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십년을 훌쩍 넘긴 일입니다.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한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일이 있어요. 초임 시절이었던 2005년, 학생들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모두 수학여행 이야기로 분주했던 5월의 화창한 어느 날 날벼락 같은 일이 생겼어요. 종교적인 이유로 수학여행에 참석할 수 없는 학생 한 명을 전담교사인 제가 2박 3일 간 독대하며 수업을 하라는 거예요. 첫 수학여행에 잔뜩 부풀어 있던 제게 찬물을 양동이채 퍼붓는 느낌이었죠. 평소 카리스마 넘쳤던 부장 선생님께 망설이면서 물었죠. “꼭 그래야 하는 거예요…?”
부장 선생님은 몹시 흥분하시며 “그라믄~내가 남을게, 니가 가라. 쥐방울만 한기 어데 말대답이고? 인사발령장에 잉크도 안 마른 것이! 내 참!”
교감선생님을 비롯해 여러 선생님들 앞에서 혼난 까닭에 비참하게 무너졌어요. 터지려는 눈물을 꾹 참다가 밖으로 뛰어 나왔답니다. 우리 딸 선생님 됐다고 기뻐하셨던 부모님 얼굴이 떠오르면서 서글픈 마음에 한참을 울었습니다. 며칠 뒤 부장님께 찾아가 사죄 드렸고 겉으로는 화해(?)의 국면이었으나 제 마음은 여전히 부장님을 미워하고 있었어요. 눈을 마주치기도 싫었고 회의 때 목소리를 듣는 것도 싫었죠.
미움은 조금씩 저를 갉아 먹었고, 그 때문에 많은 걸 잃었어요. 선배교사들은 강압적‧일방적이고 후배들은 무언의 강요를 받는 비합리적인 집단이라 치부하며 비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선배들에게 본받을 점을 보지 못했고 후배교사들은 능력‧열정에 비해 호봉만 낮은 불쌍하고 힘없는 존재라 생각했죠.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교실에서 나가기 싫었어요. 마음의 문은 점점 닫혀 내 교실, 내 아이들만 잘 가르치면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담장을 높게 쌓아 올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이들과 교실에서 행복하게 지내도 마음 한구석은 언제나 힘들었고 쓸쓸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상대가 아닌 나에게 독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죠.
우리는 한 해에도 수없이 다양한 아이들과 동료 선생님들을 만나지만 그들 모두가 한마음 일 순 없습니다. 크고 작은 심적 갈등도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되죠. 저는 여러분께 동굴 속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선배들은 후배교사들이 교실 문을 두드려주기를 기다려요. 반면 후배교사들은 선배가 찾아와 내 어려움을 해결해주기를 기다리죠. 하지만 이런 마음만으로는 어떤 상호작용도 발생하지 않아요. 먼저 다가서야 합니다. 고민을 이야기하고, 상황과 감정을 공유할 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플랫폼에 함께 서게 됩니다. 열심히 공부하려고 질문을 쏟아내는 아이들이 기특하고 예뻐 보이듯 선배들도 후배 선생님들의 질문을 목 놓아 기다릴지도 모릅니다. 한번만 경험해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고민을 털어 놓는 내게 얼마나 많은 위안과 용기를 주는 지를요.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선생님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그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사실도 덤으로 알게 될 거예요.
초임시절의 나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다면 옆에 계신 선생님 중 한 분이라도 찾아가 ‘나를 안아 달라’ 말하라고 전해주고 싶어요. 우리는 아직 어리고, 잘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요. 또 나를 두 팔 벌려 안아줄 선배는 그의 품을 내어줄 수 있어서 행복할 테니까요.
지난해 겨울쯤이었어요. 왠지 모를 이유로 아이들에게 많이 지친 저는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고뇌를 씹다가 모두가 로그아웃된 메신저를 보고 홀로 남아 계신 선배의 교실을 찾아갔습니다. 방과 후 부장을 맡고 계셔서 바쁘셨지만 책상 앞에서 요즘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이들 이야기, 수업 이야기, 업무 이야기에 가족 이야기까지 한참을 서서 이야기 하는 동안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지 조금씩 정리됐습니다. 흐트러지는 아이들이 밉기도 하고, 잘 이끌지 못하는 제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던 것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에 위안이 됐습니다.
또 정작 힘들었던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제 자신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됐죠. 아이들을 바라보는 제 시선과 너무 높은 기준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다섯 시간의 연이은 수업은 당연히 힘들고 지치는 일입니다. 수업 태도가 우수한데도 저는 아이들이 해낼 수 없는 일을 기대하고 있었던 거죠. 15년 가까이 아이들을 만나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선배와 잠깐의 대화에서 우연히 알아냈어요. 선배와 나는 마치 커밍아웃 하듯 자신의 치부를 솔직히 털어놓으며 오히려 치료를 받았습니다. 교사는 아이들의 잘못과 부족함을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꽃으로 이름 지어질 수 있도록 좋은 것만 봐주고 다가서는 아름다운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먼저 다가가세요. 선배들도 웃으며 맞아주실 거예요.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