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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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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천국의 섬 벨리즈의 키 코커에서 떠난 여행 중 여행

세계로 떠난 남녀

“천국 그 자체였어. 바다 한가운데에서 거북이·상어·가오리와 함께 자유로이 헤엄칠 수 있는 지상 최고의 파라다이스! 세상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을 거야.” 멕시코에서 만난 한 여행자, 3년째 세계여행 중이라는 그의 말 한마디에 달려 가게 된 벨리즈의 키 코커(Caye Caulker). 계획에도 없던 곳일 뿐더러 사실 벨리즈란 나라 자체가 있는 줄도 몰랐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키 코커는 벨리즈 시티에서 쾌속 보트를 타고 45분 더 들어간 곳에 위치했다. 기다란 타원형으로 생긴 이 섬은 걸었을 때 짧은 지름이 15분 남짓, 긴 지름은 4km 정도 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2km 정도 구간의 작은 섬이다.

날 것 그대로의 생동감 넘치는 나라, 벨리즈
자연 그대로의 섬 위에는 뚝딱뚝딱 손으로 만든 집들이 늘어서 있는데, 나무로 된 팻말이라도 하나 세워져 있으면 가게, 그렇지 않으면 가정집이다. 사실 거리의 집들은 너무도 촌스럽고 조잡한 색들의 조합이 틀림없는데 희한하게도 여기처럼 날 것 그대로의 생동감 넘치는 거리를 본 기억이 없다. 도화지의 배경색이 카리브해의 파란색이라서일까? 목이 마르면 그림처럼 서 있는 길거리 야자수 열매 하나를 따 먹으면 그만이다.


하루 일과는 아침을 먹고 가깝거나 먼 바다로 나가 수영을 하거나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키 코커의 바다는 벨리즈 배리어 리프(육지에서 멀지 않은 바닷속에 길게 이어져 있는 산호초) 지역에 속하고 있어 늘 잔잔하고 평화롭다. 한 마리 인어가 되어 각종 물고기와 거북이, 때론 순한 상어들과 함께 수영을 즐 기며 아름다운 산호초 사이를 유영하다 보면 어느새 배가 고파진다. 어슬렁어슬렁 바다에서 걸어 나오며 바라보던 섬을 여전히 눈 감고도 그릴 수 있다. 매일 봐도 질리지 않던 내가 사랑하는 풍경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섬을 배회하던 중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2박 3일의 요트 투어 여행자를 모집합니다. 작은 섬에서 맞이하는 새해 인사를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남편의 눈이 반짝였다.


“여보, 우리 여행 가자!”
“우리 지금 여행 중이잖아.”
“아니, 요트 여행! 여행 중 떠나는 또 다른 여행!”
오호! 바다 위를 가르는 요트를 타고 카리브해를 유유히 누비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두 눈을 떠도, 두 눈을 감아도
한가득 불어오는 코끝을 스치는 바다 내음
요트 세일링을 떠나는 날 아침,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15명의 여행자와 캡틴 케빈, 그리고 선원 둘이 모였다. 탑승자 간의 서먹함은 라저 킹 호를 타기 직전 벗어 던진 신발과 함께 한방에 사라졌다(요트 투어를 하는 동안 신발은 필요 없기 때문에 출발 전 신발을 모두 벗어 한곳에 모아놓는다). 신발과 함께 일상의 모습도 모두 벗어던진 걸까? 모두들 소풍날 아침의 아이들처럼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뱃머리, 갑판 위 등 각자의 취향대로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두 눈을 떠도, 두 눈을 감아도 코끝을 스치는 바다 내음이 한가득 불어온다. 드디어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요트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진 푸른 수평선, 손 내밀면 닿을 듯한 하얀 뭉게구름, 레게 음악에 어깨가 절로 들썩여졌다.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부셔 한 손으로 살포시 그 빛을 가리고, 다른 손엔 얼음이 들어간 후르츠 펀치를 들었다. 요트 뒤쪽으로 돌고래 가족이 뒤따르고 있다. 우리는 영화 속 한 장면같은 에메랄드빛 카리브해 위에 우뚝 서 있었다. 사실 라저 킹 호는 넓고 으리으리한 크루즈는 아니다. 선원과 승객 15명이 옹기종기 모여앉거나 누우면 꽉 차는 아담한 돛단배 같은 요트일 뿐이다. 그래서였을까? 한정된 공간 속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랜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듯 배 위의 우리들은 금세 가까워져 있었다. 바다 보기, 낮잠 자기, 점심 먹고 스노클링, 멍때리며 낚시하기, 그리고 다시 바다 바라보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어느새 첫날 밤을 보낼 무인도에 다다랐다. 100m 달리기를 하면 끝나버릴 것 같고, 야자수 한 그루만이 유일한 주민인 무인도는 만화책에서 꺼내온 듯 너무나도 작고 귀여웠다. 드넓은 바다 한가운 데에 홀로 떠 있는 작은 섬, 그 섬을 지나는 바람을 덮고 누워 달빛에 반짝이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밤하늘에 새겨진 별처럼 또 하나의 추억이 그렇게 가슴속에 새겨졌다.

<15소년 표류기> 속 주인공이 된 듯
둘째 날 아침이 밝고 어제와 똑같은 풍경이 눈앞에 흐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평화로운 시간이 끝나감 에 아쉬움이 밀려온다. 둘째 날의 무인도는 어제보다는 조금 크지만 그래봤자 섬 한 바퀴를 다 돌아보는 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저녁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캡틴 케빈과 선원 두 명이 실력 발휘 제대로 해서 우리들의 만찬을 준비해 주었다. 이름하여 ‘랍스터 파티!’ 함부로 구경도 못해 본 랍스터가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여 있다. 우리 모두의 배를 랍스터로만 채워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라니…
그때, 갑자기 선장 캡틴이 외쳤다.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

작디작은 섬의 밤하늘에 자그마한 폭죽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우리는 모두 서로를 얼싸안으며 서로의 새해를 축하했다. 모두 다 함께 해피 뉴 이어! 오늘 밤이 지나면 여기 있는 모두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테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 15명은 마치 미지의 섬에 표류한 <15소년 표류기> 속 주인공이 된 듯 마지막 밤을 함께 즐겼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이 만들어지고 있는 그런 밤이었다. 


 세 단어로 알아보는 벨리즈 


1. English
벨리즈는 북쪽으로는 멕시코, 서쪽으로는 과테말라와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온두라스만, 동쪽으로는 카리브해와 접해 있다. 국토 면적 22,966㎢ (남한의 1/4 정도)에 인구 36만 명이 조금 넘는 이 작은 나라는 중남미 국가 대부분이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데 반해 영국의 식민 통치 아래 있었기 때문에 유일하게 영어를 쓴다.

2. Go Slow
키 코커를 대표하는 단어는 ‘Go Slow’다. 섬 곳곳에 이 문장이 눈에 띈다. 한 달가량 키 코커에서 지내면서 느림의 미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 중에도 매일 더 많은 것을 보고 얻기 위해 바쁘게 살아온 삶 중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웬만해선 뛸 일도, 화낼 일도 일어나지 않는 섬사람들의 삶에 점점 동화되었고, 거울 속 내 표정은 한층 온화해졌다. 조금 느리더라도 여유롭게 살기, Go Slow.

3. 키 코커 가는 길
우리나라에서 벨리즈 시티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인천에서 출발,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약 13 시간 40분)에서 환승하여 벨리즈 시티의 공항(3시간 20분 소요)으로 이동 가능하다. 벨리즈 시티에서 키 코커 섬으로 가는 워터 택시를 타면 키 코커에 도착할 수 있다(약 4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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