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서울 연서중학교(교장 박춘구) 교문 앞엔 교장, 교감 선생님과 생활지도부 교사 3명이 모여 있다. 곧이어 안전지도부 학생 10명도 노란 어깨띠를 둘러매고 등장한다. ‘연서 힐링’ 프로그램 중 하나인 ‘모두가 반가운 아침 마중’을 위해 모인 인원으로 2011년 3월 박 교장이 부임한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볼 수 있는 훈훈한 아침 풍경이다.
“아침 업무를 보통 교내 시설 확인으로 시작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교장이 할 수 있는 더 유익한 일이 있을 거 같았어요.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구상하다 ‘아침 마중’을 떠올렸죠. 지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하며 짧은 시간이나마 ‘소통’을 시도하는 겁니다.”
기존 교문지도의 규제와 단속에서 벗어나니 효과는 놀라웠다. 2~3개월이 지나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장의 얼굴을 인식하게 되었고, 학생들이 먼저 다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한 번은 한 학생이 와서 선생님이 차별 대우하는 거 같아 속상하다고 얘기를 풀어놓더군요. 맞장구 쳐주면서도 선생님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고 넌지시 얘기했죠. 며칠 후 그 학생이 찾아와서는 자기가 선생님을 오해했었노라고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하더라고요.”
교사들은 등교하는 학생들의 안색을 살피며 부모처럼 따뜻한 손길로 옷을 여며주고 친구처럼 다정하고 장난스럽게 인사를 나눴다.
하루 10분의 기적
오전 8시 30분, 1학년 8반 학생들은 연서중에서 자체 제작한 인성교육자료집으로 ‘아침 10분 좋은 글 읽기’를 한다. 3분 정도의 읽을거리를 이용해 학생들끼리 자유롭게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전교생 참여 프로젝트’다.
황승기 교사는 “오늘 소주제는 ‘선행의 실천’으로, 선행이란 거창한 사회공헌만이 아니라 가까운 주변에 작은 친절을 베푸는 행동으로도 가능하다는 걸 짧은 글을 통해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안창원 교무부장은 “이런 시간이 수업 전 사전 준비 운동으로 면학 분위기를 조성할 뿐만 아니라 글 읽기 지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책 읽는 습관을 기르게 된다”고 전했다.
연서중은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회복시켜 행복한 학교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중 ‘독서 힐링 캠프’는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올해도 희망 학생 80명을 뽑아 여름 방학 중 2박 3일로 캠프를 다녀왔다. 2000만 원에 가까운 비용은 은평구청의 예산 지원으로 충당돼 학생 부담은 발생하지 않았다. 각 학년이 2회씩 총 6회의 토론·논술 기초교육을 받으며 캠프에서는 독서 골든벨, 별빛 백일장, 초대 작가와의 대화, 토론 독후활동 등이 펼쳐진다. 매일 아침 좋은 글 읽기와 독서 힐링 캠프를 통해 아이들은 올바른 독서 습관과 독서를 생활화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으며 문제 해결능력은 물론 의사소통 능력도 신장되었다.
땅이 어루만지고 하늘이 꿈을 키워주는 아이들
‘텃밭 가꾸기’는 이미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유명세를 탄 연서중의 효자 프로그램. 환경과학부 부장 허광신 교사가 작년 생활지도부장을 맡았을 때 학교 부적응 학생들과 ‘소통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그 녀석들이 순순히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나설 리 없었죠. 일 끝나면 자장면을 사주겠다고 미끼를 던졌습니다. 처음엔 땀 흘려 땅을 일구고 나서 먹는 꿀맛 같은 자장면이 목적이었겠지만 나중엔 쑥쑥 자라는 상추, 배추, 무가 아이들의 마음을 전부 차지해 버렸죠.”
농사 경험이라고는 전무했던 아이들이 그 재미를 알고 정을 붙이기 시작하자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각’은 일상인데다 ‘수업 중 이탈’은 취미, 친구들과 싸우며 벌점 120점을 차곡차곡 쌓았던 아이가 상점으로 돌아섰다. “노력의 결실로 선생님한테 인정받고 나니 자신감이 생긴 거 같더군요.”
아이들은 5월에 상추를 수확해 교내 등나무 교실에서 삼겹살 파티를 열고 실한 무와 배추를 뽑아 선생님한테 선물로 드렸다. 올해 3월에는 교장을 비롯한 교사 10명이 부적응 학생 20명과 함께 강화도로 캠프를 다녀왔다. 캠프에 참여한 안창원 교무부장은 “교실 안의 학생과 교실 밖에서 만난 학생은 다르다. 교실에서 ‘뾰족하게’ 굴던 학생들도 밖에 나가면 한결 유해진다. 이런 학교 밖 프로그램을 통해 선생님과 쌓인 친밀감이 교실에 와서도 연결된다”며 인성교육을 할 때는 체험중심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춰야 함을 강조했다.
연서중은 땅의 기운과 더불어 하늘의 별도 좋은 교육 도구로 사용한다. 지난해 10월 4일 학습부진학생(배우미)과 학습우수학생(이끔이) 80명이 과학과 교사 6명과 1박 2일 여정으로 다녀온 ‘함께 star가 되는 별자리 캠프’가 그것이다. 송암스페이스센터에서 진행된 이 캠프는 천체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서로 도와주는 과정을 통해 우정을 쌓고 서로가 든든한 동반자임을 인식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박 교장은 “비용이 많이 드는 프로그램이지만 그만큼 얻어 가는 것도 많다. 부모들과 이런 체험활동을 할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은 이곳에서 잘 대접받으며 꿈을 키운다. 그렇게 누군가를 대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간다”며 프로그램에 대한 강한 애정을 내비쳤다.
인성교육에 한목소리 내는 교사들
연서중은 팀장인 교감을 중심으로 14명의 교사가 인성교육 실천 TF팀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교무부장·생활지도부장·진로상담부장·창의인성정보부장·예술체육부장 등 각 분야 교사들이 인성교육의 내실 있는 운영을 위해 머리를 맞댄 것이다.
김영선 교감은 “아침 10분 좋은 글 읽기의 교재인 ‘좋은 글 좋은 생각’의 제작은 물론 다양한 인성교육 실천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추진하는 게 TF팀의 역할이다.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프로그램 운영과 개발을 위해 모든 교사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우리 학교는 열악한 주위 환경과 함께 생계형 맞벌이 가정의 자녀가 다수이고, 기초 생활수급자, 조손가정, 한 부모 자녀, 청소년 보호시설에서 거주하는 학생 등 경제적 곤란자 자녀 비율이 매우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바람직한 행동양식을 습득하도록 하는 데에 많은 노력과 애정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학생 눈높이에서 소통하는 능력을 함양시키기 위해 전 교사 감정코칭 연수(직무연수 15시간)를 의무화했다. 또 ‘2인 담임제’, ‘학년중심제’를 실시, 교원 업무 경감을 통해 학생 생활지도에 전념하게 함으로써 상담활동을 강화하고 사안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성과를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