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디지털교과서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디지털교과서를 통해 이러닝(e-learning) 관련 산업들을 활성화시킬 수 있고, 이것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 ‘정말 그럴까’하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교과서는 공공재이다. 머지않아 정부는 몇몇 관련 업체에 지침과 예산을 주고, 디지털교과서를 만들어 달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정부로부터 제공받은 디지털교과서를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얼마나 큰 경제 발전 효과가 나타날지 솔직히 의문이 앞선다.
어떤 사람들은 “교육콘텐츠 오픈 마켓을 만들자! 그럼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교육콘텐츠만 취급하는 웹 사이트를 만들면 좋겠다고 상상하는 것인데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에 그칠 것 같다. 만약 정말 될 일이었다면 스마트기기 보급률이 높고, 사교육 산업이 잘 발달한 우리나라에 이미 등장했을 것이다. 지난 2012년에 국내 대기업에서 ‘○○허브’라는 교육콘텐츠 사업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요즘 ‘○○허브’라는 문구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면 2012년, 2013년 글만 보게 된다. 정부도 지난 2011년에 교육콘텐츠 오픈 마켓을 만들어 보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었지만, 말 그대로 공언에 그쳤었다. 결국 디지털교과서와 서비스산업 발전은 큰 관계가 없어 보인다.
디지털교과서와 서비스산업 발전 ‘교실에서 디지털교과서를 탑재한 개인용 디지털 기기를 모든 학생이 사용한다.’ 이는 디지털교과서 사업의 중요한 전제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지난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디지털교과서 사업에 매년 수십억 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180억 원 가까이 쓴 해도 있었다.
정부는 스마트교육 추진 전략을 발표하면서 ‘2015년까지 모든 학교, 모든 학생이 디지털교과서를 탑재한 태블릿 PC를 사용하고, 클라우드 시스템을 도입하고, 교육 콘텐츠 오픈 마켓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2조 2,250억 원의 예산투입을 약속했다. 여기에서 특히 짚어봐야 할 점은 2조 2,250억 원 중에 학생들이 사용해야 하는 태블릿 PC 구매비용은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정부 관계자에게 물어보았다. 왜 그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이 계획을 세운 건지 말이다. 그 질문을 한 게 2012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는 교육부가 스마트교육으로 교육혁명을 이루겠다며 홍보하던 때였다. 빨간 산타클로스 모자를 쓴 교육부 장관이 기자들 앞에서 태블릿 PC를 들고 광고모델처럼 사진도 찍었다. 전국 곳곳에서 스마트교육 콘서트가 열렸고, 선생님들이 영화관에 가서 강연도 듣고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직원이 하는 스마트교육 설명회도 이어졌다. 그때 스마트교육 콘서트 장에서 교육부 당국자는 자신 있게 말했다. “이제 곧 스마트 교육 혁명 시대가 올 것이고 2015년이 되면 우리나라 모든 학생들은 태블릿 PC를 가지고 다닐 것”이라고 말이다. 정부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2018년 이후 교실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본다.
수업 종이 울리고 재잘거리던 초등학생들이 자리에 앉습니다. 개인별로 디지털 기기를 꺼냅니다. 여기저기서 각기 다른 시동음이 울립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묻습니다. “얘들아, 다 켜졌니?” 아직 아니랍니다. 모든 학생이 부팅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때 한 친구가 손을 듭니다. “선생님, 배터리 나갔나 봐요.” 서랍에 있는 서책형 교과서를 꺼내서 사용하라고 합니다. 쉬는 시간마다 충전을 해야 할 테니 교실에 전원 콘센트가 좀 많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수업 내용 중에 증강현실 체험이 있는데 노트북 학생들은 어쩌나 싶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수업을 하는 학생들이 인상을 씁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글자가 잘 안 보인다고 합니다. 태블릿 PC 가져온 애들은 편한 것 같습니다. 보기도 그럴듯합니다. 수업을 진행하는데 노트북 가져온 학생들이 자기 모니터는 터치스크린이 아니라며 답답해합니다. “교실은 실험공간처럼 완전히 통제될 수 없습니다. 인프라 운영이 초래하는 자질구레한 문제들이 수업을 괴롭힐 겁니다. 액정이 깨져서 학부모들까지 학교에 오는 일이 생길 것 같고, 학생들은 태블릿 PC 브랜드로 사는 형편들이 구분될 것 같기도 합니다. 무선망이 제때 작동하지 않아서 한숨 쉬며 기다리는 일이 생길 것 같고, 정부에서 제때 업데이트하지 못한 기기별 소프트웨어가 수업을 지연시킬 수도 있겠지요. 수업 중에 “얘들아 잠깐만. 인터넷이 잘 안되네. 아, 뭘 설치해야 한다네. 잠깐만. 잠깐만.” 하는 그런 상황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