 1악기 연주와 음악동아리 활동처럼 ‘음악하기’에 중점을 두면서 학생들이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음악활동의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예산확보를 위해 움직였다.
지난해 각종 공모전과 지역예산 신청을 통해 받은 지원금이 6,500여 만원.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도교육청, 지역사회의 자원을 십분 활용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먼저 클래식 기타를 학교예산으로 32대 들여왔고, 인근 학교와 물품전환을 통해 가야금 7대를 얻었다. 이후 아산시 1인 1악기 신청공모제를 통해 20대를 추가로 지원받았다.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열망을 채워주기 위해 전문 강사도 확보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공모신청에 당선되어 국악교육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는 전문강사를 지원받아 학생들을 함께 지도하고 있다.
현재 충남외고에는 10여 개 소그룹 음악동아리가 활동한다. 음악실 한쪽엔 악기레슨과 음악동아리 주간 일정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오케스트라, 국악퓨전, 아카펠라, 밴드 등 동아리들은 음악실, 시청각실, 중앙현관 등 학교 곳곳에서 작은 음악회를 연다.
“우리 아이들은 공연하고, 감상하며 행복해한다.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열리는 음악회는 공연하는 아이들도, 감상하는 아이들도 서로 기뻐하고 존중해주며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이번 학기 마지막 음악수업을 마친다는 소리에 학생들은 “내 인생의 마지막 음악수업”이라 탄식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특수목적고인 충남외고, 비교과 활동이라 더욱 치부될 수 있는 음악수업이지만 최 교사의 바람처럼 ‘학생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하여 음악적 가치를 인식하고 생활화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려는’ 면면이 50분의 짧은 수업시간 동안 응축되어 살아났다.
뮤직스토리텔링으로 학생들의 정서지능을 키워주고, 창의·인성 교육의 내적 토대를 만들기 위한 최혜향 교사의 다음 수업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