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이 되면서 처음 해보는 교내 봉사활동에 아이들은 무척 설레고 들뜬 모습이었다. 운동장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를 무슨 보물이라도 찾은 것처럼 여러 명이 한달음에 달려가 서로 주우려고 야단이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쓰레기도 봉사활동의 임무를 맡으니 달리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준상이가 심상치 않은 물체(?)를 주워왔다.
“선생님, 야외 학습장에서 이거 주웠어요.” “그런데, 이게 뭐예요?” “뭐야, 뭐야.”
금세 아이들이 모여든다. 길이는 15cm쯤 되고, 솜털이 보송보송한 초록색의 가느다란 물체. 아이들의 눈엔 호기심이 가득하다. “야, 칼 같다.” 준우가 이리저리 칼 휘두르는 흉내를 낸다. “이거 혹시 콩꼬투리 아냐?” 민서의 말에 아이들은 너도나도 “그럼 한번 벌려보자”며 달려들었다. 콩이라고 하기엔 꽤 크고 두툼한지라 아이들은 애를 먹는 듯했다. 한 번에 벌어지지 않아 여러 아이의 손을 거친 끝에 드디어 꼬투리가 벌어지자, 이번엔 꼬투리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서로 보려고 아우성이다.
“어, 콩이 되게 작네.” “연두색이다.”
아직 영글지 않은 등나무 꼬투리라고 설명해 주자, 아이들은 그제야 야외 학습장에 있던 넝쿨이 등나무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봉사활동 중에 우연히 꼬투리를 관찰하게 되면서 아이들은 학교 화단에 핀 꽃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선생님, 이거 무슨 꽃이에요?” “(신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선생님, 꽃 속에 또 꽃이 있어요.” “어, 진짜네. 예쁘다.” “선생님, 혹시 하나는 진짜 꽃, 하나는 가짜 꽃 아니에요?”
백일홍을 보고 그렇게 추측을 한 아이들이 놀라웠다. 실제 백일홍은 벌을 유혹하기 위한 화려한 꽃잎과 작은 별 모양의 진짜 꽃을 가운데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깨쳐 가는 아이들이 기특하고 예뻐 보였다.
그런데 진짜 감동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와 아무리 기다려도 준상이와 몇몇 남자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늦게 교실로 돌아온 지원이에게 물어보니 준상이가 등나무 꼬투리에서 나온 콩(?)을 화단에 심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잠시 후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온 준상이와 몇몇 아이들은 “선생님, 내일부터 매일 화단에 가서 물 줄 거예요”라며 대단히 뿌듯해 한다.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싹이 날 거라는 기대감에 빠져 있는 아이들에게 아직 씨앗이 영글지 않아 심어도 싹이 나지 않을 거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호기심과 따뜻한 관심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얘들아, 선생님이 너희들 마음속에 뿌려진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매일매일 물을 줄게.’ 아이들 몰래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