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백영고등학교는 교육현장에서 ‘삼투압 현상’을 실현하고 있다. 다양한 학습프로그램을 도입해 소수 상위권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 조성에 힘쓰면서 이를 자극제로 삼아 중하위권 학생들의 학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명규 교장은 “특목고와 자사고가 생겨나면서 일반계 고등학교가 존립 위기를 겪고 있다”며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학습모델을 개발하고, 경쟁 아닌 협동으로 실력을 쌓고 함께 어울리는 학교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끌어주고 밀어주며 성적향상
여느 일반계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입학생 중 중하위권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큼에도 백영고는 매년 우수한 대학진학률을 자랑한다. 이는 중하위권 학생들의 실력향상을 위한 백영고 교사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학습 프로그램으로 방과후 학교 ‘도약반’과 ‘멘티-멘토 시스템’이 있다. 방과후 학교 ‘도약반’은 학생의 생활 전반을 밀착 관리하는 사교육 시스템을 적극 벤치마킹했다. 반 개설에 뜻을 모은 4~5명의 교사들은 성적 향상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은 자기통제력이 약하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도약반’ 아이들은 매일 오전 7시 30분에 등교해 쪽지시험을 보고 방과 후에는 국어, 영어, 수학을 중심으로 반복학습을 한다. 수업은 팀티칭으로 이루어진다. 조종연 부장교사는 “반복학습을 통해 학업에 대한 자기효능감을 높여 자기주도 학습이 가능해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1년간 꾸준히 ‘도약반’에서 공부한 아이들 중 두 명은 성적이 향상돼 ‘심화반’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 부장교사는 “1학년 말 성적이 수학 53%, 영어 24%였던 아이가 2학년 1학기에 수학 8.8%, 영어 1.6%까지 성적을 올려 교사들도 놀랐다”며 “생활습관을 개선해 절대적인 학습량을 늘리고 정기고사 2주 전 부모님 앞에서 목표를 정해 발표하도록 함으로써 목표의식을 높이는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교사들이 학생의 학습습관을 관리하면서 효과가 가시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올해 들어 백영고 교사들은 자기주도 학습을 위한 야심작을 내놓았다. 2~4명의 학생이 모여 서로 돕는 학습동아리 ‘멘티-멘토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이다. 오상길 교감은 “학생들이 아는 것을 직접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는 것’과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돼 학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동급생끼리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경쟁이 아닌 협동을 통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인성교육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멘토링 프로그램’은 2학년을 대상으로 한 모집공고에 140여 명의 학생이 지원해 예상보다 더 큰 호응을 얻었다. 교사들은 멘토링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자기주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교내 가용 공간을 배정해주고 주간 학습결과를 체크하는 등 최소한의 도움만 주고 있다. 활동을 열심히 한 학생들에게는 ‘불계공졸’, ‘우공이산’ 상을 수여할 계획이다. ‘불계공졸(不計工拙)’ 상은 성적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최선을 다한 학생에게 주는 상이다. ‘잘되고 못되고를 가리지 않는다’는 추사 김정희의 말을 빌렸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은 ‘어떤 일이든 꾸준히 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음’을 이르는 말로 성실히 공부해 성적을 올린 학생에게 주어진다. 백영고는 2학년 학생들의 성원에 힘입어 2학기부터 예산을 따로 책정해 전 학년으로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다.
어울림의 문화
백영고 학생들은 성적향상에 노력하는 한편 교과외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한다.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해 백영고에는 스쿼시부, 과학문화체험부, 문예창작부, 방송부 등 개설된 동아리만 61개다. 매년 11월 열리는 동아리 발표제는 교사와 학생들 모두가 어울리는 화합의 장이자 학생들이 숨겨진 끼를 분출하는 무대다. 양한주 학생(2학년)은 “성적도 좋지 않고 눈에 띄지 않던 친구가 발표제에서 뛰어난 노래 실력을 발휘해 모두를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시험스트레스도 풀고 좋다”고 말했다.
한편, 백영고는 2012년부터 호주 Tyndale 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어 학생들이 국제교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올해 하반기에도 Tyndale 학생 30여 명이 백영고 방문을 앞두고 있다. 특별한 손님맞이를 위해 백영영어홍보동아리와 희망자로 구성된 준비단은 Tyndale에서 오는 외국인 친구와 1:1로 짝을 지어 한국음식 만들기 체험과 인근 문화유적지 탐방을 할 계획이다. 이 교장은 “중하위권 학생들도 학교에서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교과외 활동에 참여하면서 성적과 상관없이 모두 하나 되어 어울리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영고는 교사들이 학생의 생활에 밀착해 손수 학습습관을 개선하고 함께 어울리는 문화를 조성하는 등 사교육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에서 공교육의 가치를 끌어내고 있다. 경기권에 안양·경기·과천외고 등 특목고가 연이어 설립되고도 백영고가 ‘명문 일반계 고등학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저력이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