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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의 고단함

통제되지 않은 감정이 무방비로 노출되는 순간 위험은 시작된다. 마음속에 묵혀뒀던 상대방을 향한 오랜 분노와 감정의 앙금은 마침내 말실수를 부르고, 자신은 누군가의 과녁이 되기 일쑤다. 그렇다고 안전을 위해 무미건조한 말만 할 수도 없는 법. 말하는 동물의 삶이란 참으로 피곤하고 고되다. “喜怒在,心, 言出於口, 不可不愼.” 채백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공자는 말은 어눌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는 사람을 선호했다. 때문에 말이 어눌하다는 의미를 가진 ‘눌언(訥言)’이란 단어는 꼭 나쁜 뜻만은 아니었고 오히려 칭찬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공자가 무조건 과묵한데다 일만 부지런히 하는 사람을 선호했던 것은 아니다. 비록 말수는 적고 어눌하더라도 요긴한 말은 해야만 했는데, 그 말의 내용이 사리에 적중하는 것을 높이 쳤다.
그렇다면 공자가 『논어』에서 언급한 ‘言必有中(말을 하면 반드시 사리에 적중한다)’은 어떤 뜻이었을까? 그건 우선 군더더기 없는 말을 의미할 것이다. 내용과 무관한 장식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전달하려는 취지만을 간결하게 제시하는 담백한 말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적중한다는 표현에는 과녁의 중심을 꿰뚫는다는 뜻이 전제되어 있다. 상대방이 마음속에 그려놓은 과녁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말, 그것은 듣는 사람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 사태의 핵심을 들춰 그 아래편에 감춰진 문제를 속 시원히 해명하는 말일 것이다.
결국 상대 마음의 중심을 관통하는 간결한 말이란 상대가 처한 상황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그럼에도 그 상황을 이리저리 에둘러 향유할 의도가 배제된 진실한 애정을 전제한다. 상대가 직면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말은 의미 없이 겉돌거나 장식적인 인사치레에 머물 것이요, 상대의 상황을 간파했다 하더라도 그 상황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 상황을 은연중 즐기려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설화(舌禍)를 부르게 된다.

【원문】
蔡伯喈曰, “喜怒在,心, 言出於口, 不可不愼.”
『明心寶鑑』「正己篇」


【번역문】
채백개가 말했다. “기쁨과 노여움이 마음 안에 있다면 말을 입 밖에 낼 때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백개는 후한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채옹(蔡邕)의 자(子)다. 그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대표적 간웅인 동탁 밑에서 관료 생활을 하며 혁혁한 공을 세운 명사이자 후한 말기의 난세 속에 온갖 세파를 겪어낸 생존의 달인이기도 했다. 간신과 간웅이 난무하던 당시는 말 한마디까지 신중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채옹은 조정에서 말을 일삼는 관료로서 특히 언어에 민감해야 했다. 어떤 전략이 필요했을까?
난세엔 아예 말을 않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아니, 난세가 아니더라도 말은 오해의 원천이므로 말수를 줄이는 게 항상 유리하다. 그러나 말없이 산다는 건 불가능하므로 가급적 지혜롭게 말을 해야 했을 터다. 채옹은 말이 낳을 설화를 줄이기 위해 특히 자신의 마음에 희로애락 같은 격한 감정이 생길 때 하는 말을 신중히 했다.
가장 안전한 말은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지 않도록 간결하게 정돈된 말이겠지만 그런 말에는 영양가가 없다. 그런 식으로는 큰일을 못한다. 따라서 말은 간결하지만 상대 마음을 적중시켜야 한다. 상대가 처한 상황, 상대의 욕망, 그리고 상대의 의도까지를 고려해야만 적중시키는 말을 할 수 있다. 가장 낮게는 아첨의 말에서부터 높게는 은미한 직간에 이르기까지 적중시키는 말은 적어도 말하는 자를 해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런 적중능력이 혼미해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말하는 자의 개인적 감정이 개입하는 순간이다. 기쁨과 즐거움의 감정은 말하는 자의 냉정을 잃게 하고 말을 과장되거나 비뚤어지게 만든다. 무엇보다 말하는 자의 과잉된 감정은 상대방 마음에 그려진 과녁보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과녁을 맞히도록 부추긴다. 마음속에 묵혀뒀던 오랜 분노, 상대의 불행에 고소해하는 이기적 희열 등의 감정은 마침내 말실수를 부르고 자신을 누군가의 과녁이 되도록 만들 것이다.
상대방 입장에 집중하며 말해야 하는 삶은 몹시 피곤하며 자신의 속 깊은 감정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진정 즐겁다. 그래서 술자리에선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비난이 난무하곤 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감정이 특별히 과열되는 순간만큼은 혀를 질끈 물고 언행에 조심할 일이다. 난세의 생존자 채옹마저도 동탁이 죽었을 때 슬픔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가 정적의 모함에 걸려 죽임을 당했다. 자신을 발탁해준 동탁의 은혜에 대한 일말의 유감 때문이었을 테지만 통제되지 않은 감정이 무방비로 노출되자마자 그토록 신중했던 채옹마저 죽음을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말하는 동물의 삶이란 참으로 고되고도 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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