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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래요”

콩알들과 달콤한 샘의 만남

시골 작은 학교 우리 반 아이들은 13명입니다. 13명 아이들 모두 참 많은 사연들을 갖고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 조손가정, 한 부모 가정 등 아이들 교과서에 나오는 다양한 가정의 형태를 다 갖고 있습니다. 그 만큼 아픔도 많이 겪은 아이들입니다. 오늘도 아이들이 돌아간 자리를 보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돕니다. 빈 의자에 천진난만한 우리 아이들을 하나하나 앉혀 봅니다. 작은 새들처럼 나를 보고 하루 종일 종알거렸던 모습들이 지나갑니다.

아이 1: “잘 생긴 우리 찬호 잘하고 있는 거지?”
오늘 점심을 먹고 오니 우리 반에서 잘 생긴 찬호(가명)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세가 이상했습니다, 들어보니 오늘 눈싸움하느라 양말이 다 젖었다고 해서 내 양말을 겨우겨우 달래서 신겨주었는데 여자 아이들이 이상한 것 신었다고 놀렸나 봅니다. 선생님의 고마움에 벗을 수도 그렇다고 계속 신고 있을 수도 없어서 발을 감추고 울고 있었습니다. 이런 또 눈물이 핑. 왜냐면 우리 찬호는 부모님의 이혼 아버지의 재혼을 겪으면서 너무 많은 아픔을 갖고 있었기에 작은 일에도 잘 울고 나도 괜히 안쓰러워 편을 듭니다.

내 책상 위에는 어른 여자 양말 한 켤레가 얌전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만져보니 그 작은 발을 꼭 감싸고 있었는지 아직 따뜻합니다. 마음으로 웁니다. ‘신고 가지.’ 맨 발로 뚜벅뚜벅 걸어갔을 찬호가 떠오릅니다. 1학년 때부터 주의 집중을 전혀 못하고 교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왜요?”하며 싫은 티를 달고 살던 아이였습니다. 이런 아이 앞에 나는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잘생긴 우리 찬호입니다.

처음에 그 아이의 아픔을 모르고 혼냈는데. 그 짧은 시간이 참, 미안합니다. 장난 심한 찬호에게 매일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생긴 우리 찬호 잘하고 있는 거지?” 한 글자도 쓰지 않고 장난만 하던 아이는 해 맑게 웃으며 말합니다. 지금 할게요. 나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던 아이는 이제 정말 사랑 많이 받고 있습니다.

아이 2: “우리 예쁜 은영이 내일 또 만나자. 사랑해.”
조금만 화가 나면 교실을 나가버리거나 바닥에 누워 버리는 우리 은영(가명)이. 1학년 때 작은 칼을 갖고 와 아이들을 위협해 학교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모두들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런 아이 내 교직 생활에 처음 본다”고.

2학년 때 나의 아이가 되었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수업 시간에 소리 지르기, 나가버리기, 친구들 괴롭히기 등. 부모의 이혼 엄마의 재혼 부모님과 떨어져 무뚝뚝한 할아버지와 살면서 정이 부족한 아이였습니다. 날마다 얼른 자고 학교에 오고 싶어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학교 오면 반대로 행동했습니다. 내가 다가가면 눈을 말갛게 뜨고 “음, 음, 음”하며 안깁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선생님, 사랑해요” 지금은 수업시간에 잘 듣고 모둠 활동에 참여해서 자신의 의견도 얘기합니다. 은영이를 자주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기 전 몰래 불러 과자를 가방에 넣어 줍니다. 물론 안아주며 말합니다. “우리 예쁜 은영이 내일 또 만나자. 사랑해.” 아마도 내가 살아오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한 사랑해 말 보다 우리 은영이에게 1년 동안 한 횟수가 더 많을 겁니다.

아이 3 : 눈물이 너무 많은 다문화 가정의 우리 가희
다문화 가정인 우리 가희(가명)는 눈물이 너무 많습니다. 울보 선생님보다 더 많이 웁니다. 필리핀 어머니는 아버지께 늘 꼼짝없이 설설 깁니다. 나를 처음 만나던 날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키밖에 되지 않는 작은 가희 어머니는 어설픈 한국어로 나에게 자신의 아이를 많이 사랑해 달라고 부탁하며 웁니다. 울보 선생님은 그냥 이유 없이 또 같이 웁니다.

우리 아이들은 왜 이리 힘들고 아픔을 가진 부모님들을 모두 만났을까? 한 명은 가희 어머니는 나를 보면서 소리 지르고 물건 던지는 가희 아버지를 생각하며 자신의 아이와 자신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나봅니다. 아, 정말 많이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래, 이 아이들 학교에 오면 자신들이 너무나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게 해주자.”

첫 번째 시골편지 “울보 선생님은 자꾸 웃습니다”
학생들의 생활지도. 그 길은 교사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이론이 정립되지 않아도 지식적인 면이 부족해도 답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 개개인이 가진 다름을 이해하고 기다려 주고 응원해주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출장을 갔었는데 다음 날 아이들이 쫓아와 매달립니다. 점심 먹을 때 선생님 없어서 울었다고. 아이들과 함께 먹으려고 사온 빵 봉지가 이상하게도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울보 선생님은 이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밥도 참 많이 먹습니다. 급식실에서 우리 2학년이 제일 많이 먹는다고 통계치를 냅니다. 너무 많이 놀아서 그런가 봅니다.

요즘은 아이들과 아침마다 강당에서 함께 놉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모두들 외투를 벗고 볼이 빨갛게 되어서 소리 지르고 웃고 난리입니다. 노는 것보다 더 아이들을 즐겁게 해줄 게 있을까요? 동대문 놀이, 긴 줄 돌리기 등 나이 먹은 선생님도 함께 뜁니다. 그리고 웃습니다. 아이들이 그만 웃으라고 눈총 줄 때까지 웃습니다. 잘 생긴 민철(가명)이가 슬며시 다가와 말해 줍니다. 선생님이 자꾸 웃어서 민철이가 울려고 하니 그만 웃으라고 충고합니다. 눈빛을 교환하고 나는 그만 웃습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또 웃습니다. 아이들이 따라 웃습니다. 그리고 나는 자꾸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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