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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공자 (2)

사상가, 학자 이전에 스승, 교육자였던 사람들의 이야기



논어가 논어인 이유

지난 시간에 스승 공자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최초로 ‘사제’라는 인간관계의 모형을 만든 사람이라는 걸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요. 네, 공자는 사제관계를 만든 사람, 스승입니다. 그런 교육자 공자가 생각하는 제자의 존재란 무엇이었을까요? 아니면 그가 원하는 제자의 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와 제자들의 대화를 보면 그의 제자상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런데 그에 앞서 텍스트의 이름부터 이야기해 보고 싶네요.

묵자, 맹자, 장자, 순자 등 우리가 흔히 고대 중국의 고전이라는 제자백가 시대 텍스트는 대부분 특정인의 이름으로 되어 있습니다. 관자나 한비자도 그렇고요. 그런데 유독 논어만 공자가 아니라 논어입니다. 도덕경도 있지 않냐 할 수 있지만, 도덕경은 노자로 많이 부르기도 하고 그 이전에 노자 자체가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설도 있어 경우가 다릅니다. 하지만 공자는 엄연히 실존인물이고 논어라는 텍스트는 공자라는 사람의 사상을 오롯이 담고 있는데도, 공자가 아니라 논어입니다.

논어의 뜻은 뭘까요? 한자 그대로 보시면 됩니다. 논(論)하고 어(語)한 책입니다. 인(仁)이란 가치에 대해서 논했고, 군자란 존재는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군자가 될 수 있는지, 군자의 인격상은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했고, 예란 무엇이고 음악이란 시란 무엇이며 왜 배워야 하는지 논했죠. 또 그것들에 대해 어(語)한, 말씀하신 책이지요.

스승의 이름, 특정 사상가의 이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논하고 어한 것들, 말의 편린들을 제자들의 기억에서 끄집어내 편집한 책이 바로 논어입니다. 제 생각에는 제자들이 굳이 스승의 이름으로 경전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논어라는 이름만으로 충분했다고 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논(論)보다는 어(語)라는 글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어(語)를 그냥 언어라는 말과 같이 쓰는 ‘말씀 어’라는 글자로 알고 있지요. 그런데 사실 어(語)에는 그냥 ‘말하다’는 의미를 넘어 ‘답하다(reply)’라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그러니 논어는 공자가 단순히 ‘논’하고 ‘어’한 게 아니라 논하고, 답을 하고, 누군가의 말에 반응했던 상황을 채록한 것입니다. 일방소통이 아니라 쌍방향 소통의 텍스트라는 거지요.

사실 그렇습니다. 논어에는 공자만이 아니라 제자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단순한 조연, 카메오, 엑스트라 정도가 아니라 자기 색을 충분히 드러내고 자기 이야기를 분명히 하는 경우가 많지요. 공자의 발언들은 그들의 말에 대한 반응과 답변인 경우가 많고요.

자왈(子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로 시작하지 않는 부분도 많고 그렇게 시작해도 공자의 말에 제자들이 그냥 “예, 알겠습니다” 하고 심심하게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그들 역시 반응을 하고 반박도 하며 때론 대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공자가 거기에 다시 반응하고 반박합니다.

그렇게 철저히 쌍방향 소통의 어록을 담은 텍스트이기에 논어는 ‘공자’가 아니라 ‘논어’가 된 걸 수도 있습니다. 정말 ‘논’하고 ‘어’한 책인 거죠. 주고받은 것을 기록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쟤는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다.”

공자가 일방적으로 ‘어’한 것도 아니고 제자들이 ‘어’하고 서로에게 반응하면서 논어란 텍스트가 만들어진 것은 사실 스승 공자가 원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스승이 이렇다면 이런 줄 알아’가 아니라 제자들이 입을 열고 말을 하고 자기 생각을 말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쌍방향 소통이 일어나 제자들이 조연 이상의 조연으로 등장하는 텍스트가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는 겁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안회는 나를 돕는 사람이 아니구나, 내 말에 찬성하지 않는 바가 없으니.”

공자가 선진편 4장에서 늘 자신의 말에 ‘예(yes)’ 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제자 안회에게 한 말입니다. 보통 안연이라고도 하는 안회는 참 얌전한 청년이었죠. 물론 단순히 고개만 끄덕인 것은 아닙니다. 공자는 안회를 보고 위정편 9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종일 안회와 함께 이야기하였으나 회가 나의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이 마치 바보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가 물러난 후 그 사생활을 살펴보니 그대로 행하고 있더라. 회는 정녕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정말 조신한 청년이었던 거지요. 스승의 말에 늘 고개를 끄덕이고 스승에게서 배운 것을 일상에서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 어쩌면 우리 동양 사회에서 이상적인 제자의 상으로 많이 이야기하는 모습 아닐까요? 사실 나이 많으신 어른들은 적잖이 순하다는 정도를 넘어 순종적인 제자를 좋아하잖아요. 

하지만 공자는 제자의 그런 모습을 싫어했습니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죠. 분명히 자신의 말에 확실히 반응하지 않는 제자의 태도를 문제 삼았고 도움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공자는 반박도 하고, 자기 생각도 말하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종종 공야장편 26장 선진편 16장에서처럼 ‘나 어려워하지 말고 너희 생각을 이야기해 보려무나’라고 멍석도 깔아줬지요. 공자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교학상장’이라는 동반성장

가르침이란 것은 무엇일까요? 강의를 자주 하다 보니 가르침은 확대이고 심화학습 과정인 거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남을 가르치고 타인에게 내가 가진 것을 이해시키려 골몰하는 과정에서 이미 알던 지식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하나라도 더 일러주고 싶다 보니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면서 지식이 확장되는 것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때론 나의 지식과 그 근거를 조금이라도 객관적으로 검토해보는 깊은 지적 성찰까지 하게 됩니다. 이런 일은 특히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에 의해 촉발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자극을 주는 질문자가 고마운 것이고요.

