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미국 뉴욕에 출장 갔을 때 점심 시간에 신기한 풍경을 봤다. 점심 시간 뉴욕 맨하튼 근처 샌드위치 가게 마다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궁금해 물어보니, 맨하튼 직장인들은 점심땐 샌드위치로 간단히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대신 저녁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모여 몇 시간씩 맛있는 음식을 즐긴다고 한다. 이른바 ‘스몰 런치, 빅 디너(small lunch, big dinner)’다. 회사 동료와 저녁을 먹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저녁은 가족과 먹는 것이 원칙인 문화다. 자녀가 있는 직장인들은 ‘빅 디너’를 즐기는 시간 동안 아이들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체코 프라하에 가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체코 직장인들의 점심 시간이 짧다. 사기업이든 관공서든 점심 시간은 딱 30분이라고 했다. 짧은 점심시간 동안 샌드위치같은 간단한 음식을 먹고 낮동안 집중해서 일한 다음 일찍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다. 저녁은 대개 가족과 먹는다.우리 나라는 어떤가. 관공서와 기업들이 모여있는 서울 광화문 인근에 있으면, 11시 30분이 좀 넘으면 진기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높은 빌딩에서 끊임없이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여기 빌딩에 들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수백명이 한꺼번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가 많다. 이때부터 광화문 근처 레스토랑은 자리가 없이 꽉 찬다. 누구랑 약속이라도 하려면, 며칠전 예약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십명이 기다리는 김치찌개집 맨 뒷줄에 서서 수십분을 기다려야 한다. 점심 시간은 일찍 시작하고 늦게 끝난다. 많은 직장인들이 1시가 다 되어 겨우 식당에서 일어선다. 그때쯤엔 테이크아웃 커피점들 앞 줄이 길어진다.긴 점심 시간 후엔 금방 저녁이 오고 빌딩 불은 꺼질 줄 모른다. 저녁은 또 동료와 함께 회사 앞 식당을 찾아간다. 밥을 먹으면서 술도 한 잔하고 회사에 다시 들어가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둘러앉아 매일 저녁 밥을 먹는 가정이 몇 곳이나 있을까 싶다. ‘밥상 머리 교육’이 실종된지는 오래고, ‘식구(食口)’라는 말조차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얼마 전 정부 고위 관료도 이 얘기에 찬성했다. 그는 집에 매일 늦게 들어가니 애랑 밥 먹을 시간도 없고, 주말에야 겨우 얼굴을 보고 밥상머리에 앉으면 왜그런지 잔소리만 하게 된다고 했다. “오랜 만에 보니까 트집잡을 것만 보여요. 머리는 왜 그렇게 깎았느냐,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느냐, 밥 먹는 버릇은 그게 뭐냐. 아이라고 좋겠어요? 집에도 잘 안오는 아빠가 오랜만에 만나서 잔소리만 해대니.” 이런 아빠가 대한민국에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일하고 싶은 여성, 날개를 달아주자’라는 기획 시리즈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고학력 여성들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가 대한민국인데, 그 똑똑한 여성들 상당수가 30대가 되어 결혼하고 애 낳으면 일을 그만두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하나하나 취재하다보니, 여기에도 오래 일하는 문화가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야근을 자주 하고 필요할 때 쉬지 못하니 아이가 아프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견디다못해 아예 회사를 그만둬버리는 경우가 많다. 학교 모임이나 엄마 모임에 못가니까 정보에는 어둡고 전업 주부들과 어울리지 못해 ‘왕따’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저학년일수록 엄마들 관계가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점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여성들도 여럿 만났다. 고학력에 대기업을 다니다 아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한 여성은 “9시 출근·6시 퇴근만 가능해도 아이 키우면서 회사 잘 다닐 수 있겠다”고 말했다. 매일 점심 시간 광화문을 지날 때마다, 우리 나라의 근로 문화에 대한 생각을 한다. 긴 점심 시간을 줄여 낮동안 압축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문화만 정착이 되어도 여러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여성들의 경력 단절 문제 뿐 아니라 밥상 머리 교육도 부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개선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서울시교육청이 올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주 2회 가족의 날도 하나의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직원들이 ‘칼 퇴근’을 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사무실 불을 다 꺼버려서 일을 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한 직원은 “처음엔 좀 적응이 안됐는데, 이제는 빨리 퇴근하기 위해서 낮에 더 열심히 일한다”고 말했다. 이런 제도가 정착되면, 낮에 효율적으로 일하고 저녁엔 일찍 퇴근해 가족들과 보내는 문화도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김연주 부경대 영어영문과를 졸업하고 2006년 조선일보 입사했다. 사회부, 국제부, 대중문화부 등을 두루 거치며 내공을 쌓았다. 2014년 현재는 사회정책부 교육팀 소속으로 교육현안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유지하며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