가르치는 사람 따로 있고, 가르침을 받는 사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서로 같이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좀 어려운 말을 쓰자면 교육과 가르침은 변증법적인 상호관계라 생각합니다. 그런 관계를 통해 서로의 지식이 확대되고 깊어지면서 성찰하고 지혜의 세계로 조금이라도 다가가는 게 교육과 가르침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기에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도 있고요. 상장(相長), 같이 성장해야죠.

그런데 그 교학상장, 동반성장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선은 가르치는 사람의 노력과 준비가 중요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되겠지요.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질문하고, 용기 있게 지적도 하고, 반론도 펼쳐야지 않겠습니까? 안회처럼 묵묵부답으로 있으면 교학상장, 변증법적 동반 성장은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가 안회의 수동적인 모습에 못마땅했던 게 아닌가 싶네요.

여언(與言)

자공이 말했다. “가난해도 아첨함이 없으며 부유해도 교만함이 없으면 어떠하나이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그것도 괜찮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가난을 의식하지 않고 인간적인 삶의 길을 찾아 만족하고, 부자는 돈을 의식하지 않고 겸손한 삶에 마음 쓴다면 더욱 좋겠지.”

다시 자공이 여쭈었다. “시경에 ‘옥이나 상아를 자른 다음 금강석으로 갈 듯이 조각한 다음 숫돌로 갈 듯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방금 말씀으로 그 말의 뜻을 알았습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시길 “사야, 이제 너와 같이 시를 말할 수 있겠구나. 지난 것을 말하자, 올 것을 아는구나.”

제자가 묻고 의견을 말하자 답을 하는 스승이 제자의 경지를 인정하면서 칭찬을 하고. 이게 바로 공자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공자가 제자의 수준을 인정하며 ‘너와 같이 이제 시를 말할만하다’고 할 때 여언(與言)이라고 했습니다. 여(與)는 ‘같이’라는 뜻으로 같이 말할 수 있게 되었음을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지요. 그렇게 공자는 제자와 ‘여언’하기를 바랐나 봅니다. 또 ‘여언’의 수준까지 제자들이 올라오길 바랐나 봅니다.

여기서 재밌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에 자공이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함이 없는 삶의 자세가 어떠하냐’고 물으니 공자가 ‘가(可)’라고 합니다. 괜찮다는 말이지만 정말 괜찮아 보이나요? 바로 뒤에 ‘하지만’이라면서 말을 이어나가는 것을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지요? 그게 괜찮기는 하지만 거기에서 머물러선 안 된다는 거지요. 여기에서 ‘수우미양가’의 ‘가’가 나왔습니다. 네, 논어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선거’라는 말도 그렇고, ‘입실’이라는 말도 그렇고, 논어에서 기원한 말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수우미양가’의 ‘가’입니다.

공자는 팔일편 8장에서 자공이라는 제자 말고도 상(商) 또는 자하라는 제자에게도 ‘여언’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자하가 여쭈었다. “시에 ‘방긋 웃는 웃음에 입 맵시가 아름답고, 아름다운 눈동자에 눈매가 고우니 흰 바탕에 고운 채색이로다’라고 하는데 무엇을 말함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그림을 그릴 때 색칠을 한 후에야 바탕이 살아난다는 말이다.”

자하가 다시 말하기를 “예법이라는 것이 있은 후에 사람의 바탕이 아름다워진다는 것이군요.”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를 일으켜주는 이는 우리 상이구나. 이제 더불어서 같이 시를 말할만하겠구나.”

제자가 자신의 말을 분명히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더욱 또렷하게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 내자 공자가 ‘나를 일으켜 주는구나’라고 하지요. 제자의 반응, 적극적인 참여가 나를 가르쳐 주어 기쁘다는 말이지요. 그 제자에게 공자는 이제 나와 더불어서 시를 말할만하다고 합니다. 자공처럼 나와 더불어 이야기할 정도의 수준이라고 인정한 거지요.

공자는 시를 매우 중시했습니다. 시를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배운 시를 통해 관계를 살찌우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군자’라는 인격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공자가 자공과 자하에게 나와 더불어 시를 말할만하다고 칭찬한 것입니다. 제자와 더불어 이야기하고 싶은, 그래서 나를 세워주기를 바라는 스승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그걸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자로서 공자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 부분이고 또 늘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가르치는 자의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논어를 보면 제자의 수준, 학문 성숙의 단계를 네 단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가 입문(入門)입니다. 스승의 문하에 들어오는 거지요. 두 번째는 승당(升堂)입니다. 당 위에 올라서는 거지요. 세 번째는 바로 입실(入室)입니다. 스승의 방에 들어와 스승의 가르침을 직접 옆에서 받는 겁니다. 

마지막이 바로 뭘까요? 전 여언(與言)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승과 같이 더불어 이야기하는, 스승을 자극하고 일으켜 세우고 동반성장의 파트너가 되는. 스승 공자가 제자에게 가장 바란 것은 그 학문 성숙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자, 서두에 던진 질문, 공자가 생각하는 제자의 상에 대한 답이 나온 듯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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